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대리의 아들, 리 성욱은 교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숨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교실 안은 남한 아이들의 잡담으로 가득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화려한 포스터들과 책상 위에 놓인 스마트폰들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얘들아, 새로운 친구를 소개할게." 선생님의 목소리는 밝았지만, 성욱에겐 그저 머나먼 소리처럼 들렸다. 선생님이 성욱을 부르자, 그는 마지못해 교실로 들어갔다. 한 걸음, 두 걸음, 바닥만 보고 걷던 발걸음이 교실 앞에 멈췄다.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 지낼 친구야."
교실은 고요해졌다. 아이들은 낯선 얼굴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성욱은 그들의 속삭임이 불안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남한 출신이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서 그는 낯선 존재였다.
"성욱아, 자기소개 좀 해줄래?"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성욱은 입술을 떼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입을 열었다.
"저는... 리 성욱입니다."
목소리는 너무 작았다. 앞줄 아이들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을 것이다. 뒤에서 누군가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말할 때마다 목이 잠기는 것 같았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환영받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도 돼." 선생님이 말했다. 성욱은 자리에 앉았다. 주변의 소음이 마치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책상 위에 놓인 낯선 교과서와 깔끔하게 정리된 필기구들이 그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마음속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사실 그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남한 친구들이 많은 이 학교보다는 북한 친구들이 있는 익숙한 학교가 좋았다. 거기서는 누구와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성화로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오게 되었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남한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대화는 그에게 외국어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사용하는 유행어와 관심사는 모두 낯설었다. '내가 여기서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혹시나 자신을 무시하거나 따돌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교실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장난을 쳤다. 하지만 성욱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을 켜고 익숙한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LoL)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게임 속에서는 출신이나 말투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이어폰을 꽂고 게임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 순간만큼은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점심 시간이 되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모두가 함께 식당으로 향했지만, 성욱은 혼자 남았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꺼내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반찬은 소박했지만, 집에서의 정성이 담겨 있었다. 그는 식사를 하며 휴대폰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가상 세계에서나마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었다.
하교 길에 성욱의 마음속 어둠은 점점 짙어졌다. 주변에서 웃고 떠드는 남한 학생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거슬렸다. '저놈들,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웃는 거야?' 그는 속으로 씩씩거렸다. 자신은 하루 종일 혼자였는데,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즐거워하고 있었다.
'왕따라도 시키면 어떻게 하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친구 하나 없이 졸업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앞으로 게임은 누구랑 하지?' 불안과 두려움이 분노로 바뀌어갔다. '왜 내가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뉴스에서 봤던 빵셔틀 이야기가 떠올랐다. 남한 학생들이 약한 학생을 괴롭혀 빵을 사오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저놈들이 나한테 그렇게 한다면?' 그의 주먹이 저절로 꽉 쥐어졌다.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누가 나를 건드리기만 해봐.' 분노는 점점 커져갔다. '남한 애들이 왜 우리 땅에 와서 지랄이야? 지들 나라에서 학교나 잘 다니지, 왜 여기 와서 날 힘들게 하냐고!' 그는 이를 악물었다. '만약 누가 나를 무시하거나 괴롭힌다면, 똑같이 돌려줄 거야. 아니, 더 강하게 응징해주겠어.'
성욱이 혼자 걸어가며 어두운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동무? 동무? ㅋㅋㅋㅋ"
마치 자신을 놀리는 듯한 목소리에 성욱은 움찔했다. 벌써 첫날부터 일이 생기는 걸까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아까 했던 강한 다짐이 떠올랐다. '누가 나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남한 남학생 두 명이 서 있었다. 둘 다 체격이 크지 않아 보였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해.' 성욱은 반갑지 않은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어디 한번 해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중 한 명이 말을 걸었다. "너 혹시 '동무오늘갱각?' 맞지?"
순간 성욱은 놀랐다. 그것은 자신이 LoL에서 사용하는 아이디와 비슷했다. 정확히 맞춘 것은 아니지만 분명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ㅋㅋ 커뮤니티에서 봤어. 너 진짜 '동무오늘갱각?' 맞지?" 다른 한 명이 말했다.
"... [동무아오지갱각?]이야'" 성욱은 슬그머니 낀 팔짱을 내려놓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던 긴장감이 사라졌다.
"ㅋㅋㅋ 너 LoL 진짜 잘한다며? 우리 PC방 가서 한 판 할래?"
마음속의 불안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예상치 못한 제안에 성욱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내래 브론즈하고는 게임 못한데이."
두 명이 깔깔 웃었다. "그럼 우리 PC방 가서 한 판 하자!" 그들은 성욱의 어깨를 툭 치며 그를 끌었다. 순간 성욱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아까의 어둠은 어디로 갔는지, 성욱의 마음은 어느새 가벼워졌다. 협곡과 정글로 향하는 길이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