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6월 15일 토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모든 짐을 정리해서 무등산 입석대, 서석대 등 핵심적인 볼거리를 가장 단거리로 다녀올 수 있는 장소라고 하는 수만리 탐방센터를 찾아 이동했다. 수만리 탐방센터는 그리 정비가 잘 되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알고 다니러 오는 등산객들의 차가 아침인데도 꽤 많이 비포장된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목포까지 이동해서 1시에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하려면 너무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을 것 같고 초행길이라 등산과 관련하여 시간 가늠이 되지 않아 다소 불안감을 갖고 산을 오르는 데 왕복 6km 정도의 거리를 3시간 정도로 계산해서 움직이기로 계획했다. 결과적으로 계획과 크게 어긋나지 않아 다행이었고 수만리 탐방센터에서 오르막길을 올라 장불재를 지나 입석대를 보고 서석대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다른 볼거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다음에 다시 한번 여유 있게 방문할 계획을 세우기로 한다.
송순의 ‘면앙정가’ 초입부에 등장하는 그 무등산을 이제 처음 보게 된 마음이 감회가 새롭다. 담양의 면앙정, 소쇄원, 식영정 등의 정자 들과 가사문학관 등을 가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달리 인문학적 지리 지식은 발로 답사하며 알고 느끼는 감성적인 체험의 층위가 뒷받침될 때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입석대 바위의 웅장한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저렇게 수많은 세월을 지표의 어느 한 지점을 인지하는 표식이 되어준 존재들은 모두 귀한 것들이며 유정한 그 무엇들이다. 서석대에서 내려다보는 광주 시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빛고을 광주. 지난번에 5.18 묘역과 망월동 공원묘지를 찾았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증인들의 육성이 남아 있는 곳. 삶이 죽음의 흔적 위에 지속되고 있는 기억의 공간들. 앞으로의 내 삶의 남은 여정에서 이러한 장소들을 더 많이 찾아서 기억하고 반추하고 기록하고 싶다.
11시가 조금 넘어 하산을 해서 차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목포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릴 것으로 계산한다. 목포 예술 웨딩 컨벤션센터에 도착하니 결혼식이 많은지 차들과 하객들이 그득하다. 안내에 따라 근처 교회 주차장에 차를 대고 단아하지(?) 못한 복장으로 식장에 들어가니 정00 과장을 바로 만나지는 못했고 이00 주임님과 행정실 분들을 먼저 만나 인사를 나눴고 민00 교장 수녀님과 행정실장 수녀님도 뵙고 인사를 드렸다. 교사들은 이00 선생의 차로 온 것으로 보이는 지00 교감님과 이00, 이00 선생님 그리고 따로 박00, 안00 선생님이 눈에 띄어 인사를 나눴다.
식사를 먼저 하기로 하고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그간의 안부나 근황을 서로 나누는 이 상황이 왠지 마음 편안하다. 선생님들과는 자리가 떨어져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였고 식후에 차나 한 잔 하자고 해서 그럴까 하다가 아내의 상태가 최상의 조건도 아니고 혼자 끼어 있는 것이 편하지도 않을 것 같아 우리는 다음 일정을 고려해서 너무 늦어지지 않도록 그냥 불참하는 것으로 하고 양해를 구했다. 교장 수녀님께서 산정동 가톨릭 성지에 다녀오신 이야기를 하여 우리도 내일 주일미사를 거기서 볼 예정이라고 말씀드렸다. 선생님들과 행정실 식구들 수녀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목포 신항에 인양 후 거치되어 녹슬고 있는 세월호 선체를 방문하기 위해 출발했다.
작년인가 집사람과 목포에 1박 2일 일정으로 KTX를 타고 와서 시티투어를 하면서 여행했을 때 비용 대비 여행의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고하도로 넘어가는 해상케이블카를 타면서 보았던 목포대교를 건너가니 그곳이 목포 신항이고 언론에서 너무 많이 보았던 장면이어서 기시감조차 있는 세월호 거치 장소에 도착했다. 집사람이 신분증을 갖고 오지 못해 항만구역 안으로 들어가서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방문증을 받아 걸어 들어가니 저 멀리 벌겋게 녹슬고 잘린 세월호의 모습이 덩그러니 보인다. 좌측 울타리 안에 조각조각 흩어진 세월호의 잔해들도 방수포에 덮인 채 혹은 노출된 채 흩어져 있다.
외국인 부부 한 쌍이 나보다 앞서 세월호와 주변의 자료들을 읽고 있다. 무엇이 저들을 여기까지 불렀을까. 그것은 공감의 마음이 아닐까. 이제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시체팔이 하지 말라고 막말을 하는 사람들의 모질고 미욱한 목소리들에 담긴 그 둔감한 심장을 꺼내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그런 심장을 지녀야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격이 있을 것이다. 외국인인 저들은 어떤 이유로 이 더위에 이곳까지 와서 관광지도 아닌 이 장소를 돌아보고 있는가. 단순한 호기심(?). 그러나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던 그 봄날 아침에 수학여행을 떠난 십 대의 팔팔한 단원고 학생들과 일상적 삶의 흐름 안에 있던 일반인들의 목숨이 허무하게 스러졌다. 그리고 올해로 만 10년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 3월 4.3 평화공원 근처 제주 세월호 추모관에서도 그랬지만 이 상흔은 이 나라 전국에 걸쳐 깊게 스며들어 있다. 해결된 것인가. 치유될 것인가. 역사적으로 많은 고통들이 이 밖에도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지만 하나의 아픔은 다른 아픔으로 덮이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물론 승화될 수도 있고 정화될 수도 있고 해원의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위로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 본질적인 아픔은 영속적이다. 기억하는 자가 살아 있는 한. 그렇다면 모든 아픔은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이태원도 그렇겠고. 노란 리본들이 뜨거운 6월의 햇빛 아래 목마르게 흔들리고 있다. 세상은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모질어 가는 기후 변화에 직면한 인류 생존의 위기 앞에서 얼마나 더 시치미를 뗀 채 관행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저마다 답을 찾아야 한다. 혼자서 그리고 다 함께. 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
세월호를 뒤로 하고 목포대교를 다시 건너 북항거리로 갔다. 진도로 가기 전에 아내가 준비한 물회 육수를 활용하기 위해 횟감을 좀 장만하려고 한다. 광어 한 마리를 물회용으로 썰고 반은 횟감으로 떠서 매운탕 거리와 함께 얼음을 동봉하여 샀다. 한여름에 버금가는 날씨라 손님들이 없다. 물이 계속 먹힌다. 가게에서 고맙게도 생수 작은 걸 주셔서 금세 비워냈다.
북항에서 다시 목포대교를 건너 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활용하여 진도를 향해 달린다. 1시간 30여 분 정도. 진도대교를 건너니 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도로는 진도를 중앙으로 관통하여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팽목항으로 간다. 진도항이라는 이름은 중립적인데 팽목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 왠지 세월호의 아픔과 그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배어 있는 것 같은 정서적 여운이 묻어난다.
진도 아래쪽 해안선까지 달려 도착하니 여기서 제주나 추자도, 조도 등을 연결하는 여객선터미널이 깨끗한 모습으로 반긴다. 그 옆의 파쇄석으로 정리한 다소 어수선한 공간에 컨테이너로 꾸며진 팽목성당과 기억 추모관이 있다. 당시에 그리고 오랫동안 이곳에서 있었을 일들이 그간 읽은 세월호 관련 기록들을 통해 연상이 된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520번의 금요일’ 같은 책은 물론이고 리본에 써진 짧은 말들이 바람에 날리는 듯하다. 이곳은 이제 적막이 감돈다. 10년의 세월은 그 아픔을 어느새 무디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너무 늦게 나는 여기에 온 것이 아닐까. 세상의 아픔에 반응하는 속도가 너무 느린 것은 아닐까.
조도에서 들어오는 페리선을 보니 사람들은 여전히 배를 타고 섬을 오간다. 제주를 비롯하여 울릉도, 조도, 추자도 등등. 불행한 사고의 가능성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최선의 구체적인 기준을 높여가는 것이 우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겠다. 음주 운전과 같은 일들, 타인의 생명을 이익을 위한 산술적 대차 대조의 한 숫자로 치환하여 계산하는 냉정한 자본의 논리, 인구 감소의 문제를 사회적, 문화적 차원이 아닌 경제적 보상의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안이함 등에서 돌아서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팽목항의 빨간 등대와 리본 조형물을 뒤로하고 삼별초 공원에 있는 자연풍경 캠핑장으로 이동했다. 파쇄석이 있는 야영지라 플라이를 치는 것이 좀 어려워서 대강 정리하고 루프탑 텐드를 펼치고 물회로 시원하게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의 생기발랄한 목소리가 새소리처럼 들린다. 토요일 오후라 주말 야영객들이 꽤 있다. 진도에 꼭 한 번쯤 와보고 싶었다. 소치 허련의 ‘운림산방’에도 가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좀 전에 다녀온 팽목항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풍문으로 듣는 일들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타인의 해석과 평가를 기반으로 판단하고 수용하는 일은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가치의 관점에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점점 극단적으로 편이 갈리고 개인의 이해관계가 중첩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행동 기준이나 가치관에 따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갈등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감각에 기반한 큰 담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한스 큉이 추구한 종교적 일치의 정신도 우리에게 영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의 세 종교 역시 아브라함의 종교적 유산을 물려받은 공통점에 주목하여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앞으로 전 지구적으로 우리가 하나의 인간 가족이라는 점을 확인하면서 더 나아가 생명 일반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기반을 발견하는 날들이 오게 되기를 바란다. 사회적 갈등지수가 치솟고 있는 요즘 어떤 마음가짐으로 남은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길을 잃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