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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반북스 Dec 15. 2021

여행 갈 때 고양이는 어떻게 하세요?

[작은 친구들 10호] 박은지의 에세이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털복숭이 작은 친구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정기 간행물입니다. 월1회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지난 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눈을 떠보니 고양이들이 내 베개와 옆구리에 붙어서 자고 있었다.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는 남편이 고양이 아침밥을 챙겨주면 고양이들은 밥을 먹고 다시 내 옆에 붙어 늦잠에 합류한다. 나는 주섬주섬 일어나서 양치만 후다닥 한 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반쯤 뜨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복도를 가로지른 다음 이웃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익숙하게 누르고 들어갔다. 


이웃집 거실에서는 역시나 아직 늦잠을 자다가 문소리에 부스스 눈을 뜬 고양이 두 마리가 멀뚱히 나를 맞이했다. 나는 사료를 부어주고 화장실을 치워주고, 어느새 옆에 바짝 다가와 낯가림 없이 냥냥거리는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챙겨준 뒤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톡으로 전송했다. ‘고양이들은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이웃집 언니가 캠핑을 간 주말 동안에 내가 고양이들을 봐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행을 좋아해서 코로나 이전에는 나도 자주 여행을 다녔다. 짧게는 1박 2일로 국내 여행도 가고 틈이 나면 며칠씩 해외여행을 가는 것도 지루한 일상을 버틸 수 있는 낙이었다. 하지만 반려동물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만 집을 비워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고양이가 독립적이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우리 집 고양이들은 꼭 사람과 한 공간에 머무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면 겁을 먹고 예민해지는 고양이들은 함께 외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행을 갈 땐 집에 두고 다녀올 수밖에 없다. 고양이만 두고 집을 비울 일이 생기는 것은 많은 집사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보니, 집사 친구들을 만나면 집을 비울 때 고양이는 어떻게 하는지 서로 고민과 조언을 주고받게 될 때도 많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나는 꽤 운이 좋은 케이스다. 


사초생과 노령층, 그리고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나라에서 집을 임대해주는 행복주택 제도가 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한 뒤 월세로 신혼집을 구해서 살다가, 3년차쯤에 행복주택에 당첨되어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다.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라서 그런지 입주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단톡방이 있었다. 처음에는 가구 사이즈나 주변의 밥집 같은 정보를 공유하다가, 점점 공통 관심사를 바탕으로 친해지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중에 나처럼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집사들끼리 서로 정보를 공유하다가 친해진 몇몇이 따로 자주 만나거나 밥을 먹게 됐다. 사회에 나오고 특히 퇴사한 이후로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일이 극히 드문데, 고양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렇게 고양이의 사료나 모래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혼자 보기 아까운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공유하기도 하면서 이제는 친한 동네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서 서로의 집에 놀러가면서 고양이를 만나기도 하다 보니, 제일 좋은 점은 서로 집을 비울 때 고양이를 봐줄 이웃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고양이를 호텔링 맡기는 방법도 있지만, 여건이 된다면 고양이는 익숙한 자기 집에 머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예전에는 집을 비울 때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일주일 동안 신혼여행을 다녀올 때는 우리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남동생 찬스를 쓰기도 했었다. 거리가 멀어서 미안한 마음이 큰 것은 물론이고,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고양이를 맡기는 것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처음으로 고양이를 봐주게 된 남동생에게는 노트 한 장에 빼곡하게 주의할 점에 대한 메모를 남기기도 했었다. ‘사료는 이만큼, 물은 이렇게, 고양이는 안아 올리지 말고, 이런 행동을 할 땐 기분이 나쁘다는 뜻이니까 조심….’ 


지금의 이웃들을 만나고 나서는 아무래도 그런 걱정이 많이 줄었다. 사료나 화장실 위치는 물론 고양이들 성격도 잘 알다 보니 서로가 각자 익숙하고 든든한 펫시터가 되어주고 있는 셈이다. 주변의 집사들을 만나보면 이렇게 집에서 아주 가까운 집사 이웃을 만나 친해지는 게 흔한 일은 아닌 것 같고, 나도 사실 이웃과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된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우연히 이렇게 되긴 했지만, 나 같은 많은 집사들을 위해 앞으로는 동네마다 믿을 만한 공동체 시스템이 생겨도 좋을 것 같다. 


요즘은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사회인데, 함께 고양이를 키우고 사는 이웃을 만나니 새삼 고마운 마음도 든다. 예전에는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했다는데, 어쩌면 인간이 아이뿐 아니라 어떤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개인을 넘어 사람과 사회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년에는 이사를 가야 하는데, 그때는 이 소중한 펫시터 모임을 떠나보내야 할 것이 벌써 아쉽다. 



글쓴이. 박은지

© 동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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