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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May 23. 2023

나의 결혼정보회사 등급은? 어긋난 사랑의 불시착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의 리 대리 -10-

"리 대리님, 저 결혼해요."


리 대리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송 대리가 맞은편에 앉더니 청첩장을 내밀었다. 이렇게 싱글벙글 웃는 송 대리는 처음 봤다.


"오~ 송 대리님! 결혼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예식장이 개성에서 멀지 않으니까 주말에 바쁘지 않으면 오세요."


송 대리와 리 대리는 친한 사이다. 유관 부서에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성격상 같이 공정을 보다가 같이 점심까지 먹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꼴 보기 싫은 책임을 같이 험담할 수 있는 건 덤이다.


"꼭 가아죠. 근데 신랑은 누군가요? 언제 남친 만들고 결혼까지 가는 거였어요. 저한테 말 한마디도 안 하고."

"대리님 하고는 맨날 업무 얘기나 오 책임 뒷담화 얘기 밖에 안 했잖아요."

"하하하, 그게 재밌긴 했으니까요. 그래서 누군데요?"

"공정기술 3팀의 한 과장이에요. 아시죠?"

"아...... 한 과장님. 그러고 보니 그 팀 하고도 자주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진짜 신기하다. 언제 연애, 결혼 계획까지 다 한 거예요?"

"대리님 하고는 술자리를 가질 기회도 없다 보니 사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긴 했죠. 1년 전부터 교제는 쭉 해왔어요."

"그것도 모르고 여태까지 친한 게 아니라 친한 척이었네요. 하."


리 대리는 송 대리를 봤다. 공정 내에서 항상 마스크를 써서 그렇지 사실 송 대리의 굴이 이쁘다는 건 진작 알았다. 업무도 깔끔하고 붙임성도 있어서 사내에서 인기가 좋았다. 특히 남자 직원들에게 좋았다. 이 참에 리 대리는 평소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고 싶었다. 술자리에서나 가능한 얘기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는 리 대리는 같이 점심을 먹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송 대리님.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요? 또 일 얘기 빼고."

"혹시 송 대리님은 남한 남자 하고는 썸은 없었나요?"


송 대리가 방긋 웃는다.


"뭐...... 프로젝트 끝나갈 쯤에 술 한잔 같이 하자는 얘기는 몇 번 나왔어요. 근데 그냥 안 만났어요."

"왜요? 남한 직원이 생김새도 훤칠하고 옷도 잘 입잖아요."

"속이 너무 보이니까요? 남한에서 온 남자들 중에 여기 여직원을 쉽게 보는 사람들이 좀 있어. 같은 회사 직원인데 자기 아래로 취급하고 어떻게든 해보려는 진상들이. 그래서 이 남자가 진짜 괜찮은 사람인지 잘 못 믿겠더라고요."


리 대리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런 경우가 있군요. 음...... 사실 저라면 남한에서 온 괜찮은 직원과 연애하다 결혼해서 남한으로 내려가면 어떨까 생각했거든요."


남, 북한은 갑작스러운 교류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인적 왕래는 최소한으로 하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결혼까진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남한으로 내려가고 싶은 사람에겐 최고의 기회였다. (사실 이건 북한 고위층 사이에서 먼저 성행했다.) 게다가 대기업 내 사내 결혼이라면 어느 정도 수준이 맞는 사람끼리 만나는 거라 꽤 괜찮은 경우에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삼성전자 내 북한 여직원은 북한 남자에게 결혼선호도 1순위였고, 많은 혼인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무슨 소리냐고 송 대리는 웃었다.


"내려가면 고생길만 훤해요. 리 대리님은 쪽 뉴스를 보시지 않았군요?"

"내려가면 적응하느라 고생하는 건 좀 있겠죠. 그래도 그 후에는 괜찮지 않을까요?"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송 대리도 이번에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북한 여자가 결혼해서 남한으로 내려간다? 좋게 들릴지 몰라도 사실 베트남, 태국여자와 하는 국제결혼보다 더 못한 대우와 차별을 받아요. 같은 한국말을 쓰는 데도요."

"같은 민족끼리 결혼하는데 그런다고요?"

"민족이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낮은 수준인 건 사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북한 여자가 넘어왔다? 그럼 매매혼 수준으로 본다고 하더라고요.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는 마음대로 돌아가 힘들고 거기 시부모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자니까 당연히 시댁식구챙겨야 한다고 잔소리하고요. 그렇게 되면 직장도 못 다녀요."


리 대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송 대리는 계속해서 말했다.


"자녀를 낳으면 자녀까지 차별을 당한다고 하더라고요. 거기 엄마들끼리는 단톡방에다 누구 학부모가 북한에서 내려왔는지 알아보는 법이나 개인정보까지 다 퍼진다고 요. 같은 반 배정받으면 교장한테까지 전화해서 뭐라 뭐라 한대요. 게다가 그런 부모한테서 영향받은 아이는 '동무! 동무!'라고 놀리거나 (목소리를 더 낮추고)'김정은 x새끼 해봐'라고 별 발언도 고요."


리 대리 남한으로 넘어간 북한 여성의 이야기에 대해 들을 기회는 있었다. 제조업 기업이 모인 공장지대 특성상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에 따라 유흥가도 형성됐다. 당에서는 자국 여성의 품위를 망친다는 이유로 유흥주점을 명목상 단속했지만, 돈이 필요한 가난한 북한 여자와 남한에서 홀로 온 남자의 욕망이 서로 어우러져 막기가 힘들었다. (거기다 감찰 간부가 받는 상납금도 쏠쏠했다.) 그러다가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해 남한으로 내려온 경우도 있는데, 대개 좋지 않은 결말로 끝난다고 한다.

그래도 그건 정상적이지 않은 만남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라 생각했다. 사내에서 만날 경우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일 줄을 몰랐네요."


송 대리가 씁쓸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 고위 간부처럼 돈 많이 가지고 내려오지 않는 한, 아무리 대기업 명함 달고 내려와도 거기선 똑같이 남자 돈 때문에 결혼한 가난한 국가에서 온 여자로 밖에 보지 않나 봐요. 나름 저도 대학까지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살아왔는데, 거기 가서 그런 취급 밖에 못 받는 다니까 가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여기에선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결혼 후에라도 시댁에서 괜찮은 며느리로 인정받을 거니까요."


리 대리는 송 대리의 판단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계구우후라고 소꼬리보단 닭의 머리가 나을 듯했다. 리 대리가 송 대리의 말을 곱씹을 때 송 대리가 한마디 더 했다.


"그리고 남한은 남녀갈등이 엄청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뉴스를 보면 남한 내려가기가 더 무서워져요."


리 대리는 그건 뭐냐고 고개를 들어 묻듯이 송 대리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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