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구마깡 Feb 20. 2023

프롤로그 - K 레짐의 몰락

그날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대규모 열병식이 예정된 것도 아니었고, 남한과 미국 간의 합동 군사 훈련이 예정된 것도 아니었으며, 무력 시위가 계획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평양 광장에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 일부는 얼어붙은 채 서 있었고, 일부는 어디론가 달려갔으며, 또 일부는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그 혼란의 파문은 한반도 북부를 휩쓸며 혼돈을 남겼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유는 불분명했지만, 후계자와 대부분의 가족, 그리고 최고위 관리들이 유럽 순방 중이라는 사실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곧이어 한반도 전체가 긴장으로 가득 찼다. 미국은 예의주시하며 한국, 괌, 오키나와에 있는 자국 기지에 경계태세를 발령했다. 남한은 준전시 상태에 돌입하며 시민들에게 근처 대피소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을 방송으로 안내했다. 만약을 대비해 방독면을 확보하라는 권고가 있었지만, 핵미사일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민심을 자극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은 이를 회피했다. 대통령은 짧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자취를 감추었고, 이 점은 후에 야당이 임기 내내 물고 늘어진 비판 지점이 되었다. 남한 철책선 주변 부대는 북쪽을 주시하며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전쟁이 발생하면 휴전선 병력의 90% 이상이 전멸할 것이라는 사실을 군인들은 알고 있을까? 사령부는 두 가지 명령을 하달했는데, 하나는 인민군과의 전투 준비였고, 또 하나는 대규모 탈북민 남하 사태를 막는 것이었다.

사태 발생 6시간 후, 공포는 호기심으로 대체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남한의 뉴스 속보는 별다른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고, 곧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이 상상력을 펼치는 무대가 되어갔다. 그들의 예측은 극단에서 극단으로 오갔다. 그러던 중 새로운 속보가 나왔다. 미 전략폭격기 B-21이 회항했다는 소식이었다. 여전히 미 항공모함이 한반도를 향해 오고 있었지만, 긴장은 어느 정도 누그러진 듯했다. 미국과 북한 간의 통신이 먼저 이루어졌고, 미국은 그 내용을 남한 측에 전달했다. 인민과 인민군에 대한 통제력이 어느 정도 잡혔고, 전쟁 위협은 대부분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모든 것이 마치 계획된 것처럼 진행되었다. 당 수뇌부는 신속하게 나머지 당원과 군부를 장악했다. 알고 보니 군 장령들은 이미 새로운 권력자들에게 충성을 맹세했었다. 평양의 군대는 즉시 방송 시설을 점령했다. 언론을 장악한 자가 권력을 차지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북한 곳곳에서 소규모 내전이 벌어졌지만, 내전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사상자와 부상자가 적었다. 몇 시간 내에 북한 전역이 평정되었다.

돌이켜보면, 당은 남한과 미국보다 중국을 더 경계하며 경고를 보냈다. 전쟁은 없을 것이니 괜한 남하를 시도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일본이 백 년의 적이라면, 중국은 천 년의 적이라는 말처럼 남한과 미국보다 중국의 내정 간섭을 더 싫어했다. 미국과 남한이 먼저 38선을 넘을 가능성은 없지만, 중국은 동맹을 구실로 압록강을 넘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북한은 극도로 경계했다. 인민군은 휴전선뿐만 아니라 압록강 주변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태 발생 24시간 안에 후계자와 최고위 관리들이 평양에 도착했다. 군대는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도열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위한 군대가 아니었다. 총칼을 소지한 군인들이 정중하게 맞이했지만, 그 형식은 최고 지도자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 포로가 된 귀빈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이 장면은 전국에 생중계되었고, 일부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대체로 잠잠했다. 어차피 그들의 삶은 절망 속에서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가족과 후계자는 좋은 여생을 보장받았다. 이미 신격화된 혈통을 해치는 것은 정치적으로 좋은 판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은 그들을 최고 예우로 대우하며, 후계자는 인민을 위해 권력을 위임한다는 형식으로 마무리되었다. 최측근의 생사 여부는 그 후로 알기 어려웠다. 일부는 숙청되었고, 나머지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곧이어 다자간 교섭이 시작되었다. 남한과 미국은 당의 요구에 깜짝 놀랐다. 그만큼 그 요구는 변화를 바라는 그들의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었다.

이전 10화 에필로그 - S전자 서초캠퍼스의 박 과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