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반북스 Dec 15. 2021

펫시터에서 동물복지운동가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기

[작은 친구들 10호] 양단우의 에세이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털복숭이 작은 친구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정기 간행물입니다. 월1회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햇수로만 3년째. 도그워커 겸 펫시터로서 활동하게 된 시간이 벌써 3년을 지나고 있다. 일평생을 동물에게 헌신하는 현직자들에게는 햇병아리 수준의 경력이지만, 그 짧고 긴 시간 속에서 굉장히 버라이어티한 경험들을 꾹꾹 눌러왔다. 먼저는 "내 개"가 아니라 "남의 개"를 만나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내가 과연 좋은 보호자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기를 수 있었다. 동시에 소, 중, 대형견들을 다룰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는데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일어났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껏 소수의 아이들만 케어하는 중이고.


펫시터로 왕래하는 가정의 수가 줄어들다 보니 동선도 단조로워졌다. 익숙한 길, 익숙한 아이. 친숙함은 이제 익숙함이 되어, 나는 펫시터가 아니라 펫 내니(Nanny)가 아닐까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이런 익숙함도, 뜻밖의 낯섦 앞에 와장창 깨지고 말았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길냥이들이었다.


"캣맘들이 알아서 신경 쓸 건데. 뭐 어때."


라고 생각해왔건만. 어찌하면 이놈의 뱃가죽은 등까지 붙어있는지, 어찌하면 그 선량한 눈망울은 불쌍하게 왕방울만 하게 생긴 건지, 도무지 그냥 지나갈래야 지나갈 수 없게끔 만들었다. 부랴부랴 급한 대로 편의점에 달려가서 고양이 습식사료 캔을 사 오던지, 아니면 가다랑어맛 간식을 사오던지 해서 길냥이의 배를 충족시켰다. 챱챱 잘도 먹어 치우는 녀석들을 보고 있으려니 흐뭇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녀석은 배가 빵빵해지도록 잘도 먹더니만 감사의 인사로 "냐옹!" 한 마디 울음과 함께 몸통 여기저기를 내 다리에 비비적거렸다. 옳지. 염치는 있는 놈이로구만. 뜻하지 않은 애교와 인사에 나도 적당하고 짧은 스킨십으로 답례를 해주었다.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그 골목으로 지나가면 녀석의 무늬나 털 색깔을 닮은 녀석들이 왜 이리도 많이 보이는 것인지! 한 두 마리가 아닌지라 TNR(길고양이를 포획하여 중성화 수술을 한 뒤 원래 장소에 풀어주어 길고양이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방법)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녀석들의 DNA는 서로가 형제라는 것을 99% 일치시키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길냥이들을 돌보는 활동을 알고서, 여기저기서 길냥이들의 간식 조공이 이어졌다. 때때로 길냥이들의 배를 채우고 있을 때면, 주변에서 관찰하고 있던 아이들이나 시민들이 다가와서 신기한 듯 구경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며칠 후면 그들 역시 한 손에 가다랑어 간식을 든 채 길냥이 집사가 되어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길냥이 사랑은 전염 속도가 빠르다니깐!



뜻하지 않게 길냥이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길냥이 펫시터가 되었다. 어쩌다보니 개를 21년 동안 키우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개가 오래 살았는데, 어쩌다 보니 펫시터가 되어 있었고, 또 어쩌다 보니 동네 고양이들의 급식소를 채워주고 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내 개"를 향해 고립되어 있던 흐름이 자연스레 다른 동물을 향해 퍼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길고양이를 먹여 살리고, 동물복지를 위해 힘쓰는 것. 이건 내가 아니라 유니크하고 스페셜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나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 동물 복지를 논한다고 해서 머리카락 한 올도 움직일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이놈의 길냥이들에게 단단히 홀려서는 날마다 가방에 가다랑어 간식을 한 세트씩 챙겨서 다니고 있다. 내가 하는 이 행동이 동물복지를 위한 행동인지 뭔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여튼 내가 알아 왔던 동물 보호자의 범위로부터 한 발자국 나아간 것은 분명하다. 그래, 동물복지가 별 게 있겠는가? 내 주변에 있는 동물들을 잘 거두어 먹여 살리는 게 시작이지 뭐! 이런 연고로 이번 달 카드 명세서에 한 줄이 더 쓰여질 계획이다.



"ㅇㅇ 카드 100,000원 결제. (고양이 간식 : 가다랑어맛 건강 간식)"



글쓴이. 양단우

© 동반북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