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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숙 Mar 03. 2022

나만의 방

 “소인은 그 동안 저 자신을 돌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이 방에 와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 유리 슐레비츠, 『비밀의 방』, 시공주니어    


   

SNS를 통해서 알게 된 이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온라인상이 아니라 실제로도 만났다는 말이다. 전시를 한다거나 책을 내어 축하도 해 주고, 그들이 진행하는 북토크나 강의 등에 참여하면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 사인받기 위해서도 만난다.


그런데 처음과 달리 두세 번째 출간 후 태도가 달라져 있는 이들을 보았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눈에 거슬리는 태도가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게 했다.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는데 함께한 이의 눈에도 그리 보였다면 수긍할 만한 일일 것이다.

  

내게 있어 그런 사람과 관계를 끊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겸손하지 못한 사람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연중 겸손한 사람에게 마음이 많이 끌리는지 모른다.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책 《비밀의 방》에는 명예와 부가 높아질수록 자신의 마음을 더 많이 돌아보는 노인이 나온다. 사막에 살던 그는 그곳을 지나가던 임금을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임금과 나눈 짧은 문답에 신임을 얻어 성으로 불려 가 보물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된다. 임금은 머지않아 모든 일에 노인의 의견을 들었고, 후한 상도 내렸다.

  

노인의 힘이 점점 커지자 불안해진 우두머리 대신은 그를 시기하고 모함했다. 노인이 임금의 보물 창고에서 금을 훔쳐 집에 숨겨 두었다면서 말이다. 임금은 신하들과 함께 노인의 집으로 갔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보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 우두머리 대신이 잠겨 있는 문 하나를 발견하고는 의기양양하게 ‘비밀의 방’이라 말했다. 임금은 즉시 그 방의 문을 열도록 했다. 하지만 너른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구석에 의자와 구불구불한 지팡이만 있을 뿐이었다. 임금이 무슨 방인지 묻자 노인이 대답했다.





  

“소인은 그 동안 저 자신을 돌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이 방에 와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소인이 언젠가 사막에서 폐하와 만났던 흰머리에 검은 수염을 지닌 사람과 같은 사람이기를.”

  


노인이 방문을 열 때 심장이 오그라드는 줄 알았다. 혹여나 노인이 재물에 눈이 멀어 금은보화를 가득 쌓아놓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텅 빈 방을 보고 그 반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인의 말을 듣고 났을 땐 심장이 한없이 커지며 커다란 북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과연 그런 이가 현실에 존재할까? 창문으로 비쳐 드는 곳에 고개를 숙이고 임금에게 말하고 있는 노인의 태도는 사막에서 보인 모습과 다른 게 없었다. 소박한 옷에서 화려한 옷으로 바뀌었을지언정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사막에서 생활하던 모습을 지키려고 노력했으니 변할 리가 없었다.




  

내가 상록오색길을 걷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이다. 어쭙잖은 책이지만 세 권이나 낸 지금, 첫 책을 냈을 때와 달라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아니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이른다. 길을 걸으며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경연이 끝나고 큰 인기를 얻은 그가 다른 동료보다 신곡 발표가 늦어지는 이유가 궁금했다. 거의 막차로 발표한 곡은 기대 이상이었다. 인터뷰를 보니 수 백곡이 들어왔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중하게 선택하고 싶어서 고르느라 늦었다는 것이다.


그걸 보면서 나는 매번 너무 서두른 건 아니었는지 내 자신에게 물었다. 문장 하나하나에 얼마나 정성을 쏟았고, 다듬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 말이다. 그러면서 다음번엔 정말로 신중하자고 내게 타이른다. 소나무는 몇 백 년 씩 산다. 그런데 다른 소나무에 견줘 반송은 수명이 짧다고 한다. 줄기에 비해 너무 많은 가지를 뻗기 때문이란다. 끝도 없이 뻗어 나간 가지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가지들이 갈라져서 결국 쓰러지고 만다는 것이 나무 의사 우종영의 말이다. 삶과 욕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일깨워준다.  




나는 성찰 속에 태어난 책을 좋아한다. 신영복 선생의 책들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성찰하지 않으면 거듭나기 힘들다. 성찰 속에서 나를 들여다볼 수 있고, 그래야 나아갈 길과 삶의 태도가 그려진다. 성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게는 걷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상록오색길을 걸으러 갈 때마다 내 삶을 돌볼 문장들을 가지고 가 어르신 느티나무하고 대화도 하고 걸으면서 계속 그 문장을 음미한다. 그렇게 하면 조금은 낮아지고 깊어진다. 따라서 상록오색길은 노인의 ‘비밀의 방’ 같은 곳이다.


젊은 시절 산책이라곤 모르고 살 때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이란 시를 써서 식탁 옆 벽에 붙여 놓았었다. 식탁에 앉을 때마다 그 글귀들을 보면서 마음을 닦기 위해서였다.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싶었다. 그때만큼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이 또 있으랴. 거만하거나 교만한 태도가 비집고 들어올 자리는 없다. 그리고 가장 겸손한 태도를 지닌 시간이다.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에는 그때의 마음들을 떠올리게 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살아간다면, 어디 어깨에 뽕을 넣겠는가. 손에 땀이 날 만큼 조심조심할 것이다.


이 당시 나는 청소년 대상으로 사고력 독서 논술이라는 사교육을 하고 있었다. 점점 수업이 늘어서 학부모들은, 게는 1년 게는 2년 넘게 자녀들이 수업할 시간이 나기를 기다렸다. 많이 바쁘던 시절이었다. 마음이 우쭐해질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럴수록 그 시를 읽으며 처음 수업할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말자고 되새기곤 했다. 초등학생 1학년이던 큰딸과 딸 친구 두 명을 두고 첫 수업을 할 때의 긴장되고 떨리던 그 자세로 최선을 다 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처음엔 상록오색길을 일주일에 한 번씩 걸었지만 보름에 한 번 걷기도 한다. 그래서 노인처럼 날마다는 아니어도 자주 들여다보려면 가까이에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프랑스 자수가 놓인 미니 테이블보가 바로 그것이다. 공방에 접혀서 진열되어 있을 때는 흰 손수건인 줄 알고 몇만 원이면 살 수 있겠거니 하고 가격을 물었다. 배운 적도 산  적도 없어서 가늠할 수 없기에 입이 벌어질 정도였으나 갖고 싶었다. 광목 위에 수놓은 딸기 넝쿨이 대각선으로 양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마저도 오른쪽 위에 있는 것은 줄기 끝에 딸기 하나가 달랑 달려 있다. 여백이 가득한 작품이다. 집에 가져오고 보니 테이블보로 쓰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액자로 만들었다.

  

액자를 책상 옆에 두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면 바로 보이는 자리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 여백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이다. 조선 선비들이 백자를 보며 욕심을 버리고 맑은 정신을 가지려고 노력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마음은 다스리지 않으면 금세 나쁜 기운이 들어오기 쉽다. 욕심, 시기, 나태, 자만 등, 우리의 삶과 타인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기 쉬운 것들이다. 하지만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과 장소를 가진다면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좋은 기운을 불러올 수 있다. 누군가는 명상을, 또 누군가는 음악을, 그림으로, 시로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을 되돌아볼 것이다. 나는 시도 읽고, 액자 속 작품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길을 걷는다. 모두 마음을 돌보고 챙기는 ‘나만의 방’이다.

(2021.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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