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대리는 C동 건설 현장 사무실로 갔다. B동 바로 옆에 건설 중인 C동은 내년 초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차세대 반도체 생산을 위한 공장이었기에, 당에서는 더 많은 돈이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었다. 북한 뉴스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공사 진행 과정과 당의 노고를 치하하는 기사를 내보내곤 했다. 리 대리는 중요한 설비가 설치될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건설 업체 사람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리 대리는 중요한 설비가 설치될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건설 업체의 노 상무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사무실로 들어서자, 리 대리는 짙은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공기 중에는 탁한 연기가 매달려 있었고, 벽 한쪽에 놓인 작은 화초가 마치 그 오염된 공기를 필사적으로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노 상무님, 안녕하세요." 리 대리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리 대리님, 오셨군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노 상무가 맞이했다. 노 상무의 회사는 평소 B동 건물의 유지와 보수를 담당하던 남한의 하청 업체였다. 그 때문에 둘은 자주 얼굴을 마주쳤고, 자연스레 명함을 주고받으며 업무적인 소통을 이어왔다. 현재 C동에서도 큰 시공을 마친 후, 마감 작업을 위해 노 상무의 팀이 투입되어 있었다. 리 대리는 설비 위치와 관련해 노 상무와 논의할 일이 있었다.
"저번에 보내주신 도면을 봤는데, 설치될 설비 크기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요." 리 대리는 큰 파일철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어디 한번 봅시다." 노 상무는 돋보기 안경을 쓰고 책상에 앉아 파일을 폈다. 둘은 C동 한 구역의 설계도와 설비 치수를 비교하며 문제를 검토했다. 다른 설비 위치와 함께 어느 정도 수정이 필요해 보였다.
노 상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전 설비보다 조금 더 크네요. 고 반장이랑 상의해 봐야겠어요." 그는 책상에 있는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고 반장님, 사무실로 좀 와주세요. 위치 수정할 게 있어요."
"네, 금방 갈게요." 무전기 너머에서 약간의 노이즈와 함께 대답이 들려왔다.
"곧 오실 겁니다. 리 대리님, 식사는 하셨어요? 커피 좀 타 드릴까요?" 노 상무가 일어서며 주전자에 물을 담아 데우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리 대리가 대답했다. 노 상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종이컵 세 개에 믹스 커피를 탔다. 리 대리는 구내식당에 있는 카페의 커피 맛보다 이 믹스 커피 맛이 좋았다. 달달한 맛과 커피 향이 잘 어우러져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집에 몇 개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포트에 물이 다 끓기기도 전에 고 반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리 대리는 고 반장에게 인사했다.
"고 반장님, 여기 설계도랑 치수 좀 비교해 보세요." 노 상무는 커피잔 하나를 고 반장에게 건넸다. 고 반장은 가슴 주머니에서 큰 돋보기 안경을 꺼내 썼다.
"흠..." 고 반장은 설계도와 치수를 가까이 들여다봤다. 리 대리는 고 반장이 설계도와 파일의 치수를 각각 가리키는 두툼한 손가락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 손가락은 현장에서 보낸 세월을 증명하듯 굵고 거칠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눈에 띈 것은 손 위로 가득한 주름들이었다. 리 대리는 고 반장을 B동 밖에서 처음 봤다. 현장 안에서는 방진복과 마스크 때문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이제 보니 눈썹은 거의 백발에 가까웠고, 머리숱도 많이 줄어 있었다. 누가 봐도 환갑은 훌쩍 넘긴 노인이었다. 그나마 나이를 속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 덕분이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을 수정하자는 얘기군요." 한참 논의한 끝에 고 반장이 말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전체 수정은 필요 없을 거예요." 노 상무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대로 도면 수정해서 다시 보내 드리겠습니다." 고 반장은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일어섰다.
"내일 보고해야 하니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리 대리가 당부했다.
"네, 문제없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 반장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노 상무가 물었다. "그럼 이제 다 해결된 건가요?"
"네. 그런데 고 반장님, 밖에서 처음 뵀는데 굉장히 정정하시네요." 리 대리가 말했다.
"그분은 베테랑이죠. 그분 없으면 이 일 못 합니다."
"그런데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글쎄요... 올해로 68살 정도 되셨을 겁니다."
"그 연세에 아직도 은퇴를 안 하셨나요?" 리 대리가 궁금해졌다.
"60대에 은퇴요? 한국에서는 그럴 수 없어요.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해야 하죠." 노 상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리 대리는 노 상무의 말을 들으며 그것이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알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그게 강요된 것일까, 아니면 자발적인 것일까? 노후의 삶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단순히 부유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