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건숙 Feb 06. 2022

나도 요상한 것을 쓰고 싶지만

 새로운 히트작은 ‘요상한 것들’ 중에서 생겨난다.

- 우에키 노부타카, 『밀리언의 법칙』, 더난출판사



 

400년 넘은 느티나무


느티나무 앞에 왔더니 비가 잦아들고 있었다. 먼저 느티나무와 눈인사를 나누고 천천히 주위를 돌았다. 느티나무는 440살 넘은 보호수인데 울타리로 빙 둘러쳐져 있다. 그래서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속마음을 주고받는 친구에게 말하듯 조용히 내 출발을 알렸다.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손수 만들어 간 아코디언북을 꺼냈다. 앞뒤로 4면, 총 8개의 면에 한 두 문장씩 써넣었다. 이것들은 상록오색길을 걸으며 답을 구하고 싶은 것이나 마음에 새기고 싶은 것들로서 화두와도 같은 것이다.

  

원래는 세 번째 책이 될 원고를 출판사에 막 넘긴 상태라서 다음 책에 대한 구상을 위해 상록오색길을 걷기로 했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어 일주일에 한 번씩 걸어보기로 했다. 상록오색길은 총 15킬로미터로 5~6시간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첫날인 오늘 하필 비가 오고 있었다. 나로선 대단한 각오로 시작한 것인 만큼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일어난 뒤에야 날씨를 검색해 보니 미세 먼지 농도가 매우 나쁘다고 나왔다. 그렇다고 내일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1코스만이라도 걷자고 나섰다.

  

일기예보를 보지 않고 내가 편한 날을 잡은 것이 실수였지만, 우리 인생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이것저것 가리다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무엇보다 첫날부터 계획이 어그러지면 안 되겠기에 두어 시간 흔들던 갈등을 싹 지우고 나섰다. 그깟 날씨에 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고 나자 몸을 열심히 저어서 나아가자는 굳센 의지까지 솟았다.

  







아코디언북의 제목이자 첫 문장으로 쓴 것은 ‘최고의 일과 좋은 인생’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이 문장을 읽고 느티나무 주위를 다시 천천히 돌았다. 그러면서 ‘최고의 일과 좋은 인생’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돌다 보니 우중충한 하늘과는 달리 머릿속이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그에 대한 답도 들려왔다.

  

최고의 일이란,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을 도와주는 일’, 그리고 그것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느티나무 옆에 있기만 해도 좋은 기운을 얻듯이 좋은 글을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이다. 울타리 아래에 만발한 냉이꽃이나 연둣빛 풀들에게도 그런 내 생각을 전해주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좋은 글을 넘어서서 히트작을 쓰고 싶다. 이왕이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출판사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죽기 전에 한 권이라도 책을 낸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지만 몇 권을 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욕심을 앞세우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글 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런 생각을 품지 않을까?

  

이번에 나올 책은 어떤 힘을 보여줄지 알 수 없어 긴장 상태에 있지만, 따져보면 앞서 낸 두 책은 나름의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첫 책 《책 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는 교보문고의 ‘오늘의 책’에 선정되기도 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요청을 받아 경의중앙선 전철 안에 마련되어 있는 독서바람열차를 타고 달리는 차 안에서 하는 이색 강의도 했다. 아침독서운동본부의 추천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EBS 라디오 ‘책으로 행복한 12시’에 초대받아 2부 시간을 진행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두 번째 책 《책 사랑꾼 그림책에서 무얼 보았나?》를 낸 뒤에는 여러 책방에서 북토크 요청을 받았고, 문화센터에서 ‘책 사랑꾼의 그림책 정원’이란 타이틀로 어른 대상 강의를 시작하고, 한 도서관에서는 이틀에 걸쳐 ‘길 위의 인문학’ 강의를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도서관에서도 특별 강연을 했다.    

  

하지만 그런 고만고만한 글 말고 이왕이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 베스트셀러라면 부러 제쳐놓던 내가 이런 생각을 다 하고 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라고 다 그렇고 그런 책은 아니니 편견을 먼저 버려야 한다.





   

느티나무에서 8개의 문장을 하나하나 읽으며 8바퀴를 돌고 나서는 오롯이 그 문장들만 생각하며 걷기로 했다. 다른 때처럼 사진을 찍거나 한 눈 팔지 말고, 그 문장들이 몸과 마음에 무늬가 되어버릴 정도로 씹고 삼키자고 말이다. 그것들은 《밀리언의 법칙》에서 뽑았다.

  

나는 아코디어북만 가져간 게 아니라 책 《밀리언의 법칙》도 가지고 갔다. 이미 읽었고, 걸으면서 읽을 것도 아니지만 책과 한 몸이 되어 걷기 위해서였다. 등에 업고 걸으며 계속 책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책의 힘을 빌리고 싶었다. 책의 힘으로 내 몸을 저어가자 다짐했다.

  

1코스를 걷는 사이 점차 날이 개어 전체 구간을 다 걷기로 했다. 작은 숲길과도 같은 황토십리길을 지나 거꾸로 걸어서 들판이 보이는 5코스에 닿았다.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밀리언의 법칙》은 8권의 밀리언셀러와 많은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낸 일본의 한 출판사 대표(편집자 출신)가 쓴 책이다. 출판인을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앞으로 책을 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읽었다. 지금까지 읽은 여느 편집자의 책 보다 가장 구체적이고 도움이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새로운 히트작은 ‘요상한 것들’ 중에서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다리 일자 벌리기》를 요상한 책으로 소개하고 있다. 제목 자체도 요상하지만 실용서임에도 실기 편 이외의 본문을 소설로 꾸민 요상한 책이라고 한다. 지금에야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구성으로 만든 자기 계발서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이 책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전대미문이었다고 한다.


몇 해 전 일본에 있을 때 홈쇼핑 광고를 그러한 형식으로 꾸민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제품이 좋으니 사라 사라 하는 천편일률적인 구성과는 달리, 뇌졸중으로 쓰러진 한 연예인이 위험한 상태까지 갔다가 새싹보리를 먹고 건강해졌다는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액자식 소설 같은 광고라니 나는 거기에 훅 빠져서 홈쇼핑 광고인 줄 모르고 봤다가 나중에 보여주는 전화번호를 찍고 말았다. 비록 일본에서는 사지 못했지만 훗날 우리나라에도 새싹보리가 건강식품으로 나왔을 때 바로 샀다. 《다리 일자 벌리기》가 바로 그런 형식을 가진 책인 것 같다.

  

《다리 일자 벌리기》는 이외에도 과감한 표지 디자인과 광고까지 가세시켜 밀리언셀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내용이 요상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몸이 유연하지 못한 저자가 어릴 때부터 양다리를 벌릴 수 있는 사람을 동경해왔다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것으로 보아 일자 다리 벌리기에 성공한 이야기를 다룬 듯하다.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선보여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과연 나는 ‘요상한 것’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 요상한 글을 쓰려면 먼저 요상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저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내가 요상한 것으로 세상을 흔들 수 있을까?

  

며칠 전 마곡사에 가기 위해 공주에 갔다.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한 이가 늦는다고 해서 터미널 대기실 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차를 받아 책장 옆에 있는 테이블로 갔다. 자리에 앉지도 않고 책장을 먼저 훑어보았다. 여러 책들 사이에서 빼어들게 한 책은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다》였다. 평범한 제목들 가운데 그 낯설고 센 문장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요상’했기 때문이다. 그걸 보면서 나도 얌전한 문장 말고 그런 센 제목을 달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감싸고 있는 갑옷을 벗어던지지 않는 한 저런 제목을 달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요상한 것’이라는 말은 걷는 내내 나를 따라붙었다. 여덟 문장 가운데 가장 강하고 가장 끈질긴 놈으로 내가 걸어갈 길바닥에서부터 내 어깨와 바짓가랑이에까지 달라붙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나도 요상한 걸 쓰고 싶단 말이야. 하지만 난 보다시피 요상한 사람이 될 자신은 없단 말이지’

  

그런데 그 끈질긴 놈이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요상한 것만이 히트작이 되는 것은 아니며 잔잔한 울림으로 감동을 주는 책도 히트작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밀리언의 법칙》에서도 ‘좋은 콘텐츠는 힘든 인생에 다가간다.’면서 그런 책 역시 히트작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할 수만 있으면 제목만이라도 요상하게 쓸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그건 노력해볼 수 있는 있을 것 같았다.   

  

4코스에 접어들면서 어깨와 허리, 종아리가 점점 아파 와서 더 이상은 화두를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어서 빨리 집에 돌아가 소파에 벌렁 눕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중간에 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 두 발로 내 몸을 저어가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힘들고 지루한 마지막 코스를 다 걷고 났을 때는 5시간이 지나 있었다. 문장들의 힘에 기대어, 문장들의 힘으로 나를 저어 매듭을 짓고 나자 뿌듯함이 밀려왔다. 앞으로도 길 위에서 글쓰기의 나날과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한 해법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련다. 상록오색길을 문장과 함께 걷는 것도 조금은 특별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첫 순례길(?)을 잘 마무리해 주었다.


2021. 4. 1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