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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Feb 28. 2023

#인스타그램 #아이돌 #크림치즈 베이글 #카공

인스타그램 앱을 열자, 딸은 남한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계정은 남한에서 온 학교 친구가 비밀리에 만들어 준 것이었다. 딸은 폰과 몇몇 SNS 계정을 위해 친구에게 몇 달치 용돈을 주고서야 겨우 구할 수 있었다. 북한 내에서는 계정 생성이 막혀 있었기 때문에 친구가 남한에서 계정을 만들어 건네줘야 했다. 게다가 당의 감시 때문에 특수 보안 어플을 돈을 주고 설치해야 했다. "절대 들키면 안 돼?" 친구가 경고했었다. 친구는 오래된 갤럭시 모델을 건네주며 신신당부했다. 만약 감찰부에 발각되면 온 가족이 곤란에 처하게 되고, 친구 가족까지 전부 남한으로 강제 송환될 위험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은 남한 친구들이 매일 사용하는 온라인 세계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곳엔 당의 새빨간 선전문구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했다. 같은 빨간색이라도 산뜻하고 예뻤다.


딸은 가장 유명한 아이돌 그룹 계정을 검색했다. 들어가 보니 현재 동남아에서 공연 중인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사진 밑에는 각국 팬들이 사랑한다고 댓글과 이모티콘을 남겼다. 딸도 댓글을 써볼까 고민했지만, 낯간지러워 그만두었다. 무대 위에서 열창하는 그들의 모습은 멋졌고, 어째서인지 남자 아이돌들이 자신보다 훨씬 예쁘게 느껴졌다. 딸은 계정을 팔로우한 후 디저트를 찾아보기로 했다. 스타벅스 딸기 프라푸치노, 크림치즈 베이글, 배스킨라빈스 오레오 쿠키 앤 크림,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설빙 초코 브라우니 빙수. 기록했던 디저트 목록을 검색하자 군침이 도는 사진들이 화면에 가득 찼다. 한입 먹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했지만, 배고픔을 오히려 더 자극했다. 놀라운 건 자기가 아는 메뉴보다 훨씬 다양한 디저트가 나와서 다 보지도 못할 정도라는 것이었다. '남한 애들은 이걸 다 맛보기나 할까?' 딸은 생각했다. 아빠 덕분에 삼성전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공장 투어는 재미없었지만, 구내식당에 있는 카페에서 딸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거기서 처음 먹어본 딸기 요거트는 아기자기한 데코레이션에 달콤한 맛이 가득했다. 이런 음료를 남한에선 동네에서도 흔하게 판다고 하니, 딸은 그런 호사를 누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질투까지 느껴졌다. 그 후 아빠에게 퇴근할 때 사 오라고 여러 번 졸랐지만, 미식에 별로 관심 없는 아빠는 그런 게 뭐가 맛있냐며 뾰로통해진 딸의 부탁을 무시했다.

딸은 또 남한의 패션 브랜드를 검색해 보았다. '스트릿 패션', '캠퍼스 룩' 같은 키워드로 검색하니 세련된 옷차림을 한 남한 학생들의 사진이 넘쳐났다. 딸은 특히 미니멀한 디자인의 후드티와 청바지 코디가 마음에 들었다. 어깨에 걸친 에코백과 앵클부츠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남한 친구와 밖에서 만났을 때 친구가 입었던 옷이 눈에 띄었다. 슬림한 청바지에 귀여운 그림이 프린팅된 맨투맨을 입고 왔는데, 부러워서 차마 칭찬도 하지 못했다. 옷감 재질도 자기 옷과 달리 부드러웠다. 교복을 입었을 때는 몰랐는데, 키와 체격이 비슷한 친구가 훨씬 날씬하고 키도 커 보였다.

뷰티도 빼놓을 수 없었다. 남한 친구들이 쓰는 틴트와 블러셔, 화장품 광고들이 눈길을 끌었다. 딸은 특히 여드름 커버를 잘한다는 파운데이션에 관심이 갔다. 광고 속 모델의 피부는 너무나 깨끗하고 맑았다. '나도 저걸 쓰면 이렇게 될까?' 딸은 화장품 구매 리스트를 작성하며 머릿속으로 변신한 자신을 그려보았다. 화장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부모님에게 발각될까 두려웠다. 그래도 언젠가 남한 화장품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딸은 심지어 인테리어와 방 꾸미기 관련 계정도 찾아보았다. 남한의 학생들이 자기 방을 어떻게 꾸미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방은 작지만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했고, 따뜻한 조명이 방을 아늑하게 밝혔다. 침대 옆에는 작은 책상과 선반이 놓여 있었고, 벽에는 좋아하는 아이돌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딸은 자신의 방도 그런 모습으로 바꾸고 싶었다. 지금 방은 너무 밋밋하고 아무런 개성이 없었다. 만약 남한에 간다면 자신만의 공간을 마음껏 꾸밀 수 있을 것 같았다. 딸의 마음속엔 남한에서의 삶이 끝없이 펼쳐졌다. 아이돌, 음식, 패션, 뷰티, 인테리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내가 남한 대학에 간다면 저런 게 가능하겠지?' 딸은 남한 명문대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공부는 자신 있었으니까, 남한으로 가는 길이 있지 않을까? 딸은 입학안내 페이지로 들어가 모집 전형을 살펴봤다. 북한 학생을 위한 전형이 있는지 자세히 찾아봤다. 100페이지나 되는 모집요강을 스크롤하다가 특별전형에서 짧은 한 줄을 발견했다.


남북협력 특별전형 - 북한 고위 간부의 자녀 혹은 그에 준하는 자격을 갖춘 고등학교 졸업자가 당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 한해 입학 자격을 부여함


고위 간부. 딸에게는 없는 단어였다. 딸의 가족에게는 닿을 수 없는 자리였다. '내 팔자에 무슨 성수동을 검색했을까.' 친구와 가고 싶었던 카페, 거기서 먹을 휘핑크림 가득한 라떼도 이제는 멀게만 느껴졌다. 배스킨라빈스, 설빙, 스타벅스. 방금 전까지 자신을 즐겁게 해주던 상상이 모두 부질없어졌다. 매일 볼품없는 옷만 입고 다니게 될 게 뻔했다.

딸은 베갯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베개는 딸의 눈물로 금세 축축해졌다. 가슴이 뻐근하고 답답했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꿈꿔도 소용없어.' 아이돌, 패션, 디저트, 그 모든 게 손에 닿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쥐어뜯었다. 애초에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연한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의 그 절망은 너무나 깊었다.

딸은 억지로 눈물을 닦고 휴대폰을 다시 잡았다. 그러나 화면에 떠오르는 밝고 행복한 남한의 모습들이 이제는 눈부시게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두근거리게 했던 것들이 이제는 잔인하게 다가왔다.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왜 나만 이러는 거야?' 질투와 원망이 섞인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학교에서는 남한 대학 입학에 대한 소개가 전혀 없었는데,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오직 축복받은 북한 귀족 계층 정도만 이런 정보를 접하고 갈 자격이 있을 것이다. 돈도 빽도 없는 딸에게 그런 혜택과 정보가 주어질 이유가 없었다. 갑자기 부모님이 미워지다가도, 그런 자신이 더 없어 보였다. 억울하고 서러웠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공부 열심히 하면 뭐 해? 난 여기서 잘해야 당원으로 일하다 죽겠지. 여기에서 태어난 죄로 평생 가난하고 칙칙하게 살다가 그게 행복이라 착각하고 죽지 않을까?' 그 생각에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답답한 방 안,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녀를 숨막히게 했다.

'난 아무리 해도 안 돼...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어.'

몸을 웅크리고 흐느끼던 딸은 이내 지쳐 잠잠해졌다. 마치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몸이 축 늘어졌다. 베개는 이미 눈물로 흥건했고, 딸은 마치 무너진 성처럼 방 한가운데 쓰러져 있었다. 현실은 너무나도 잔인했고, 그 잔인함 속에서 그녀는 아무 힘도 쓸 수 없다는 걸 느꼈다. 그저 한낱 꿈이었을 뿐이었다. 그 꿈이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그녀를 허망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참을 수 밖에 없다. 꾹꾹.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벌써 자는 거야?" 엄마가 딸의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딸은 잠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감정을 다스리려 애쓰며, 겨우 목소리를 냈다. "아직 안 자."

"그래. 냉장고에 반찬 있으니까 배고프면 꺼내 먹어. 엄마는 학부모 모임에 갔다 올게."

"응."

문 밖에서 엄마의 발소리가 멀어져 가자 딸은 다시 눈을 감았다. '언젠가 나도...' 희미한 희망을 붙잡아 보려 했지만, 현실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딸은 베갯속에 얼굴을 파묻고 다시 눈을 감았다. 울음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번에는 꾹 참았다. '더 이상 울면 안 돼. 이제는...' 그렇게 다짐해 보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너무나 쓰라렸다.


몸이 아프다던 딸이 방해받지 않길 바라는 엄마는 방문을 열까 하다가 멈췄다. 요즘 들어 딸이 방문을 잠그는 일이 있어, 사춘기에 접어들었나 싶었다. 준비를 마친 엄마는 집 밖으로 나섰다. 원래는 남한 학부모들만 모이는 모임이지만 운 좋게 초대받은 터라 빠질 수 없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엄마는 걸음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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