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구마깡 Jul 14. 2023

당과 노조의 *자강두천 1편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의 리 대리 -12-

근무가 끝난 리 대리는 오랜만에 대학동기인 주 과장을 만나러 갔다. 주 과장은 기계공학과를 나와 개성공단 내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같은 시기에 입사했지만 주 과장의 진급이 더 빠른 이유는 노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직급이 낮으면 현장 내 작업자에게 요청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리 대리는 먼저 진급한 주 과장이 부러웠지만, 그런 리 대리를 주 과장은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며 투덜거리곤 했다. 둘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삼겹살 앞에서 평양소주를 먼저 나눴다. 리 대리는 소주를 연거푸 원샷하는 주 과장에게 소주를 따라주며 물었다.


"요새는 별일 없고?"


주 과장은 따라준 소주를 단숨에 들이키며 다시 잔을 내밀었다.


"말도 마. 오늘도 생산량 못 채울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봤어. 신규라인 안정화도 아직 안 끝났는데 벌써부터 생산량을 기존 라인과 맞추는 게 말이 되냐고."


개성공단 내 규모로 따지면 삼성전자보다 현대자동차가 더 컸다. 반도체는 남한 전략기술로 지정되어 가장 높은 기술이 요구되는 제품이나 공급망에 차질이 우려되는 규모를 북한에 세우긴 어려웠다. 하지만 자동차는, 특히 내연기관 자동차는 그보다는 유연성을 가졌다. 해외 수요가 아직 많고, 전기자동차보다 사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당에서도 고용자 수가 많다고 좋아했다. 사측에서도 남한 내 비싼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어 삼자가 만족해하며 개성공단 내에 강력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어디나 잡음이 있기 마련이다. 삼성전자처럼 현대자동차 직장인도 개성공단으로 가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특히 노조 쪽에서는 과거 금강산 피격 사건과 갑작스러운 개성공단 폐쇄조치를 이유를 가지고 높은 위험수당과 유사시를 위한 추가수당을 요구했다. 몇 차례 진통과 협상 끝에 어느 정도 수당이 추가됐고, 개성공단에 현대자동차도 자리를 잡았다.


"전에 말한 신규라인 말이지? 그거 한 달 전에 완공됐다면서 벌써 쭉쭉 뽑아내는 거야?"

"어. 아직 후공정도 안정화 중이라 힘들다고 했는데, 기존 후공정에 밀어 넣으라고 하더라. 될 리가 있나? 그래서 타 라인이랑 조율하느라 맨날 싸움이다."

"후공정이 못 받쳐주면 어떻게 앞에서 밀어내. 너희 현장 사람들이 또 폭발하는 거 아냐?"

"폭발지. 지금 이미 죄 없는 나한테 불평, 불만 다 던지고 있거든. 웃긴 게 뭔지 알아? 당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온 총괄 본부장은 조국 영광을 위해 자꾸 생산량을 늘리라고 하지. 현장에서는 못한다고 하는데, 중간에 낀 나만 엿 된 거지."


대부분 현장 노동자는 북한 사람이지만 현장을 지휘, 조율하는 반장/장급은 다 남한에서 온 노조 쪽 사람이다. 현장에 관한 전체 운영은 남한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이유는 남한 노조가 북한 사람에게서 오더를 받기 싫은 게 더 컸다. 남한에서도 엔지니어나 임원보다 현장의 권한과 힘이 더 큰 게 노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이 절대적인 힘을 갖는 북한에서는 이 부분에서 마찰을 일으켰다.


"요새도 너한테 지x해?"

"안 하는 날이 없어. 나한테만 하면 양반이지. 저번 주에는 부품공급업체 사장한테 전화해서 일 똑바로 하라고 하더라. 거기 사장이 어이를 없어하더라고. 하하하. 여긴 서열이 확실해. 당 간부와 남한 노조 밑으로 나 같은 북한 엔지니어나 북한 작업자. 그냥 나는 하수인이야. 그냥 '야' 하면서 불러.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엔 당 간부도 자기 밑으로 봤잖아. 뭐. 이젠 본부장한텐 이제 찍소리 안 해. 안 하는 게 뭐야? 못하는 거겠지. 그 사건 이후로 본부장이나 다른 간부한테는 태도가 좀 변했어."


그 사건이란 당 노조 사이 마찰이다. 남한 신문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큰 사건이라 공단 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 자강두천: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이라는 뜻으로 유명인사끼리 싸움이 벌어졌을 때, 온라인상에서 재미 삼아 부르는 축약어이다.

이전 11화 이대남 vs 이대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