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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Feb 20. 2023

1000년의 적, 중국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의 리 대리 -4-

5월 29일. 그날은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다가오는 열병식도 없고, 남한과 미국의 합동훈련이 한동안 없기 때문에 이 쪽에서 대응하여 무력시위를 할 일정도 없었다. 그러던 날에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부터 동요가 일어났다. 소식을 들은 어떤 이는 멍하게 섰고, 어떤 이는 어디론가 뛰어갔다. 자리에 털썩 앉아 꺼이꺼이 울기 시작한 사람도 있었다. 동요는 순식간에 한반도 북부를 감싸 안아 혼란으로 빠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가 급사했다.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후계자를 포함한 일가족과 몇몇 최측근들이 현재 유럽을 순방하는 중이란 사실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끼워 맞췄다.


곧이어 한반도 전체에 전운이 돌기 시작했다. 미국은 상황을 예의주시했고 남한의 미군기지는 물론, 괌과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기지에 출동대기발령을 내렸다. 남한은 준전시상태로 돌입하였고 공영방송에서는 자기 집 주변의 대피소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을 내보냈다. 만일을 위해 방독마스크 확보를 권고하였지만, 핵미사일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파장이 크고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짧은 기자회견 이후에 종적을 감췄는데, 후에 야당은 대통령 임기 내내 이 점을 물고 늘어졌다고 한다. 남한 철책선 주변 부대에는 최고경계상태로 북방을 주시했다. 전쟁이 발생하면 휴전선 병력 중 90% 이상이 전멸한다는 점을 군인들은 알까? 사령부에선 두 가지 명령을 하달했는데, 하나는 인민군과 전투 준비이고 또 하나는 탈북민 무리가 대거 남하하는 사태를 막는 것이다.


사태 발생 6시간 후 사람들은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커졌다. 무슨 일이 진행되는 걸까? 남한의 뉴스 속보는 긴장감과 새로운 정보에 대한 빈도가 점점 떨어졌고, 전문가라고 일컫어지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펼치는 무대가 됐다. 그 색깔은 극단에서 극단을 이뤘다. 그러다 다시 속보가 나왔다. 미국 전략폭격기 B-21이 선회했다는 소식이다. 미 항공모함은 여전히 한반도를 향해 오지만 최고조의 긴장감은 어느 정도 풀린 듯했다. 미국과 북한 간 통신이 먼저 오고 갔고, 미국이 남한 측에 이를 전달했다. 전 인민과 인민군에 대한 통제력이 어느 정도 북한에 자리 잡았고, 전쟁에 대한 위협은 대부분 사라졌다는 소식이다.


마치 계획되었던 듯이 진행됐다. 당 수뇌부는 일사천리로 나머지 당원과 군부를 장악했다. 군내부의 내통자가 협조했다. 평양의 군대는 곧바로 방송시설로 쳐들어갔다. 언론을 차지하는 자가 권력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반발이 없던 것은 아니다. 소규모 내전이 북한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내전이라고 하기까지 민망할 정도의 사상자와 부상자가 나왔을 뿐이다. 수시간 안에 북한 전역이 평정됐다.

이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당은 남한과 미국보다 중국에 더 많은 경계와 경고를 내보냈다. 전쟁은 없을 테니 괜한 남하를 시도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김정은의 말대로 일본이 100년의 적이면, 중국은 1000년의 적이 맞았다. 북한은 남한과 미국보다 중국이 할 내정 간섭을 더 싫었다. 미국과 남한이 먼저 38선을 넘을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중국은 동맹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자기 멋대로 압록강을 넘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은 극도로 경계했다. 인민군이 신경 쓴 곳은 휴전선뿐만 아니라 압록강 주변이었다.


사태가 발생한 지 24시간 안에 후계자와 최측근은 평양에 도착했다. 그들을 맞이하러 군이 사열했지만 더 이상 그들을 위한 군이 아니었다. 총칼을 소지한 군인이 정중하게 맞이했지만, 그 형식은 최고지도자에 대한 예우 형식이 아니라 포로가 된 귀빈을 맞이하는 형식이었다. 뉴스로 전국에 생중계된 이 모습은 북한의 전 인민에게 송출됐고, 어떤 이들은 큰 충격에 빠졌지만 대체로 잠잠했다. 어차피 그들의 삶은 절망 속에서 계속되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일가족과 후계자는 좋은 여생을 보장받았다. 이미 신격화된 백두혈통을 손대는 모험은 정치적으로 좋은 판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은 그들을 최고 예우로 대하며, 후계자는 인민을 위해 권력을 위임한다는 형식으로 마무리했다. 최측근의 생사여부는 그 후에 알기가 어려웠다. 일부는 숙청됐고 나머지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짐작된다.


곧이어 다자간 교섭이 시작됐다. 남한과 미국은 당의 요구에 깜짝 놀랐다. 그만큼 그 내용은 변화를 원하는 그들의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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