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대리님, 저 결혼해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식당 안은 점심시간이라 사람들로 붐볐고, 바쁜 대화 소리가 가득했다. 송 대리가 리 대리 맞은편에 앉으며 청첩장을 내밀었다. 평소에 침착한 송 대리가 이렇게 환하게 웃는 건 처음 봤다.
"오~ 송 대리님! 결혼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예식장이 개성에서 멀지 않으니까 주말에 바쁘지 않으면 꼭 오세요."
송 대리와 리 대리는 꽤 가까운 사이였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건 아니지만, 프로젝트 때문에 자주 같이 공정을 보고 점심을 먹곤 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가끔씩 힘든 상사에 대한 불평을 나누는 것도 그들만의 소소한 공감대였다.
"꼭 갈게요. 그런데 신랑은 누구예요? 언제 남자친구가 생긴 거예요? 저한테 말 한마디도 안 하고." "대리님이랑은 맨날 일 얘기랑 오 책임 뒷담화밖에 안 했잖아요." "하하, 그게 재밌긴 했으니까요. 그래서 신랑이 누구예요?" "공정기술 3팀의 한 과장이에요. 아시죠?" "한 과장님? 아... 그 팀과도 자주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진짜 신기하네요. 언제부터 연애한 거예요?" "대리님하고는 사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죠. 1년 전부터 교제해 왔어요." "그것도 모르고 여태껏 친한 척만 했네요. 하하."
리 대리는 송 대리를 봤다. 마스크를 쓴 모습이 익숙해져서 그렇지만, 송 대리의 얼굴은 아름다웠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 큰 눈망울과 부드러운 미소가 그녀의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일도 깔끔하게 하고 성격도 좋아서 회사 안에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리 대리는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했다. 술자리에서나 할 법한 이야기였지만, 술을 즐기지 않는 그에게는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
"송 대리님,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요? 일 얘기 빼고요." "혹시 송 대리님은 남한 남자랑 썸 탄 적 없어요?"
송 대리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프로젝트 끝나갈 때쯤 술 한잔하자는 얘기는 몇 번 나왔어요. 그런데 그냥 안 만났어요." "왜요? 남한 직원들은 생김새도 훤하고 옷도 잘 입잖아요." "겉모습만 그럴 듯하고 속이 빤히 보이더라고요. 남한에서 온 남자들 중에는 여기 여직원들을 쉽게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같은 회사 동료인데도 마치 아래 사람인 것처럼 대하고, 어떻게든 작업 걸어보려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진짜 괜찮은 사람인지 믿기 힘들었어요."
리 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 일이 있군요. 사실 저는 남한에서 온 괜찮은 남자랑 연애해서 결혼하고, 남한으로 내려가면 어떨까 생각했거든요."
남북한은 갑작스러운 교류로 인해 혼란을 막기 위해 인적 왕래는 최소화하자는 합의를 했지만, 결혼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남한으로 내려가는 건 북한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기회로 여겨졌다. 실제로 대기업에서 일하는 북한 여직원들은 남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많은 이들이 결혼해 남한으로 떠났다.
송 대리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내려가면 고생길만 훤해요. 리 대리님은 남쪽 뉴스를 보신 적 없죠?" "적응하느라 고생하겠지만, 그 후엔 괜찮지 않을까요?"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송 대리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북한 여자가 남한에 가면,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다른 국제결혼 사례보다 더 큰 차별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한국말을 쓰는데도요."
"같은 민족인데 그런다고요?"
"민족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뒤처진 건 사실이잖아요. 그러니까 북한 여자가 넘어가면 매매혼처럼 본다고 하더라고요. 거기 시부모님도 가난한 나라에서 온 며느리니까 당연히 모든 걸 챙기라고 하고, 직장도 못 다니게 된대요."
리 대리는 입을 다물고 듣고 있었다. 송 대리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도 차별을 당한대요. 남한 엄마들 사이에서는 북한에서 내려온 학부모 정보를 퍼트리고, 같은 반 배정이라도 받으면 교장한테 전화해서 항의까지 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동무'라고 놀리거나, 더 심한 말로 조롱한대요."
리 대리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간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사내에서 만나는 경우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돈 많은 고위 간부처럼 내려가는 게 아니라면, 남한에선 똑같이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자 취급을 받을 거예요. 여긴 적어도 내가 인정받고, 시댁에서도 괜찮은 며느리로 대접받을 거잖아요."
리 대리는 송 대리의 판단이 현명하다고 느꼈다. 닭의 머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는 말처럼, 여기에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한으로 시집 간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까 거기서는 남녀 갈등 상황이 꽤 문제인 것 같았어요."
리 대리는 송 대리를 보며 그게 무슨 말인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