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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Aug 02. 2023

당과 노조의 자강두천 4편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의 리 대리 -15-

"지금 뭐라고 하셨소?"


전 반장은 대답하지 않고 본부장을 쳐다보기만 한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고, 어디선가 일하던 작업자들이 큰 소리를 듣고 모였다. 둘은 서로 말없이 쳐다본다. 말릴 법도 하지만 한쪽은 당에서 내려온 간부이고, 다른 한쪽은 현장을 꽉 잡은 반장이라 어떻게 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사람들이 주위에 보이자 본부장이 소리를 질렀다.


"구경 났어? 다들 자기 자리로 안 돌아가? 오늘 생산량 못 채우면 한 달간 배식권 끊길 줄 알아!"


움찔한 작업자들이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려 한다. 전 반장은 본부장을 바라보며 담담하지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움직이는 사람은 앞으로 열외야."


다시 한번 움찔한다. 이래나 저래나 앞으로 여기 생활은 순탄치 않을 듯하다. 본부장은 어이없다는 듯이 전 반장을 쳐다봤다.


"전 반장."

"본부장, 당신이 라인을 돌릴 수 있을까?"

"너 같은 거 없어도 라인 돌리는 건 간단하지."

"우리 쪽 위원회에 승인은 받으셨소? 현장 감독자인 실/반장급 허가 없이 라인 가동은 내규로 금지거든."


본부장은 피식 웃었다.


"내가 여기서 곧 위원회이고, 내 말이 내규야. 그깟 위원회가 뭐라고. 듣자 하니 남조선에서 회사 피나 빨아먹는 주제에."


전 반장이 실룩였다.


"그 자리가 무슨 신이라도 되는지 착각하시는데, 공장 문 닫고 파업하는데도 생산량 운운하며 노래를 부르는지 한 번 봅시다."


본부장은 전 반장을 노려본다. 작업자들은 본부장 얼굴이 일그러지다가 다시 침착하게 변하는 것을 봤다. 한동안 전 반장을 보던 본부장이 입을 연다.


"반장은 아무래도 강성대국을 실현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인물 같군.."


본부장은 허리춤에 달린 무전기를 빼내더니 입에 대고 말했다.


"지금 내가 있는 C라인으로 교도대 좀 보내. 무장해서 보내도록."


다시 작업자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하나, 둘 뒷걸음을 치더니 도망가는 건지 작업하러 가는 건지 떠나기 시작했다. 전 반장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교도대를 본 적은 있지만 전부 보안검색대에서 마주칠 뿐이었다. 게다가 무장한 교도대를 보진 못했다. 심장박동이 요동치기 시작한 전 반장은 말을 잃었다. 뭐라도 말하고 싶지만 눈앞의 본부장에게 무력감을 느꼈다. 본부장은 그런 전 반장을 보며 말했다.


"반장 동무."

"지금 무슨?"


본부장이 미소 짓는다.


"우리랑 어디 좀 같이 가자우. 얘기 좀 긴히 해야겠소."


곧이어 무장한 교도대가 라인에 들이닥쳤다. 전 반장은 알아봤다. 게임에서 사용했던 AK소총이 눈앞에 보였다. 다른 점이라면 총부리가 모니터 속 적이 아닌 자신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그 반장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됐어?"


리 대리는 어느새 다 타버린 삼겹살을 불판에서 집게로 건져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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