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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Feb 19. 2023

금수저 of 금수저, 박 대리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의 리 대리 -3-

"리 대리! 혼자서 점심 먹고 있어?" 박 대리가 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리 대리에게 다가갔다. 리 대리의 표정은 생각에 잠긴 듯 침울했다.

"무슨 일이야?" 박 대리가 물었다.

"오 책임이랑 얘기 좀 하고 왔어." 리 대리가 대답했다.

"너만? 책임이 너 왜 불렀는데?" 박 대리가 물었다.

"그냥...... 이것저것 까더라." 리 대리는 한숨을 쉬며 식판을 본다. 

"하아~. 그 자식 내가 언젠가 보내버릴 거야." 박 대리가 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리 대리는 박 대리를 조용히 바라봤다. 박 대리는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소문에 의하면 박 대리는 당 고위간부의 자녀 혹은 가까운 친척이었다. 이건 남한 직원들도 다 아는 사실로 누구도 박 대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남한 직원만 일할 수 있는 A동에서 박 대리가 아무 탈 없이 지낸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그것도 아주 잘 나간다. 리 대리는 자신이 어떻게 박 대리와 오랫동안 보고 지내는지 신기할 뿐이다.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만 나왔을 뿐이지 동문이라는 사실 외에는 둘 사이에 공통점은 없었다.

리 대리는 박 대리의 왼쪽 소매 사이로 살며시 보이는 금은빛을 내는 시계를 봤다. Rolex. 아무리 사치품에 관심이 없는 리 대리지만 저 글자는 안다. 뉴스에 나오는 고위간부가 차고 나오는 시계이다. 얼마일까? 500만 원? 1000만 원? 2000만 원? 리 대리는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몇 년을 모아야 저걸 살 수 있나 계산하다가 관뒀다. 이 녀석은 어떻게 이런 시계를 갖게 됐지? 가족선물? 뇌물? 다른 돈 줄이 있나? 괜스레 리 대리는 박 대리가 얄미워지다가도 다가와 준 박 대리한테 이게 뭔 생각인가 하고 자괴감이 왔다. 예전에는 이런 사치품을 대놓고 가지고 다니면 공안에서 잡아갔는데...... 누가 신고하면 어쩌려고. 동기를 앞에 두고 시계 생각에 빠진 리 대리한테 박 대리가 말했다.


"이거 중요한 소식인데 아직 다른 직원한텐 말하지 마?" 박 대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뭔데?" 리 대리가 눈을 들어 물었다.

"인사팀에서 나온 얘기야. 이번 인사평가에서 선임급 이상으로 승진하면 서울 본사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래." 박 대리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서울. 서울 발령은 삼성 내 모든 북한 직원의 꿈이다. 아니 이 회사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이라면 모두 꿈꾸는 곳이다. 서울에 가게 된다면. 서울에 갈 수만 있다면. 서울에 갈 수 있을까?  리 대리는 가벼운 두근거림을 곧바로 가라앉히고, 식판을 바라보면서 관심 없다는 듯이 물었다.


"확정된 사안이야?" 리 대리가 물었다.

"확정까지는 아직 모르고 실현 가능성이 큰 가안이라고 하자." 박 대리가 대답했다.

리 대리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깨작깨작 헤집었다. "승진하면 서울로 갈 수 있는 TO는 얼마나 나올까?"

"한 명." 박 대리가 단답했다. 깨작거렸던 젓가락이 멈췄다. 이 새끼가. 그럼 거의 너라는 얘기잖아. 밥맛이 달아났다. 롤렉스 시계가 다시 눈에 띈다. 감찰반 전화번호가 뭐였더라?


"흥미롭긴 한데, B동에서 그런 얘기가 없는 거 보면 아직 모르는 거네." 리 대리가 흥미 없다는 듯이 말했다.

"좀 기다려봐. 금방 발표날 거니까. 모처럼 없는 기회인 만큼 인사팀에서 여러 요소를 고려한다고 하니까 너도 기대해도 될 거야. 근데 이건 다른 직원한테는 아직 비밀이야?" 박 대리가 다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알았어. 난 이제 현장 들어가 봐야 해." 리 대리가 일어섰다.

"응. 난 이제 우리 팀 사람들과 먹을 차례야. 나중에 술 한잔 하자고." 박 대리도 같이 일어섰다. 그리고 멀리서 다가오는 무리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권 책임님! 차 선임님! 여기 자리 있어요!"


리 대리는 식판을 반납하고 현장으로 향했다. 서울 가는 건 그렇다 치고 북한 사람으로서 승진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온몸으로 헌신을 해야 선임이 될까 말 까다. 책임자리부터는 북한 출신이 아예 없다. 보안 때문이라고 하지만 남한에서 온 직원이 북한 사람한테 수그린다는 게 도저히 용납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남한에서 왔고, 그러니 회사 주인은 남한사람이란 것이다.

사실 개성공단캠퍼스 최고 임원 자리에 북한 사람이 한 명 있긴 하다. 당 최고위간부 출신으로서 삼성전자를 감시한다는 명목하에 당에서 은퇴하고 들어왔다. 전관예우다. 하지만 회사 경영은 전혀 신경 안 쓰고, 좋은 연봉과 오피스에 출근해서 시간만 보내고 들어간다. 우리로서는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일 뿐이다.


리 대리는 수율 관련 자료를 꼼꼼히 수정하고 제출까지 하고 난 다음에야 퇴근할 수 있었다. 오늘은 유독 고단한 하루였다. 들어오니 아내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늦었네? 저녁은 먹었어?" 아내가 물었다.

"회사에서 먹고 왔어. 아이들은 어디있어?" 리 대리가 신발을 벗으며 대답했다.

"아직 둘 다 학원에 있을 거야. 끝나려면 한 시간은 더 지나야 해." 아내가 말했다.

"요새는 더 늦게까지 공부하나 보네."

"난 학부모 모임 때문에 준비하고 나가봐야 해. 양말 제대로 벗는 거 잊지 말고." 아내가 안방으로 들어가려다 리 대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았어." 리 대리가 양말을 거실 한 쪽으로 던지려다 대답했다.


샤워를 마친 리 대리는 소파에 몸을 던졌다. 소파의 부드러운 감촉이 노곤함을 잊게 하는 듯했다. 역시 집이 최고야. TV를 켜고 뉴스를 볼까 하다가 앞에 신문이 보여 들었다. 신문 1면은 곧 다가올 위국절(爲國節)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벌써 5월 말이구나?' 리 대리는 자세를 고쳐앉아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신문의 대문자들이 5월 29일을 강조했다. 한반도의 운명이 뒤집혔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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