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이제서야 이해되는 반야심경 드라마

by 고구마깡 Mar 16. 2025
아래로

제목 그대로 이제서야 이해되는 친절한 반야심경 해설서다. 반야란 지혜란 뜻이다. 보통 금강경처럼 경만 붙여도 되지만 반야심경은 그 오롯한 깊이 때문에 심경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반야심경 중에서도 그 핵심을 구절을 짚어보고 드라마로 내 나름 이해해 보려고 한다.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고 일체의 고와 액을 넘어갔다."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

"무무명 역무무명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무명도 없으며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반야심경, 더 나아가 불교에서는 모든 게 空하다고 한다. 그 대상으로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의 오온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이걸 불륜드라마로 생각해보자.


색온: 내 남편이 한 여자와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현상계, 눈에 보이는 모든 거)

수온: 끝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손과 손가락 마디, 마디가 떨리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가지게 된 느낌)

상온: 순간 내 아버지가 떠오른다. 내 아버지 역시 바람기가 있었어. 그래서 우리 엄마가 고생했지. (상상, 생각, 떠오르는 마음작용)

행온: 이혼할거야. 위자료도 두둑이 받을거야. 저 여자는 상간죄 소송으로 돈을 받을거야. (의지, 의도)

식온: 가여운 내 인생... 결국에는 이혼녀가 내 인생의 엔딩이구나. 엄마와 같은 길을 걷는 내 팔자야. (이로 인한 인식 작용 혹은 메타인지(?))


그때 어디선가 부처핸썹이라는 래퍼의 노래가 흘러들어온다. 래퍼의 Hip한 hop장에 여자는 그 노래에 꽂히게 된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예압"

순간 깨달았다. 오온이 공하다니!


색온: 남편과 저 여자의 만남이 정말 바람피우는 것일까? 직장 동료인데 길 가다가 마주친 게 아닐까?

수온: 분노라는 건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방금까지 난 아메리카노를 즐겼는데 이리 쉽게 기분이  바뀌다니 분노라는 감정이 얼마나 즉흥적일까.

상온: 엄마가 정말 불행했을까? 생각해 보면 엄마가 웃는 순간은 정말 많았어. 나와 즐겁게 대화한 기억도 많아.

행온: 이혼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이혼 서류에 도장 찍는다고 정말 모든 관계가 끝나는 걸까?

식온: 이혼녀가 엔딩이라는 건 내 착각일 뿐이야. 출산 후에도 커리어 우먼으로서 승진가도를 달리고 있고, 아이도 나를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라고 생각해.


시점과 관점만 바꾸었을 뿐인데 이렇게 다르게 다가오다니... 내가 무엇에 대고 울분을 터뜨렸던 것일까. 그 모든 감정들이 손 안의 모래처럼 사라져 간다. 아까의 분노는 무엇이었을까?


또 다른 인과연의 렌즈로 내 남편을 보니, 그에게서 다른 모습도 보였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을 여의었고, 밤에 알바를 하며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사회를 잘 몰라 사기도 몇 번 당했는데 의지 할 이가 없어 혼자 이겨내야 했었다고, 외로웠다고 한다. 가엾은 사람...

여기까지 생각하니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 바람 폈다고 의심되는 그 사람.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판단을 하고 있는 걸까? 판단은 할 수 있을까? 그를 그대로 바라보고 싶다. 그러면 내 아까의 감정이 조금은 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이 연기(煙氣) 속의 연기(緣起)처럼 왔다 간다. 연기는 하늘로 사라지니 결국 空하다. 눅눅한 벽 아래에 꽃이 한송이 폈을 때, 우린 그 마음이 얼마나 빨리 변할까.


무무명 역무무명진..


마지막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무명도 없으며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그 모든 인연을 좇다 보니 결국 그 모든 게 나의 감각,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모든 것이 공한데, 나의 감각조차 공하지 않을까? 이런 와중에 집착을 하여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았나. 시제법공상. 모든 법은 공하여. 그럼 결국 감각을 통해 알게 된 인연 역시 공하게 되니.


불륜드라마가 불교드라마로 해탈을 하게 되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매거진의 이전글 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