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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Feb 21. 2023

삼성전자를 원해 현대자동차도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의 리 대리 -5-

북측은 미국에 주요 대북제재 철회를 요구했다. 그리고 남측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공장을 개성공단에 세워 줄 것을 요구했다. 그 대가로 북한은 핵무기에 대한 완전한 폐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미국과 남한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그 가능성을 들여다봤다. 당은 핵-경제 병진노선이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지난 십수 년 간 지속된 고난이 이를 증명했다. 경제 자원을 여전히 중국에 의존해야 했으며, 마약과 불법 무기 판매 그리고 암호화폐에 대한 사이버 해킹만으로는 인민의 커지는 욕망과 불만을 잠재울 수 없었다. 당은 후진타오 체제까지의 중국과 베트남을 참고했다. 그 중심에는 결국 달러가 있었고 달러를 계속 벌어들인다면 인민의 지지 위에 당을 굳건히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핵이 없어도 말이다. 권력의 교체가 필요했던 점은 그 때문이다. 수령 무오류설과 북한 헌법으로 보호되는 핵-경제 병진노선은 권력 교체로서만 틀어버릴 수 있다. 더불어 최고 권력자 밑에서 챙기지 못했던 떡고물도 챙기고 싶고.


일본은 교섭에 훼방을 놓았다. 자신도 한반도 상황에 대한 지분을 가지며 참여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북한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이 합의하는 상황에 도달해야만 북한과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등등 상황을 껄끄럽게 하는 이유를 늘어놓았다. 남한과 북한은 본이 한국전쟁의 당사자가 아니니 빠져야 한다고 했고, 미국은 잠잠했다. 하지만 북한이 IAEA에게 핵 사찰을 선제적으로 허락하자 미국은 일본 쪽 의견을 더 이상 고려하지 않았다. 몇 년 후에 북한은 납북 일본인에 대한 사실 인정 및 반환으로 양국 간 물꼬를 틔었다. 정밀 측정장비나 공장용 로봇을 들여오기 위해선 아무래도 일본과도 정치적 긴장감을 완화해야 했다.


중국은 북한이 아직 자신의 통제에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중국-북한, 중국-미국, 중국-북한-미국 회담을 통해 이익을 요구했다. 골치 아픈 부분은 미군철수 부분이다. 중국은 북한과 미국이 수교를 맺은 후에도 미군이 한반도에 상주한다면 엄청난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이를 바꾸지 않는다면 협상을 방해할 작정이었다. 미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반도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지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은 국제질서의 무게가 인도양과 남중국해로 옮겨 간다는 점도 알고 있다. 중국은 커져가는 인도를 신경 쓸 수밖에 없고, 미국은 군사력 유지에 드는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껴서 인도차이나반도에 투입하고 싶었다. 결국에 양국은 '핵과 재래식 무기에 대한 위협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점진적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낮추도록 노력한다.'는 모호한 합의로 끝을 맺었다. 또한 중국은 북한 내 개발에 대한 우선권을 보장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당사자인 북한은 미군 철수에 소극적인 입장을 나타냈을 뿐이다.


남한에서는 대기업의 개성공단 내 유치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개성공단 폐쇄 경험과 약속을 멋대로 파기하는 북한을 두고 남한 경제를 이끄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공장을 세워주는 게 맞냐는 점이다. 여론은 또 우리가 퍼줘야 하냐는 입장에서 대부분 반대의사를 펼쳤다. 특이하게도 남한 정부는 지지율과 기반을 잃어버리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유치를 밀어붙였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남한 경제 향방을 북한을 통해 뚫어보려 했다. 침몰하느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느냐라는 생존 문제였다. 이 사례는 남한 정부가 국민의 반대를 무릎 쓰고 정치적 결단을 내린 마지막 사례가 될 듯싶었다.

사실 중소기업 사장들은 쌍수를 들고 개성공단에 들어가고자 했다. 남한에서는 청년들이 대기업이 아니면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았고, 개발도상국 출신 근로자는 햇수를 채우면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장기근속자를 찾기 어려웠다. 한국말을 쓰는 값싼 북한 청년들을 활용한다면 생명유지가 가능했다. 양국은 먼저 경제 교류 차원에서만 개방하기로 했다. 원활한 인적 왕래는 혼란을 부추기기 때문에 금지했다. 특히 북한은 한류 위협을 심각하게 바라봤다. 이미 많은 북한 인민은 K-POP, K-드라마를 보며 남한의 실체를 알고 환상을 품게 되어 검열을 해야 했다. 경제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한 생각의 교류가 일어날 인적 왕래는 최소화해야 했다.


당은 5월 29일을 거창하게 치하하고 싶진 않았다. 반기를 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일까? 그래도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를 위해 큰 결단이 내려진 날'이라는 뜻에서 '위국절(爲國節)'이라고 명명했다. 태양절이나 광명성절보단 소박한 이름이다.




"다녀왔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신문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딸이 귀가했다. 아내는 안방에서 화장하다가 나와 딸을 맞이했다.


"몸이 좀 안 좋아서 일찍 나왔어요."

"왜? 어디가 안 좋아? 생강차 만들어줄까?"

"그냥..,,,, 피곤한가 봐요. 쉬면 괜찮을 거예요."

"그래 피곤할 땐 무리하지 말고. 냉장고에 반찬 있으니까 배고프면 꺼내먹어."


딸은 아빠한테 눈길도 마주치지 않고 방에 들어갔다. 섭섭함과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 교차하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학교 끝나고 바로 학원 가니까 힘들었겠지. 리 대리와 아내에게 딸은 보석 같은 존재다. 전교 수석 아니면 차석을 굳건히 지켜 리 대리가 회사에서 자녀 얘기가 나오면 목에 힘을 줄 수 있는 순간을 줬다. 그에 비해 아들 녀석은...... 에휴.


딸은 방문을 닫은 후 소리가 나지 않게 잠갔다. 가방에서 조심스레 폰을 꺼내어 침대에 털썩 엎어져 폰을 켰다. 잠시 후 폰 화면에 'Samsung Galaxy'라는 문구가 떴다가 사라졌다. 북한에선 사용이 금지된 기종이다. 딸은 홈화면이 나올 때까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잠시 후 홈화면이 나왔고 인스타그램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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