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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숙 Feb 26. 2022

자녀라는 산을 넘어야 할 때

    

나는 누군가의 삶의 이유나 보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또 누군가를 나 자신의 삶의 보람으로 삼고 싶지도 않았다.

- 오치아이 게이코, 『우는 법을 잊었다』

         

  



© sanctumdigital, 출처 Pixabay




맨손으로 돌산을 오르는 할머니가 눈을 사로잡았다. 험하고 가파른 바위들을 아무런 장비도 없이 등산화에 반바지만 입고 바위산을 척척 오르신다. 그 모습만 보아선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데 88세란다. 그것이 실화인가? 뒤로 나가떨어질 일이다. 지나가던 한 등산객도 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란다.

  

안 그렇겠는가? 그 나이라면 평지 걷기도 힘든 때이다. 시어머니도 그 연배인데 지팡이 짚고도 겨우 서너 걸을 걷다가 어딘가에 앉아 쉬어야 한다. 허리는 굽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거칠다. 그런데 인수봉에서 팔순 기념 케이크를 받은 그 할머니는 대체 뉘시란 말인가. 90세 생일도 거기에서 보내는 게 목표란다.

  

카메라가 할머니 집으로 따라간다. 베란다에서 손빨래하는 할머니는 지금껏 세탁기를 써보지 않았단다. 산에 오르기 위해 근육을 키우기 위해 일일이 손으로 빤다는 것이다. 헹군 빨래를 꽉 짜서 널고 들어온 할머니는 긴 고무장갑을 가져오더니 등 뒤로 가져가 위아래로 잡아 쭉쭉 늘린다. 그리고 누워서도 고무장갑 운동을 한다. 그것 역시 산을 오르기 위한 운동이다.

  

어느 날은 커다란 등산가방을 싸더니 뒷산을 오르신다. 자리를 잡더니 텐트를 치고 준비해 간 저녁을 먹고 그 안에서 잠을 잔다. 아침에 일어난 할머니는 기분 좋게 맨손 운동을 하더니 텐트를 거둬 유유히 집으로 돌아간다.

  

소설을 읽다가 만난 “나는 누군가의 삶의 이유나 보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또 누군가를 나 자신의 삶의 보람으로 삼고 싶지도 않았다.”라는 문장에서 그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모습도, 이 문장도 모두 찌르듯 내 안으로 들어온 존재이다. 그토록 꼿꼿하고, 그토록 눈부신 문장과 할머니는 여태 만나보지 못한 존재들이었다.






 

 ‘너는 내 희망이야.’ ‘너 때문에 살아.’ ‘너는 내 기쁨이야.’ 같은 말들은 수도 없이 만났다. 자녀에게, 배우자에게, 연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말들이다. 더구나 소설 주인공은 혼외 자식으로 태어나 차별을 받으며 살아온 여성이다. 그 어머니 역시 질타와 무시를 받고 살았지만 딸에게는, “네 인생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하면서 자유롭게 맘껏 딸의 인생을 살라고 한다.

  

누군가를 자신의 삶의 이유나 보람으로 삼는다는 것이나 그 반대의 경우엔 의존이나 집착의 관계로 변하기 쉽다.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 입상하고, 세계 3대 콩쿠르를 석권한 피아노 천재 임동혁은 어린 시절 자는 시간과 식사하는 시간만 빼고 피아노 연주 훈련을 했다. 그런 피나는 노력 덕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그 뒤에는 어머니의 헌신이 있었다. 그런데 임동혁은 그 헌신이 지나쳐 보상 심리와 강한 집착이 되어 불행했다고 고백했다. 그의 어머니도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 속 어머니와 딸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그런 관계로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각각 독립된 개체로서 살았다. 할머니 역시 누군가에게 자신을 의탁하고 살 나이이다. 병약해지고, 외로울 나이이지만 날마다 혼자서 산을 찾으며 씩씩하게 살아간다.

  

할머니가 원래부터 건강했던 것은 아니다. 40대 때 어지럽고 기운이 없어서 몇 걸음 걷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조금씩 산을 오르다가 그 경지에 닿게 되었다. 최근에는 대장암까지 발병해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했다. 그런데 정기 검진에서 나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근육이 발달해서 암이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신은 몸의 영향을 예민하게 받는다. 약하거나 어디가 아프면 위축되고 자신감이 떨어진다. 외로움도 더 커진다. 활동 반경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산을 다니면서 몸이 건강해져서인지 삶에 군더더기가 없다.





  

나는 젊은 시절 남편이 늦게 들어오거나 출장을 간다고 하면 화가 많이 났다. 결혼을 했으면 아내와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술자리가 많고 출장이 잦은 것에 불만이 많을 수밖에. 그렇지만 한편으론 내가 남편에게서 정신적인 독립을 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고 남편에게서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중년이 되면서 서서히 가능해졌다.

  

자녀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따로 지내는 딸이 생각보다 늦게 다녀갈 때는 서운함이 들었다. 나는 나대로 잘 살고 있고, 할 일도 적지 않아 잊고 있다가도 딸이 집에 온다고 하면 그때서야 따져보고 그러는 것이다. 소설 속 어머니처럼 나도 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살도록 하고 있지만 이 감정은 통제가 잘 안 됐다. 그래서 그 문장이 남 다르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상록오색길을 걸으며 문장을 곱씹었다. 그리고 바위산 오르는 할머니도 많이 생각했다. 딸이 오면 좋고, 안 오면 바쁘려니 하면서 살기 위해선 먼저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약한 마음이 비집고 들어올 틈새를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세뇌를 했다.

  

배우자나 자녀를 삶의 이유나 보람으로 삼지 말고, 나 자신을 그 대상으로 삼으면 된다. 남편을 겨우 넘었더니 이제는 자녀라는 더 큰 산이 버티고 있다. 세상살이라는 게 산을 넘고 넘어야 하는 것이라면 종내는 나라는 산도 넘어야겠지.

  

두 산을 넘는다는 생각으로 상록오색길을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2021.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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