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대리는 퇴근 시간이 임박한 시계 바늘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이제 나가면 되는 참이었는데, 그때 전화가 울렸다. "오 책임이 부르십니다." 숨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이 시각에? 퇴근 직전의 오 책임 호출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길한 징조였다.
오 책임의 방은 사무실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직원들과는 철저히 분리된 그 방은 성벽 같은 문으로 다른 세계를 단절시키는 듯했다. 리 대리는 방으로 다가가면서도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늘 불쾌했다. 그 방 안쪽은 다른 규칙, 다른 질서가 지배하고 있었다.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이런 권위의 방은 언제나 같은 냄새를 풍겼다. 냉랭하고, 뭔가 차단된, 사람을 꺼리는 그런 냄새 말이다.
"왔나요?"
오 책임의 목소리가 바늘처럼 찔렀다. "안녕하세요." 리 대리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의 눈길은 자동으로 책임의 뒷벽을 향했다. 그곳엔 최고지도자의 사진 세 개가 먼지로 뒤덮인 채 걸려 있었다. S전자가 개성공단에 들어섰을 때, 당은 모든 사무실에 최고지도자 사진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도록 요구했다. 남한 임직원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타국의 정치적 압력이 기업에 직접 가해지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굳이 개성공단에 들어가야 하냐는 의견도 많았다. 사내 게시판은 난리가 났지만, 당의 입장은 강경했고 직원들의 불만은 위에서 가볍게 무시됐다. 그렇게 비치된 사진들이 무심한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들을 존경하거나, 경외하지 않았다. 어딘가 삐딱하게 걸린 사진은 이 나라의 과거처럼 불안정해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사진 배치만으로도 최고존엄모독죄로 사형감이었다. 리 대리는 사진들을 보면서, 이제 그것들은 실내 장식품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 책임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얼굴은 시계처럼 무표정했고, 목소리에는 따뜻함이라고는 없었다.
"이번 위클리 리뷰 메일 봤어요?"
리 대리는 순간 움찔했다. 조금 놀란 듯, "네?"라고 되물었다. 오 책임의 시선이 리 대리를 향했다. 리 대리는 그 시선을 똑바로 받아들이려 애썼지만, 그저 찰나의 인연이었다. 오 책임은 다시 모니터로 눈길을 돌렸다.
"이번 주간 검토 메일...전자우편 봤냐고요."
이번엔 리 대리가 조금 더 정신을 차렸다. 위클리 리뷰 메일,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메일 내용의 대부분은 자신이 작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리 대리는 억지 미소를 띠며 답했다. "네, 봤습니다."
오 책임은 잠시 침묵하더니 물었다. "저번 주 수율이 왜 엉망인 거죠?"
리 대리는 대답했다. "세정액 문제 때문입니다. 이미 여러 번 사용한 세정액은 새 제품과 같은 순도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세정액을 들여와야 합니다."
오 책임은 콧방귀를 뀌었다. "리 대리, 그건 저번에도 들은 이야기잖아요. 같은 말 반복하는 거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번 주엔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요."
리 대리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들어온 세정액의 품질이 저번보다도 안 좋아졌습니다. A동은 이미 새 세정액을 사용 중이지만, B동은 아직…"
오 책임의 시선이 다시 리 대리를 꿰뚫었다. "클린룸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나요? 필터는요? 세정액이 문제라면, 공급업체에 문제 제기하고 대체품을 받아야 할 거 아닙니까. 이런 걸 제가 다 지시해야 합니까? A동만 신경쓰는 건 문제예요. B동도 좀 신경 쓰세요."
리 대리는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A동은 지원이 더 많으니 상황이 나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말을 꺼내는 건 자살 행위였다. 대신 그는 배고픔에 집중하며 감정을 억눌렀다.
"오늘까지 세정액 외의 다른 원인을 기재해서 제출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자, 이제 저녁 시간인데 식사하러 가세요."
리 대리가 방을 떠나려는 순간, 오 책임의 목소리가 마지막 칼날처럼 날아왔다.
"그리고 영어 공부 좀 하세요... 동무?"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인사 평가가 다가오고 있잖아요. 영어 성적표, 제출해야죠."
밥을 제대로 넘길 수 있을까. "네." 리 대리는 어설프게 목례를 하고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