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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반북스 Jul 15. 2021

보호소를 집으로 알던 고양이의 변화

[작은 친구들 5호] 박은지의 에세이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작은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의미 있고 재미 있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월1회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난 다시 태어나면 달이로 태어나고 싶어.”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달이를 보면 혀를 내두르며 말하곤 한다. 직장인에게 제일 부러울 법한 집고양이 팔자, 그중에서도 유독 부러움을 자아내는 고양이가 바로 우리 집 셋째 달이다. 식탐이 강해서 틈만 나면 밥그릇 앞으로 달려가 사료를 싹싹 긁어먹으며 조금씩 살이 찌는가 싶더니, 이젠 대놓고 ‘굴러다니기’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하늘을 보고 발라당 누워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것이다. 때론 거실에, 때론 침대에 누워 눈을 깜박이다 스르르 잠들어 버리니 우리는 실수로 달이를 밟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다녀야 한다. 


인간으로서 질투가 날 만큼 게으름 피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 귀엽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혀 고양이답지 않은 그 무던함이 웃기고 때론 황당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사실 달이의 묘생이 처음부터 마냥 먹고 살찌면 그만인 탄탄대로였던 건 아니다. 달이는 약 4살 무렵에 우리 집에 왔고, 아기 때부터 4살까지는 쭉 보호소에서 지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달이를 인터넷의 오래된 입양 공고에서 발견했다. 보호소에서 올린 입양 공고는 달이에게 가족이 생기리라는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는 듯 반년 전에 글이 한번 올라온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었다. 혹시 이미 입양을 간 것일까? 왠지 그 고양이에게 마음이 쓰인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호소에 문의했고, 고양이가 아직 보호소에 머물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보호소에 가서 달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길고양이였던 제이와 유기되어 길에서 지내고 있던 아리에 이어 우리의 세 번째 고양이였다. 어릴 때부터 보호소가 제 집이려니 하고 지냈을 달이는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무척 의기소침해 보였다. 병원에 데려가니 구내염이 너무 심하다고 해서 치료부터 시작해야 했다. 낯선 환경, 낯선 고양이들, 게다가 병원까지 오가야 하니 보호소를 벗어난 게 달이에게는 당황스럽고 두려운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먹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온 첫날에는 사료에 입도 대지 않고 그대로 남겼다. 주변을 살피면서 느릿느릿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으려고만 하는 달이가 짠했지만 기다려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보호소에서 반려동물을 입양한다는 게 마음은 있어도 실제로는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일반 가정보다는 지저분한 환경, 건강한지 알 수 없는 몸 상태, 그리고 각기 나름대로의 사연과 상처를 안고 보호소에서 오래 지낸 동물들은 사람들에게 선뜻 마음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린 동물들은 어디에서나 금방 적응하고, 사람에게 친화적이며, 무엇보다 귀엽다. 보호소에서 이미 다 자라버린 동물은 그에 비해 서먹하고 무뚝뚝해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래서 입양 갔다가도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파양되는 아이들도 있다. ‘사람 손을 타지 않는다’는 이유, 사람 입장에서 이해가 가면서도 동물 입장에서는 또 다시 상처받는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오로지 기다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도 서로 마음을 열고 친해지는 데에는 그 가운데 차곡차곡 마음이 쌓여야 하는 일이다. 반려동물이라고 한들 사람에게 당장 친밀하고 애교 많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속도를 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고양이 세 마리를 입양하면서 항상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기다리는 일이었다. 몸을 낮추고 구석으로 숨어들어가는 고양이가 혼자 있을 수 있도록 해주고, 기존에 있던 고양이와 천천히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지며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도록 합사 과정을 기다려주고, 나와 함께 있을 때 더 이상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안심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비로소 이곳이 고양이에게도 ‘내 집’이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달이는 천천히 집에 적응해 갔다. 처음 1년 정도는 대체로 무반응으로 뭘 해도 멀뚱히 쳐다만 보던 고양이가 1, 2년쯤 지났을 때부터 장난감을 잡으려고 앞발을 휘두르기 시작하고, 손만 대면 골골거리며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려고 눈을 감고,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달려와서 큰 소리로 냥냥거리며 밥을 달라고 시위한다. 그리고 지금은 집안 여기저기에 무방비로 드러누워 느긋하게 파란 눈을 깜박이고 있는 고양이가 되었다. 


낯선 고양이를 내 가족으로 들이고 그 고양이가 나를 가족으로 여기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린 고양이를 데려와 키우는 것보다는 시간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믿음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 일은 일어난다. 분명히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더 좋아지리라는 믿음. 다행히 고양이를 사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며 고양이의 마음이 편해지고 다시 내게 사랑을 되돌려주는 걸 조금씩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나는 그 과정을 오랫동안 천천히 지켜보는 집사의 일을 정말 사랑한다. 



글쓴이. 박은지

© 동반북스


<작은 친구들> 웹사이트 : http://littlepal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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