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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May 20. 2023

SKY 캐성 2편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의 리 대리 -9-


"예, 향이 좋네요."

"아영 엄마는 참 부러워. 그렇지 않아요? 이번 중간고사 때 1등 했다면서요? 아영이는 중학교 때부터 그렇게 공부를 잘했다니 얼마나 부러워요."

"집에선 말 안 듣고 속을 많이 썩여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부모로선 운이 좋았죠."

"자식이 다 부모 속을 썩이지! 그럼 누가 그러나요?"


엄마라면 다들 공감한다는 듯이 미소가 나왔다.


"그런데 아영이는 어떤 식으로 공부를 시켜요?"


올 것이 왔구나. 아내는 말을 하려다가 머뭇거린다. 여기에는 동수 엄마도 있다. 남한에서 터넷 강의 교재와 강의를 USB로 밀반입하여 공부한다는 게 동수엄마 귀에 들어가면 좋을 게 없다. 망설임 끝에 아내는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학교 끝나면 예습과 복습을 꼭 하도록 평소부터 신경을 썼어요."


짧은 정적이 흐르다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아내는 땀이 손에서 등까지 퍼지는 걸 느꼈다.


"참 아영 엄마는 보기와는 다르게 너무 조심스럽네."

"그러게요. 누가 보면 기밀 협상하는 줄 알겠어요."


가만히 미소 짓던 동수 엄마가 아내 쪽 테이블로 몸을 숙이며 말했다.


"아영 엄마, 그러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엄마 마음이 다 자식 잘 되라는 걸 모르나요? 나도 동수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 갈 건데. 여기서 말하는 건 우리끼리 비밀로 하는 거니까 걱정 말아요."


부드럽지만 위압감이 느껴졌다. 적어도 아내에게는 동수 엄마의 말이 그렇게 느껴졌다. 이 이상 대충 넘어가려는 듯이 대답하면 동수 엄마한테도, 다른 엄마한테도 밉보일 거다. 그러면 다음 모임은 없을 것이다.


"그게 요새는 동영상 강의가 좋더라고요. 굳이 찾아본 건 아닌데 어쩌다 얻게 돼서 아영이도 그걸로 도움 받았어요."


그러자 엄마들 모두 '아 ㅇㅇ스터디!', '요새도 수학은 그 선생님인가?', '영어는 ㅇㅇ가 좋다더라.' 저마다 한 마디씩 나왔지만, 아내는 반응하지 않았다. 엄마들도 동수 엄마와 아내의 관계를 알기에 아내에게 더 묻지는 않았다. 곧이어 최대 걱정거리에 대해 얘기가 더 나왔다.


"여기 있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학원은 없지. 주말마다 서울까지 운전해서 아이 학원 등원 시켰다가 데려오는 일도 하루, 이틀이죠. 계속할 짓이 아니더라고요."

"서울대 다니는 효준이 형하고, 카이스트 다니는 근우 누나가 휴학하고 아이들 과외시키는 계획이야 반갑지만, 전 과목을 커버하긴 어렵잖아요. 전문강사도 아니고."

"서울에서 공부하는 애들한테 뒤쳐질 게 분명해요. 학원까지는 아니어도 우리끼리 좋은 선생님을 구해야 수시든 정시든 다 대비할 거예요."

"선생님은 수소문하면 구할 듯한데 문제는 입국 심사가 문제잖아요."

"그건 그래요. 공단에 다니는 직장인 가족이 아니면 입국이 아예 안되니까요."


"그건 제가 알아볼게요."


동수 엄마가 말했다.


"입국 자격이 직장인과 가족만 요구하는 건 아니어서 졸업한 학교와 신원이 보장된다면 다른 입국 자격으로 넣을 수 있어요. 필요한 서류 알려 드릴게요. 기입해서 주시면 우리 남편한테 말해볼게요."

"동수 엄마가 그렇게 신경 써준다면 고맙죠!"

"참 동수 엄마 덕분에 우리 애가 이제 여기서 편하게 공부하겠네요. 정말 고마워요!"


동수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동수도 나중에 여기 학교 친구들과 서울에서 지내야 하는데 제가 도와야지 않겠나요?"


 동수는 남한 대학에 갈 수 있나? 그런 전형을 어디에서 찾지? 우리 딸이 동수보다 공부를 잘하는데 그럼 기회가 있을까? 아내는 묻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간신히 삼켰다.


"당연하죠. 동수가 서울에 오면 맛있는 곳에 많이 데려갈게요."

"우리 이렇게 있을 게 아니라 선생님도 알아보고 스터디 그룹을 나눠서 스케줄도 짜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요. 카페 문 닫기 전에 이 테이블에 앉은 엄마들은 선생님을 알아보고, 여기 테이블은 스케줄을 짜보죠."


몇몇 사람들이 폰을 꺼내더니 손놀림이 빨라진다. 다른 엄마들은 종이를 꺼내 뭘 적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기.."


아내가 간신히 말을 꺼냈다. 몇몇이 하는 일을 멈추고 아내를 바라봤다.


"괜찮다면 우리 아영이도 그 그룹에서 같이 공부할 수 있을까요? 아영이가 어울리면서 같이 공부하면 도움이 될 거예요."


아내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조용함이 주변을 덮었다.


"아영 엄마."


해정 엄마가 말을 꺼냈다.


"아영이가 들어오면 당연히 좋죠. 근데 이게 선생님 모셔오는 비용이 있고 공부방도 구해야 하고 교재나 아이들 까다로운 입맛에 맞는 음식도 준비해야 하고 말이야. 스터디 그룹에 들어오려면 입회비를 내야 하는데 좀 비싸. 괜찮겠어요? 게다가 지금 다 편성돼서 꽉 찼네."


아내는 비싸다는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어떤 가격이든 지금 남편이 버는 수입으로 감당 가능한 입회비는 아닐 것이다. 입회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물어보면 분명 높게 부를 듯하다. 방금 편성된 그룹 같은데 꽉 찼다니. 아영이만 빼려는 거 아닐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조용히 떠날 걸, 입을 연 자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영이 얼굴이 떠올랐다. 딸이 조용히 공부하는 모습이 떠올랐고 슬쩍 본 일기장에 남한에서 먹고 싶은 걸 잔뜩 써놓은 글도 떠올랐다.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고 준수한 남편과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도 상상됐다. 언젠간 아영이가 자기를 꼭 닮은 아기를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은 북한이 아니다.


"입회비 낼게요."


아내가 입을 열었다.


"자리 비면 알려주세요."




돌아오는 길은 어둠으로 짙게 깔렸다. 어둡지만 아내는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풀썩 주저앉을 기분이다.


'괜히 나댄 거 아닐까? 아니면 공부 방법을 물어봤을 때 뭔가 더 말했어야 하나?'


아내는 고개를 숙인다. 오랜만에 신은 뾰족구두 바깥으로 핏줄이 선 자신의 발이 보인다. 또각. 또각. 또각. 입회비가 얼마일까? 아내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잠시 바라본다. 그러다 큰 호흡 후에 전화번호를 꾹꾹 누른다. 이내 누군가 받는다.


"이 밤 중에 웬 전화야? 무슨 일 있어?"

"엄마. 그냥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아빠는?"

"너희 아빠는 방금 전에 잠자리 드셨어. 나도 곧 자려고."

"저기 엄마."

"응?"

"그때 장마당에 자리 잡는 조건으로 내는 상납금은 다 냈어?"

"얘는...... 그게 한 두 푼이니. 아직 다달이 내고 있어. 당에서 너한테 무슨 연락 갔니?"

"아냐. 아냐. 혹시 상납금 때문에 힘든가 해서.."

"우리 걱정은 말고 너는 남편이랑 아가들 잘 챙겨."

"알았어. 나 이제 끊을게."


아내는 전화를 끊는다. 그래. 부모님한테 더 신세를 질 순 없지. 하지만...... 그래도...... 

저녁은 먹지 못했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러나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허기가 가슴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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