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앱을 열고, 딸은 남한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계정은 남한에서 온 학교 친구가 비밀리에 만들어 준 것이었다. 딸은 폰과 몇몇 SNS 계정을 위해 친구에게 몇 달치 용돈을 주어서 샀다. 북한 내에서는 계정 생성이 막혔기 때문에 친구가 남한에서 계정을 만든 후 건네줘야 했다. 거기다 당의 감시 때문에 특수 보안 어플을 돈을 주고 설치까지 해야 했다. "절대 들키면 안 돼?" 친구가 경고했었다. 친구는 한참 지난 갤럭시 모델을 건네주면서 신신당부했다. 만약 감찰부가 알게 된다면 온 가족이 곤란에 빠지게 되고, 친구 가족까지 전부 남한으로 강제로 송환된다. 그럼에도 딸은 남한 친구들이 매일 사용하는 온라인 세계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곳은 당의 새빨간 선전문구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으로 가득하다. 같은 빨간색이 사용돼도 산뜻하고 이쁘다. 딸은 현재 가장 유명한 아이돌 그룹 계정을 검색한다. 들어가 보니 현재 동남아를 돌며 공연하는 사진들이 올려져 있었다. 사진 밑에는 각국 팬들이 사랑한다고 댓글과 이모티콘을 달았다. 딸도 댓글을 써볼까 고민하다가 낯간지러워 그만둔다. 무대 위에서 열창하는 모습이 멋지고, 어째선지 남자들이 자신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딸은 계정을 팔로우한 후에 디저트를 찾아봤다. 스타벅스 딸기 프라푸치노와 크림치즈 베이글, 배스킨라빈스 오레오 쿠키 앤 크림,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설빙 초코 브라우니 빙수. 기록했던 디저트 목록을 검색하자 군침 도는 사진들이 주르륵 나온다. 한입 먹는 상상만 해도 짜릿했지만 배고픔을 오히려 자극했다. 놀라운 건 자기가 아는 메뉴보다 훨씬 많은 디저트가 화면을 가득 채워서 다 못 볼 정도였다.
남한 애들은 이걸 다 맛보기나 할까? 아빠 찬스 덕분에 삼성전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공장 투어는 재미없었는데 거기 구내식당에 있는 카페에서 딸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거기에서 파는 딸기 요거트를 처음으로 먹었는데, 데코레이션이 아기자기하고 맛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달콤함으로 가득했다. 근데 이런 음료를 남한에는 동네 주변에서 흔하게 판다고 하니 딸은 그런 호사를 누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질투까지 났다. 그 후에 아빠에게 퇴근할 때 사 오라고 여러 번 졸랐지만, 미식에는 세련됨이라곤 찾을 수 없는 아빠는 그런 게 뭐가 맛있냐고 뾰로통 해진 딸의 부탁을 무시했다.
카공도 해보고 싶다. '카페에서 공부'를 줄여서 카공이라고 부른다. 남한에서는 중고등학생만 돼도 집이나 학교가아닌 카페에서 공부한다고 한다. 카페에서 공부하고 친구랑 수다도 떨고, 배고프면 포케 샐러드 같은 브런치를 사 먹는다.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공부가 끝나고 맛집에서 즐겁게 마무리해 보고 싶다. 딸은 연희동과 성수동 맛집을 검색하며 '좋아요'를 누른다. 가보고 싶은 장소는 즐겨찾기도 한다. 같은 평양냉면인데 남한 평양냉면이 더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건 무슨 이유일까? 같은 땅에서 나오는 음식인데 왜 이리 천지차이일까?
옷도 찾아본다. '옷차림', '패션' 보다는 '~룩', '~코디'라고 검색하니까 더 많은 게시물이 나왔다. 남한 친구와 밖에서 만났을 때 친구가 입던 옷이 눈에 띄었다. 슬림한 청바지에 귀여운 그림이 프린팅 된 맨투맨을 입고 왔는데 부러워서 차마 칭찬을 하질 못했다. 옷감 재질도 자기 거와 달리 부드러웠다. 교복을 입었을 때는 몰랐는데 자신과 키나 체격이 비슷한 친구가 그땐 훨씬 날씬하고 키도 커 보였다. 인스타그램에는 남한 고등학생이 배가 드러나는 옷이나 타투까지 한 게 보였다. 같은 학생인데 얘네들이 훨씬 늘씬하고 패션모델 같이 생겼다. 딴 세상에 있는 아이들 같다. 자신은 부모님한테 틴트조차 걸릴까 봐 조마조마하는데.
내가 남한 대학에 간다면 저런 게 가능하겠지? 남한 명문대 홈페이지를 검색한다. 공부는 자신 있으니까 남한으로 가는 길이 있지 않을까? 딸은 입학안내 페이지로 들어가서 모집전형을 살펴본다. 북한 학생을 위한 전형이 있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100페이지나 되는 모집요강을 쭉 스크롤하며 찾다가 특별전형에서 짧은 한 줄을 찾았다.
'남북협력 특별전형 - 북한 고위 간부의 자녀 혹은 그에 준하는 자격을 갖춘 고등학교 졸업자가 당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 한해 입학 자격을 부여함'
고위 간부. 딸에게는 없는 단어이다. 딸의 가족한테는 닿을 수 없는 곳이다. 내 팔자에 무슨 성수동을 검색했을까. 친구와 가고 싶은 카페, 거기서 먹을 휘핑크림 가득한 라떼도 사라진다. 배스킨라빈스, 설빙, 스타벅스. 방금 자신을 즐겁게 해 주던 상상이 모두 부질 없어진다. 매일 볼품없는 옷만 입고 다닐 게 뻔하다. 딸은 베갯속으로 얼굴을 파묻는다. 애초에 가질 수 없다는 걸 예상했지만 괜히 서러워진다. 학교에서는 남한 대학 입학에 대한 소개가 전혀 없었는데,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오직 축복받은 북한 귀족 계층 정도만 이런 정보를 접하고 갈 자격이 있을 것이다. 돈도 빽도 없는 딸에게 그런 혜택과 정보가 주어질 이유가 없다. 갑자기 부모님이 미워지다가도 그런 자신이 더 없어 보였다.
공부 열심히 하면 뭐 해? 난 여기서 잘해야 당원으로 일하다 죽겠지. 여기에서 태어난 죄로 평생 가난하고 칙칙하게 살다 그게 행복이라 착각하고 죽지 않을까? 남편은 잘해야 낮은 계급의 당 간부이고, 남한 사람이나 중국 사람 밑에서 일하는 직장인을 만나도 감지덕지이다. 울다가는 베개가 젖을 듯하여 억지로 참는다. 꾹꾹.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벌써 자는 거야?" 아내가 딸이 괜찮은지 묻는다.
"아직 안자." 딸이 대답했다.
"그래. 냉장고에 반찬 있으니까 배 고프면 꺼내 먹어. 엄마는 학부모 모임에 갔다가 돌아올 거야."
"응."
몸 아프다는 딸에게 방해될까봐 아내는 방문을 열라다가 그만둔다. 요즘 들어 간혹 방문을 잠글 때도 있어 사춘기에 접어든가 싶다. 준비를 다 마친 아내는 집 밖으로 나왔다. 원래는 남한 학부모만 모이는 모임이지만 운 좋게초대된 터라 빠질 수가 없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아내는 걸음을 서두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