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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숙 Mar 01. 2022

돌 피하는 법


아서라, 질질 끌지 말지어다.



9월인데도 한낮은 여름이다. 점점 지구가 더워지고 있으니 더 그러하겠지만 올여름은 유난하다. 장마기간엔 쨍쨍한 날이 많았다. 그러더니 9월에 들어서면서 가을장마란 말이 나올 정도로 비 오는 날이 잦다. 그 덕에 잠시 서늘한 날들도 있었지만 다시금 여름인 듯 뜨겁다.

  

오늘은 시간이 여유롭지도 않았지만 더위 때문에 상록오색길을 걷기엔 무리다 싶어 뒷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가지고 나온 옷가지들을 수거함에 넣고 나서야 어깨에 맨 작은 가방이 가볍다는 걸 알았다. 휴대폰을 두고 나온 것이다. 오랜만에, 아니 휴대폰 없이 걸은 날이 없었으니 뭔가 색다른 느낌일 것 같았다. 숲의 기운을 더 많이 느끼고, 나무들과도 더 깊이 교감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몰려왔다.

  

산에 올라 숲으로 들어가 고무신을 벗었다. 흙에 닿는 서늘한 촉감이 상쾌했다. 그런데 몇 분 안 지났을 때 위로 질러서 올라가는 길에 서 있던 노신사가 물었다.

 

 “여기로 올라가면 정상이 나옵니까?”

  

나는 그렇다고 했다. 끝나는 길에서 틀어 올라가면 된다고 말하면서 나는 둘레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랬더니 신사는 둘레길도 있느냐면서 올라가려던 길을 관두고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나는 앞에서 재빠르게 걸으면서 어디 사느냐, 이 산엔 처음 왔느냐 등을 물었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데 볼 일 보러 왔다가 정상에 올라가 보려고 했단다. 그러면서 또 물었다.


  “발 안 아파요?”

  

처음에 많이 아팠지만 이제 괜찮다고 대답했다.



 뒷산은 맨발로 걷기에 좋은 산이 아니다. 어느 구간은 떨어진 소나무 잎이나 나뭇가지들이 많고, 어느 구간은 뾰족한 돌멩이들이 많다. 그리하여 걷다가 돌부리에 차이고 찔리기도 해서 적지 않은 통증을 얻기도 했다. 첫날 밤엔 얼마나 얼얼한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발도 적응했는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돌길 걷는 노하우가 자연스레 터득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돌은 밟아도 되고 어떤 돌은 피해야 되는지 말이다. 통증을 주는 돌은 사뿐히 피하고 지압을 주는 돌은 일부러라도 밟는다. 돌길 사이에서 평지 같이 납작한 돌을 보면 거길 밟아야 아프게 하는 돌을 피할 수도 있다.

  


사람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주변엔 상처를 주거나 에너지를 뺏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그런 사람들을 처음부터 걸러낼 수 있는 혜안이 있다면 고민할 것도 없겠지만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도 있기 마련이므로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 결이 맞을 것 같아 관계를 맺었는데 불편함을 안겨주는 사람들과 계속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에 회의가 올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람 관계는 산길에서 돌을 밟고 안 밟는 것처럼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다. 쉽게 내칠 수 없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끊는 시기를 적절하게 찾지 못하거나, 너무 깊이 와 버렸거나,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거나 하는 등 사람이나 관계마다 상황이  많이 다르다. 나이를 먹으면서 성찰의 힘이 커져 어떤 행동이나 말을 듣고서 바로 판단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 그런 경지에 오르지 못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불편함을 주는 관계라면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 좋다. 내가 품어서 상대를 바꿀 수 있다면 계속 이어가도 좋을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좀 과감해져야 한다. 많은 이들도 에너지를 앗아가는 사람과는 멀리 하라고 조언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좋은 것만 하고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 엄한 곳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지 않고 싶다. 그런 경험 때문에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보았다.

  

그것이 돌을 밟고 안 밟는 것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을 성싶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적지 않은 용기와 연습이 필요하다. 3번 만나던 것을 1번 만나고, 싫은 부탁을 해 왔을 경우엔 정공법을 써서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고, 말하기 힘들면 문자로 보내고, 불편한 감정을 상대에게 알려주고, 주위 사람들에게 대처법도 물어보면서 해결해보는 것이다. 돌을 잘못 밟아 통증을 얻은 다음에는 그 돌을 조심하게 되는 것처럼 자신 안에 경험이 쌓여 도움도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굳은살도 생겨서 어떤 관계는 무난히 넘길 수도 있으리라.

  

느긋하게 숲과 교감하며 걷고 싶었던 순간에 갑작스레 나타난 노신사는 날다람쥐처럼 내달리듯 걷는 나를 계속 쫓아오다가 한 바퀴를 다 돌고 다른 둘레길로 향하는 내 등을 향해 목청 돋워 감사하다고 했다. 비로소 내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노신사 때문에 평소 좋아하는 나무나 여기저기 올라온 버섯들에게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못하고 앞만 보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휴대폰도 없는 날에 말이다. 조금 과장해서 소설 속 에피소드 같다. 그가 뒤 따라오고 있는 자체가 말 없는 통제 같았다.

  

그가 없어진 숲길은 금세 예전처럼 편안해졌다. 커다란 밤송이도 발견해 알토란 같은 밤을 세 개나 얻었다. 잠시 동안 불편하게 한 그 사람 때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내달리는 방법을 택했던가 보다. 무섭거나 싫으면 36계 줄행랑도 그리 나쁜  아니지 않은가.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돌을 피하는 삶의 지혜다.

  



그런데 밤이 되면서 발바닥은 괜찮은데 발목이 아파왔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인대에 무리가 갔었나 보다. 노신사는 그저 말없이  따라왔을 뿐인데 뒤늦게 찾아 온 통증은  쉬이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하물며 관계를 쌓아온 사람이 남긴 상처라면…, 아서라, 질질 끌지 말지어다! 

(2021.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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