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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Jul 07. 2023

이대남 vs 이대녀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의 리 대리 -11-

둘은 식당 내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남한 직원들이 '아아'라고 자주 주문해서 리 대리도 시켜 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다음에는 '얼죽아'도 시켜볼 생각이다. 리 대리가 송 대리에게 물어봤다.


"그건 무슨 말이에요, 송 대리님?"

"남한 뉴스나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서로를 비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요. 뭐랄까? 서로를 마치 적처럼 대하는 느낌? 예전에 우리가 남한에게 욕하던 때보다 더 지나치게 서로를 욕하더군요. 저 나라는 가만히 놔둬도 남녀 갈등으로 망하지 않을까 할 정도예요."

"나도 우리 와이프랑 이해 차이로 싸울 때는 있지만, 남녀 갈등은 다 거기에서 거기 아닌가요?"

"대리님은 이대남, 이대녀룰 들어보셨나요?" 

"아뇨."

"이십 대 남자와 이십 대 여자의 줄임말이에요. 이 둘 간의 갈등이 가장 심하고, 여기에 더해 미혼인 삼십 대 남녀까지 포함해서 대립하는 상태예요. 부딪히는 부분은 여러 가지예요. 남자는 예를 들어 1년 반동안 군대에서 고생하는데, 저렴한 임금에 착취만 당하고 제대 이후에도 혜택이 없다고 말해요. 이에 반해 여자 쪽은 세금을 더 내는 의무도 없고 취업도 남자와 동등하게 이뤄지면서 결혼할 때 집은 남자가 해오길 요구한다고 비난해요. 여자 쪽도 만만치 않아요. 21세기에 남한은 아직도 가부장적이라고 해요. 성범죄는 계속되고, 결혼, 육아로 인해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경력이 끊기는데 집에서는 착한 며느리, 독박 육아를 강요한다고 남자 쪽을 비난하고 있어요."

"겨우 1년 반 가지고, 배 불렀네요. 하하하(북한은 10년 복무이다. 비교적 특권을 가진 대학생도 학기 내내 보초를 서고 방학 때는 복무를 해야 한다.). 남한 여자가 성격 드세고 남자 이기려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여자들은 그런 거 배우지 않았으면......" (송 대리가 리 대리를 째려봤다.) 

"아무튼...... 이런 갈등 때문에 인터넷에서 관련 정치 뉴스나 사회 이슈가 생길 때마다 서로 물어뜯기 바빠요. 무서울 정도로요."


리 대리는 쭈욱 빨며 얼음 곳곳에 숨어있는 커피를 마무리했다. 남녀 관계는 항상 미묘해서 이게 맞다, 저게 맞네 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았다. 당장 아내와 자녀 교육 문제나 가사 문제를 가지고 다툴 때 느끼지만 100% 맞는 정답은 없는 듯했다. 근데 남한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부부처럼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합의를 할 수 있는 문제일까? 리 대리는 이 부분이 의아했다.


"송 대리님, 이게 진짜 남녀 싸움으로 끝날 문제인가요?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서로 목을 조르는데, 이게 정말 해결될 수 있을까요?"

"리 대리님 말이 맞아요. 이런 문제들은 개인의 노력으로 바꾸는 건 한계가 있고 서로 비난해 봤자 바뀌는 건 없어 보여요. 개인으로서 문제의식이야 느끼겠지만 결국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당사자는 정부이죠. 제 생각에는 남한 사람들도 어느 정도 알 거예요."

"그러면 해결하면 되잖아요? 원인을 알면 답은 나오지 않나요?"

"그게 복잡해요. 좀 더 뜯어보면 남한은 서로를 비난할 거리를 찾고 있는 것 같아요. 상대가 틈을 보이면 그 부분을 물어뜯는 거죠. 이건 비단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연예인, 특정 계층, 특정 직군 등 가릴 게 없어 보여요. 경쟁이 너무 심하다 보니까 기회만 되면 상대를 깎아내리려는 관음 사회 같죠. 이런 분위기에 정치와 언론이 조금만 부채질하면 혐오가 폭발하고요."


리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상승시키려는 욕구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데, 이를 성취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 스스로를 이전보다 더 발전시키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를 낮추는 방법이다. 남한 사회는 후자를 택한 듯하다. 거대한 경제 규모까지 갖춘 남한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됐을까 리 대리는 궁금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근무 시간이 다가왔다. 리 대리는 송 대리를 다시 한번 축하해 주고, 결혼식에 꼭 가겠다며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왔다.




* 2012년 한 20대 북한 남자 대학생에게 결혼할 여성에게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이냐고 묻자, 남자는 '복종심'이라고 대답했다. 출처: 평양의 영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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