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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원 Nov 01. 2017

자존감의 지혜 1/3

심리학자 아빠가 혼자 키우는 딸에게 전하는 지혜의 서신

오늘 아빠는 과거 자신의 못난 모습에 사로잡혀 고통을 겪고 있는 분을 만났어요.


지금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직업과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분이었어요. 하지만 십여 년이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분의 내면에는 여전히 과거 고등학생 시절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더군요. 가난하고 뚱뚱하고 못생겼던 시절의 자신이 아직도 마음속에 크게 존재하고 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과거의 자신을 알게 될 것이 두려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어요. 

사실 마음속 한편에 자리를 내어 주고 과거의 부정적인 모습을 담아 두는 것 자체가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적절하게 다룰 수만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지요. 하지만 과거의 부정적인 모습을 충분히 보살피지 못했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다른 이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한다면, 자신의 안에 있는 과거의 모습은 점점 더 큰 아픔을 겪게 돼요. 그러다가 건강한 형태로 마음속에 자리하지 못하게 되고, 현재의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되어 버리지요. 

그분의 내면에 있는 과거의 자신은 그러한 존재였어요. 현재의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위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지 못하고 아픔과 불안만을 야기하고 있었어요. 현재의 변화된 자신의 모습조차 좋아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어요. 


무엇이 그분의 자존감을 한없이 낮게 만들고 있던 것일까요?


마음속에 과거의 부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래서 과거의 싫은 모습을 지워버린다면 행복하게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길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단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에요. 과거의 모습이 내면에 계속해서 고통스러운 흔적들을 남기며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제대로 아끼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보다 정확히 말하면 단지 과거의 자신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여러 상처들이 자존감에 영향을 주어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에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게 돼요. 그중에는 좋게 평가할 수 있는 경험들도 있을 것이고, 나쁘게 평가하게 되는 경험들도 있을 거예요. 일반적으로 긍정 정서를 만들어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신을 이끄는 경험은 좋게 평가할 것이고, 부정 정서를 만들어내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자신을 이끄는 경험은 나쁘게 평가하게 되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지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평가한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삶에 큰 영향을 주는 무엇인가가 마음속에 만들어진다는 것이지요. 

어떤 경험을 하고 난 이후에 그 경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버리는 것은 아니에요.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지요.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순간에 그리고 경험을 한 이후에 각자의 마음속에서는 자신에 대한 평가의 글을 쓰게 돼요.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돼요. 이러한 과정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에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에 대한 글과 그림이 마음속에 만들어지는 과정이 반복되지요. 그리고 그러한 글과 그림들이 모여서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신념과 심상이 형성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지니게 된 신념과 심상에 기반을 두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세상과 소통을 하게 되지요. 마치 안경알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념과 심상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다른 이들을 당기거나 밀어낼 수 있고, 어떤 것에 끌리거나 거리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지요.


긍정적인 경험이 많이 이들은 예를 들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해",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와 같은 글을 반복적으로 쓰게 되고, 굳건한 신념으로 마음속에 지니게 돼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말하고 행동하는 자신의 모습이나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 등이 마음속에 반복적으로 그려지다가 핵심적인 심상으로 자리 잡는 것이지요. 이러한 신념과 심상을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면 타인과의 만남이 어렵지 않을 거예요. 당연히 보다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게 될 확률도 높겠지요.

하지만 부정적인 경험이 많은 경우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하게 돼요. 마음속에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야", "나에 대해서 알면 나를 싫어하게 될 거야"와 같은 글을 쓰게 될 수 있어요. 그리고 비웃는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이나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게 되겠지요. 이러한 부정적인 글들과 그림들에 바탕을 두고 부정적인 신념과 심상이 형성될 수 있어요. 그러한 신념과 심상을 지니고 세상과 소통을 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두려움, 불안, 괴로움 등과 함께 살아갈 확률이 증가하겠지요.

극심한 부정 정서를 수반하는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될 때, 부정적인 신념과 심상은 내면에 더욱 강하게 각인될 수 있어요. 한 번의 끔찍한 경험만으로도 합리적이지 못한 신념과 심상이 마음속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가혹한 단일 경험이 만들어낸 것이든 소소하지만 반복적인 경험들이 만들어낸 것이든 한 번 형성된 신념과 심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고 다른 모습으로 다른 환경에서 지내게 되더라도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는 자신의 신념과 심상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그것이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곁에 없다면, 계속 고통 속에서 생활하게 될 거예요. 


오늘 만난 분은 단순히 부정적인 과거 자신의 모습과 함께 살아가고 있어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어요.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만들어 낸 건강하지 못한 신념과 심상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어서 아픔을 겪고 있었지요. 비합리적인 신념과 심상들이 자존감을 낮추고 새로운 사람과의 행복한 만남을 방해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분은 자신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고, 자신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존재하지도 않았어요. 


사랑하는 딸이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무엇이든 들려주면 좋겠어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얘기해주길 바라요. 다음 편지에서는 아빠의 생각을 들려줄게요. 오늘도 사랑해요. 아빠 딸로 태어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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