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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Feb 17. 2023

오늘도 열심히 출근한다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의 리 대리 -1-

차창 밖 풍경은 언제나 초라해 보인다. 막 개발된 공단이 늘 그렇듯이 공단 지역 외의 땅은 허허벌판과 논밭 투성이다. 추수하고 정리 안 한 농기구가 널브러졌고, 한쪽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다. 고장 난 운송트럭이나 농기계가 길가에 방치된 상태로 여러 보인다. 논밭 너머로는 나무 하나 없는 산이 민둥민둥 자리 잡았다.


버스가 공단으로 들어서자 버스에서 사고 예방 수칙이 시끄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몇몇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며 끼고 있던 이어폰 볼륨을 높인다. 그 와중에 한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잔다. 이 남자는 오늘도 열심히 출근한다. 그것도 삼성전자로 출근한다. 직급은 대리다. 월급이야 아무리 벌어도 부족하지만 평균 직장인과 비교했을 땐 나은 편이다. 그래서 추석이나 설날에 가족이 모이면 목에 힘 주기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직장 생활이 100% 만족스럽다는 얘기는 아니다. 월급날을 빼곤 출근하는 날엔 통근버스가 사고가 나 연착되기를 바라곤 한다.  


눈을 뜨자 버스는 이미 캠퍼스 정류장에 도착해 있었다. 남자는 무리를 따라 내렸다. 전방에 운동장 10개 정도를 합쳐놓은 거대한 건물이 보인다. 둘씩이나 보인다. 거기에 옆에 건물 하나를 또 올리고 있는 중이다. 여기가 그의 근무지인 삼성전자다.


버스에서 내린 수 백 명이 보안검색대로 향했다. 보안검색대에는 큼지막한 글자가 새겨진 현수막이 보인다. '경제강성대국 달성하여, 민족자주 이룩하자!'. 투박한 글씨에 시대에 뒤떨어진 듯했다. 출근하는 그 누구도 현수막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부은 눈으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각자의 사무실이나 공정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향한다.


남자는 B동으로 향했다. B동 입구에 다르자 조금씩 아는 얼굴이 근처 흡연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보였다. 한 사람이 인사했다. "안녕하시오!" "네. 안녕하세요." 남자가 대답했다.

몇몇 사람들은 작은 미소를 띠며 인사하였으나, 그 외 사람들은 그들만의 대화에 몰두하며 그를 무시했다. 이 사업장이 처음 생겼을 땐 모두가 흡연장에서 웃고 떠들었다. 그러다 윗선에서 흡연장이 시끄럽다 말이 나왔다. 그리고 그 말은 유독 한테만 적용됐고, 저쪽 그룹에는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리 대리, 나중에 술 한잔 하셔야죠?" 말 걸었던 흡연자가 물었다. "좋아요. 편하신 날 있으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리 대리가 대답했다. 칙칙한 흡연장을 지난 리 대리는 더 칙칙한 조명이 있는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 사업장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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