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대리의 아내는 조심스레 자기 자리를 찾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전교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엄마들이 거의 다 모여 있었다. 자기만 초대받은 줄 알았는데, 고위 직급 간부의 아내인 동수 엄마도 보였다. 아내는 속으로 뜨끔하며 최대한 동수 엄마 눈에 띄지 않도록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주변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들의 아내들이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소박하지도 않았다. 몇몇은 명품백을 들고 있었고, 아내는 조심스럽게 자기가 가져온 핸드백을 무릎 깊숙이 옮겼다.
"희준 엄마는 오늘 안 오나 보네요?" "모르셨어요? 희준이 아빠가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 나서, 온 가족이 다 미국으로 갔어요." "그럼 희준이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건가요? 부럽네요. 영어도 잘하고, 잘하면 미국 대학도 노려볼 수 있겠어요. 좀 부족해도 3특 정도는 가능할 테고." "3특도 요새 쉽지 않다던데요. 거기 경쟁률 장난 아니래요. 돈은 돈대로 깨지고, 자신감 없는 한국 애들은 오히려 기죽고 돌아온다고 하잖아요." "게다가 고1이면 이미 늦기도 했죠. 입학 시기 맞추기 어렵지 않으면 귀국해서 고생이 클 거예요." "그래도 미국이라니, 부럽긴 하네요. 영어만 잘해도 어디 가서 기죽진 않을 텐데." "우리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 나름대로 잘하면 되죠."
엄마들은 곧장 교육 이야기로 빠져들었다.
"교육부에서 새로 나온 공고문은 없죠?" "아직 없어요. 주요 대학교랑도 정리가 안 됐다고 하더라고요. 전문가들도 복잡하대요." "이러다가 아무 혜택도 못 받고 졸업하면 어쩌죠. 1년만 지나도 너무 늦어요. 여기 있는 것도 나라를 위해 온 건데."
엄마들이 얘기하는 건 대입 전형이었다. 반대가 심했던 기업 유치였고,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개성 발령을 받으면 퇴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성공단에서 남한 화폐를 쓰도록 특별법까지 만들었지만, 직장인들을 개성에 잡아두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대입 특별전형이었다. 개성공단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 특별전형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였다. 교육부가 직접 관리할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고, 부모들은 이를 기회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지원 자격은 한정적이었고, 의·치·약대 지원이 불가능한 전형이라 많은 부모들이 불만을 품고 있었다.
"다시 한번 교육부에 문제 제기해야 해요. 손 놓을 수는 없어요." "확정되기 전까지는 둘째를 여기 학교에 보내야 할지 말지 모르겠어요." "둘째는 중3이죠? 어디 알아보셨어요?" "아직 딱히 이곳이라고 정한 곳은 없어요. 목동 못 뚫으면 일산이라도 알아봐야 할 판이에요." "빨리 알아보셔야 해요. 학원 탑반은 시험 쳐서 떨어지면 아무리 돈을 준다고 해도 반 전체 수준 때문에 안 받는다더라고요. 미리 준비시켜야 해요." "큰 애랑 다르게 둘째는 누굴 닮았는지 열심히 하질 않아요. 조금만 열심히 해도 특별전형까지 생각하면서 여기서 학교 다닐 필요가 없는데, 고민이에요. 서울에 적당히 좋은 학군 들어갈 정도만 돼도 마음이 편할 텐데."
아내도 '학군'이라는 말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남한의 강남 8학군은 북한에서도 유명했다. 좋은 학군에 들어가려면 부모의 노력과 아이의 성적이 모두 필요했다. 그래서 개성공단 특별전형을 노리는 부모들이 많았다. 성적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들도 있었다.
"예전 부동산 하락기 때 집 팔고 서울 좋은 학군으로 넘어갔어야 했는데, 그 생각만 하면 잠을 못 자요." "그때 남편한테 서울로 가자고 했는데, 내 직장이 여기인데 어딜 가냐고, 북한 때문에 북쪽으로 사람들 몰리면 서울 집값 떨어질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할 때 밀어붙였어야 했어요." "제 아는 언니는 그때 개성으로 강제 발령받은 후에 바로 퇴사하고 노원구로 옮겼는데, 거기가 개성-강남으로 교통이 뚫리면서 호재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좋겠네요. 저도 남편한테 강남은 무리니까 목동 전세라도 알아보자고 했는데, 이제는 전세도 부담스럽네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계속 얘기하다 보니 끝도 없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나라에 소동이 났을 때 서울 좋은 학군으로 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가 더 커 보였다. 그때 해정 엄마가 아내를 줄곧 바라보며 침묵을 깼다.
"아영 엄마, 이 카페 처음 오셨죠? 커피 맛은 괜찮아요?"
해정이는 아영이와 학교에서 라이벌 구도였다. 엄마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리 대리의 아내에게 쏠렸다. 마치 모두가 이 아쉬움을 해결할 수 있는 구원자를 기다리는 듯했다. 아내는 순간 손바닥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남한 엄마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자신이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이 자리에 잘 어울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밀려왔다. 작은 대답 하나에도 신중해야 했다. 그녀는 숨을 고르고, 차분히 말을 꺼내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