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 살아남기_05편
비싸고 심심한 동네
소문으로 들은 것처럼 여기 물가는 살인적이다. '월세만 400만원'이다. 당신은 여기까지 와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실리콘밸리에서 직접 생활하며 느낀 점은 '스타트업 하러 올 게 아니면 참 심심한 동네'라는 것.. 주변에 멋진 자연경관과 유명 관광지가 많아 놀러 다니기 좋기야 한데 매일 놀러 다닐 수도 없고.. 평소에 퇴근한 뒤엔 딱히 할 게 없어서 늘 그렇듯 폰이나 만지작 거리며 하루를 보내기 쉽다. 한국처럼 술집이 널려 있지도 않고 다른 유흥거리도 적다. 이런 걸 떠나서 밤늦게 돌아다니는 건 목숨에 영향을 주는 생활 습관이라 지양하게 된다. 처음 왔을 때, 이미 여기서 오랜 시간을 생활한 한국인들에게 "여긴 너무 심심해~ 할 게 별루 없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었다. "뭐가 그리 심심해요~?"하고 되묻거나 속으로 궁금해했었는데 이젠 내가 직접 느끼는 것 보니 여기 생활에 꽤나 익숙해진 모양이다. 2016년 미국 게임 시장 규모가 약 35조에 달하는 것은 심심함이 한몫하는 것 같다.
옛날엔 더욱 심심했을 것만 같다는 상상을 하면서 실리콘밸리는 차고(garage)+심심함의 콜라보가 만들어낸 획기적인 브랜드가 아닌가 하는 잡생각도 떠올랐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여기서는 스타트업 관련 이벤트가 끝이 없다. 원한다면 365일 내내 이벤트만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거의 매일 사람들이 모여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하루는 'Boost VC Demo Day'행사를 참가했는데 'The real life Iron Man'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주의: 소리가 크니 볼륨을 낮춰서 재생하세요)
만약 한국에서 똑같은 행사를 했다면 대부분은 시큰둥했을 것이다. "저게 무슨 아이언맨이냐 ㅋㅋ 한 30cm는 날았냐?" "아직 멀었네.. 별로다. 가자." 아마도 이런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왔을 법하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선 이런 도전이 결과를 떠나서 그 자체로 칭찬받고 멋진 것으로 인정받는 문화를 갖고 있다. 'The real life Iron Man'의 시연이 끝난 뒤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남아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대화를 나누려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문화적인 차이점이 실리콘밸리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Bay Area K Group은 San Francisco Bay area(실리콘밸리) 지역을 중심으로 High-Tech 관련 한국계 Professional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써 경쟁이 치열한 실리콘 밸리의 첨단 기업과 벤처 사업 현장에서 개개인의 발전을 서로 돕기 위하여 생겨난 모임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커뮤니티를 쉽게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실리콘밸리의 좋은 생태계를 자발적,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서로가 더욱 잘 될 수 있도록 다양하게 교류하는 커뮤니티여서 인상 깊었다.
올해로써 제 5회를 맞이한 K-NIGHT 2017은 Bay Area K Group의 가장 큰 연례행사로 유명 스타트업 Co-founder의 Keynote, 스타트업 팀들의 모의 Pitch, 전문가들의 지식을 공유하는 Session, Networking time 등이 열렸다. 참석자들 상당수는 지금 당장 스타트업을 준비/진행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의 꿀 같은 휴식시간을 반납하고 참석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끊임없는 자기 발전 없이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나를 더욱 동기부여시켰다.
스타트업 관련 대부분의 이벤트는 원하다면 언제든 참가할 수 있다. 조금만 뒤져봐도 A to Z의 이벤트가 존재하니 아래의 플랫폼들을 참고해 흥미로운 이벤트를 골라 가보자.
MY EVENTS CALENDAR - PETER MULLEN
한국에서 온 스타트업들은 주로
많은 스타트업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모여들지만 사업 단계나 상황 별로 오는 이유가 다르다. igniteXL의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 RocketX로 예시를 들어보겠다.
아직 Early Stage에서 한참 초기 성장을 진행 중인 스타트업들은 실질적인 제품/서비스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단계로 성장시켜 본격적으로 타겟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MERCURY program을 실시한다.
이미 제품/서비스가 있고 판매/운영이 진행되고 있는 단계의 스타트업들은 성장을 더욱 가속화하고 다음 단계의 투자를 유치시킬 수 있도록 APOLLO program을 실시한다.
또한 요즘은 Kickstarter와 같은 플랫폼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이것만 전문적으로 엑셀러레이팅 받기 위해 오는 스타트업들도 있다. 크라우드 펀딩을 완벽하게 성공시킬 수 있도록 전 과정에 걸쳐 철저하게 트레이닝하고 실행시킨다. 성공사례로 www.bagel-labs.com의 제품이 있다.
드물게는, 나처럼 실리콘밸리를 직접 경험하고 무엇이든 해보기 위해 오는 스타트업/창업자도 있다.
결국은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일
일단 오긴 왔는데.. 통과한 지원사업도 없고 현지에서 나를 도와줄 지인도 없다면, 직접 발로 뛰며 사람을 만나보자. 꽤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게 좋다. 꼭 정형화된 경로가 있다기보다는 스타트업 관련 이벤트에서 만난 사람에게 용기 있게 말 한마디 꺼내는 것부터가 모든 일의 시작이 된다. 머뭇거리지 말고 행동하는 것부터 시작하길 바란다. 아래에는 사람들을 만나기 좋은 몇 가지 경로를 소개하겠다.
Bay Area K Group : San Francisco Bay Area(실리콘밸리) 지역을 중심으로 High-Tech 관련 한국계 Professional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써 경쟁이 치열한 실리콘 밸리의 첨단 기업과 벤처 사업 현장에서 개개인의 발전을 서로 돕기 위하여 생겨난 모임. Group의 정회원이 되는 것은 다소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여기서 주최하는 행사는 대부분 참석 가능하니 적극 참여해보면 좋겠다.
Bay Area Hacker Houses : 기술 창업가/개발자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각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교류도 하면서 지내는 일종의 'co-living space'다. 비슷한 관심사, 흥미를 갖고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인맥을 쌓거나 흥미로운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자 색다른 문화이다.
Global Accelerator igniteXL : 실리콘밸리에 입지 한 투자 및 엑셀러레이터 기관으로서, 각 분야 전문가 집단을 통해 한국 스타트업의 성공적인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지원한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서 실리콘밸리까지 왔다면,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우리에게 연락 주길 바란다. 무언가 함께할 수 있는 멋진 순간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두근두근)
쾌적한 근무 환경. 간지는 덤
따로 입주하여 사용하는 사무 공간이 없다면 주로 코워킹 스페이스나 카페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실리콘밸리에는 WeWork 이외에도 멋진 코워킹 스페이스가 많다. 스탠포드 근처에 위치한 HanaHaus는 유명한 카페인 BLUE BOTTLE COFFEE와 함께 있어서 기분에 따라 둘 중 한쪽을 이용하기에 좋다. Runway, EcoSystems Co-Working Space, Galvanize, GSV Labs 등 멋진 코워킹 스페이스가 많으니 이들 중 마음에 드는 곳에서 마음껏 일하면 되겠다. 대부분의 코워킹 스페이스는 각자의 서비스 정책에 따라 유료로 운영되니 서비스 내용 및 금액을 잘 비교해보자.
공짜로 코워킹 스페이스를 사용하고 싶다면 링크드인 1층으로 놀러 가자. 왠지 모르겠지만 여기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링크드인 가입 조건인가..)
실리콘밸리 일대에 있는 카페는 어딜 가도 웬만큼 분위기 있고 공간도 넓고 커피도 맛난다. 슥 보고 마음에 들면 들어가서 Wifi 있는지 확인 후 착석하면 되겠다. 쿨하고 인기 있는 카페를 가고 싶다면 PhilzCoffee, BLUE BOTTLE COFFEE, CHROMATIC COFFEE, CoupaCafe, RITUAL COFFEE, fourbarrel coffee를 들려보자. 개성이 뚜렷하고 분위기, 문화, 인테리어, 메뉴, 맛이 모두 서로 달라 각자의 멋이 있으니까 여유가 된다면 여러 곳을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그날 기분따라 일하는 장소를 바꾸는 것도 하나의 쏠쏠한 재미다.
나는 왜 왔을까?
지원사업에 통과할 멋진 비즈니스 모델도, 실리콘밸리에 와야만 하는 다른 이유도 없었다. 그냥 오고 싶었다. 그냥이라는 것을 굳이 풀어낸다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많은 실타래들이 뒤엉킨 모습일 것 같다. 사업을 한다고 해서, 스타트업에 도전한다고 해서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역설적으로 여기까지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실리콘밸리까지 와서 뭐할 건데?"라는 질문은 여정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여기 와서까지 꽤나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나름대로의 프로젝트 목적, 목표를 계획하였고 달성하기 위하여 왔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그냥'이었다. 그냥 궁금했고, 그냥 얼마나 대단한지 보고 싶었고, 그냥 간다면 무언가 흥미로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했고, 그냥 무언가 전환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와버렸다.
와서 느끼고 경험한 것은 여러모로 많았다. 이런저런 다른 점, 좋은 점, 단점 등등.. 그 모든 경험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준비된 자에게는 언제나 기회의 땅
현실 고증을 꽤나 잘했다고 평가받는 미드 'Silicon Valley'의 시즌4 1화 첫 장면이다. 주인공이자 극 중 스타트업 'pied piper(피리 부는 사나이)' CEO인 리처드 헨드릭스가 어떻게든 자금을 구해보려고 유명 VC 관계자를 거의 납치하듯? 차에 태워 Tough Pitch를 시전 중인 장면이다. 좋은 핵심기술과 서비스 성장률을 가지고도 쉽게 투자를 받지 못해 고전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모든 스타트업들을 만나보진 못했지만 실리콘밸리라고 해서 남다른 아이디어가 존재하거나 남다른 실행력이 존재하진 않는 것 같다. 비슷하다. 비슷한 아이디어, 문제, 해결책, 시행착오 등..
실리콘밸리는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다. 분명히 무언가 다른 것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모든 일이 이루어지진 않는다. 다만 내가 최소한의 준비가 되었고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앞으로 헤쳐 나갈 때, 모든 일은 그렇게 하나씩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비슷한 와중에 어떻게든 압도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스타트업/창업자가 결국 살아남는다. 어디에서나 살아남는 스타트업의 성과와 실력에는 예외가 없는 것 같다.
당신이 누구라도, 한 번쯤은
무슨 이유가 됐건, 한 번쯤은 와보길 추천한다. 스타트업이든 유학이든 여행이든 그 무엇이든, 여기는 '실리콘밸리'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와볼 만한 이유가 충분한 곳인 것 같다. 여길 온다고 해서 무언가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거나, 성공의 씨앗이 마구마구 뿌려진다거나 하는 그런 환상적인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곳을 지켜보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수요와 공급의 흐름을 읽고 문제와 해결책을 찾아서 탁월한 성과를 낼 줄 알아야 하는 창업자가, 세계에서 가장 물가 비싼 동네에 한 번쯤은 어떻게든 와보라고 하니 무슨 헛소린가.. 싶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의미와 의무에 갇혀버린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편은 '몰라서 실수하게 되는 것들'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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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소개
- 글로벌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igniteXL'와 함께 일하는 창업가
- 무작정 실리콘밸리에 뛰어들어 수 만 가지(!?) 경험을 쌓는 중
- '학습과 성장'에 관련한 IT Tool을 만드는 것에 흥미를 갖고 도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