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의 남도 순례기

- 2024년 6월 16일 일요일

by 차거운

아침에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소치 허련의 자취가 남아 있는 운림산방으로 갔다. 아직 개장할 시간이 되지 않고 해는 쨍하여 현기증이 나서 잠시 툇마루에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늘 생각하는 바이지만 세상에 태어나 살았던 개별적인 한 사람의 삶의 흔적이란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은 단지 한 권의 책을 지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존재 이유를 나름대로 그 저술 과정에서 증명한 셈이 되는 것이 아닐까. 예술가의 삶도 그러하다. 고흐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글은 그의 개인적 개성의 삶과도 분리될 수 없는 구조체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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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산방 옆에 절이 있는데 산문을 보니 첨찰산 쌍계사라고 씌어 있다. 절 옆으로 안내되어 있는 상록수림 길이 아주 좋아 보여 그리로 걸어가니 3km 정도 거리에 정상이 있다고 이정표에 안내되어 있다. 산책 삼아 걸어가니 길이 울창한 나뭇가지의 그림자에 가려져 바깥과 달리 어두울 정도로 그늘이 져 있다. 울릉도에서 나리분지 주변 천연림의 싱그러움에 비길 만한 상쾌함을 주어 멈춰 돌아서지 못하고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서 앞으로 계속 걸어간다. 집사람은 샌들을 신고서도 길과 숲이 주는 분위기에 취해 끝까지 갈 태세인 듯하다. 다만 주일이니 미사 참석을 고려해서 적당한 지점에서 돌려세워 길을 되짚어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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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산정동 성당에서 9시 미사를 보는 것은 거리상 시간상 가능할 것 같지 않아 검색을 통해 가까이 있는 진도성당의 10시 30분 주일미사에 참석하기로 하고 움직였다. 삼별초 공원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진도 읍내에 위치한 성당을 찾아가니 한 대밖에 없는 미사라서 그런지 벌써 주차장에 차들이 그득하다. 성당은 아담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2층 구조였는데 한동안 유행하던 국악 미사가 여기 진도아리랑의 고장에서는 여전히 활발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 인상적이기도 했다. 진도에 국악고등학교가 있다는 이정표를 보고 온 터라 그렇기도 하겠구나 하고 수긍이 되기도 했다. 광주대교구 소속의 본당이고 지난번 우리가 묵었던 울릉도 천부 성당은 대구대교구에 속해 있는 섬 성당이었다는 점도 기억하게 된다. 지역은 달라도 가톨릭교회의 믿음은 차이가 없다. 나는 그 점이 좋다.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믿음이 있고 믿음이 있는 한 하나의 미사가 거행된다는 점은 가톨릭의 소중한 장점이다. 더구나 이렇게 파편화되고 갈라진 세계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관점과 하나 된 가치관과 믿음이 주는 위안은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거기에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늘 도사리고 있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미사를 마치고 아직 진도에서 미처 살펴보고 둘러보지 못한 곳들이 많다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목포를 향해 출발한다. 울둘목 한정식 뷔페라고 이름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가정식 백반인데 집사람의 만족도는 좋은 편은 아니지만 가성비의 측면에서 나는 이런 종류의 식사를 좋아하는 편이다.

목포 산정동 성당에 도착해서 놀란 것은 여기에 이렇게 큰 규모의 대성당이 산꼭대기에 서 있다는 점과 함께 예수님, 성모님 상이 목포 시내를 향해 다양한 방향으로 서 있는 모습이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의 예수상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성모상의 경우 규모는 크지 않지만 울릉도 도동성당의 산꼭대기에 서 계신 성모상이 바다를 향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도 했다. 여기 이렇게 큰 건축물이 들어서고 기념되게 된 근거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았다. 교장 수녀님이 어제 다녀가셨다고 하고 주말인 오늘 가톨릭 신자들이 상당히 많이 방문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우선 이곳은 산정동 성당이고 목포에서 먼저 세워진 성당이고 주교좌급 성당이었다고 한다. 현재 레지오 마리에 관련 기념관으로 운영되는 건물이 그곳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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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레지오 마리애 활동과 관련된 교육시설, 피정시설 등으로 규모가 어마어마한 교육관을 둘러보면서 수능 때면 프라하의 아기 예수님 앞에서 드리던 시간경에 대해 설명된 성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믿음은 어디쯤 있는가.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그런 굳은 믿음을 견지하고 있는가. 전대사를 구하여 의식적으로 노력해 본 적이 없는 입장이지만 하느님께서 나의 과거의 모든 잘못을 감싸 안아 정화시켜 주시기를 원하지 않은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제가 겸손되이 청원하오니 저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옷을 입히듯 새 영과 새 심장과 새로운 삶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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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동 성당을 벗어나 이젠 신안군 증도에 있는 엘도라도 리조트를 향해 가기로 한다. 전에 군산의 고군산군도에 가서 섬으로 육지가 된 작은 섬들을 돌아보면서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섬에서의 삶이 조금 답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안을 거쳐 해제, 지도읍을 지나 증도로 건너갔다. 이 섬들이 다리로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배로 드나들어야 하는 섬이라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텐데 육지와 연결된 다리 덕분에 주민들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엘도라도 리조트는 연립식으로 독립된 숙소 건물들이 바닷가에 군집되어 있는 독특한 형태의 숙박업장이다. 기존의 콘도나 숙박시설이 한 덩어리의 구조물을 이루고 있어 답답하다면 이곳은 타운하우스처럼 한 채에 3층 정도로 층마다 3개 객실이 있어 총 9개 내외가 된다. 물론 평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그러하다. 객실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객실 냉장고를 활용하여 그동안 아이스박스에서 녹은 것들을 꺼내어 다시 정리한 뒤 식사와 샤워를 마치고 발코니에 앉아 바닷가를 내려다보았다.

야영장으로 떠돌다가 안정된 숙소에 들어와 편안하게 쉬고 있으니 몸과 마음이 푸근해지고 이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 하는 만족감을 준다. 텐트에서 노숙하듯 자던 이틀간의 뻐근함에 지친 몸뚱어리가 편안한 숙소가 제공하는 편의성과 안락함에 두 팔 벌려 환호하는 그 태세 전환의 신속함이 나를 놀라게 한다. 하여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일정한 비용을 들여 이 편의를 살 수 있는 구매력은 시장경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기 효능감을 느끼게 한다. 경제적 여유는 중요하다. 그러나 한계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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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의 모범처럼 나는 저 밑바닥의 궁핍을 경험해 본 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용의가 있다. 편안함이 때로 익숙하지 않아 불편한 느낌을 줄 때가 종종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이 불타는 시점이 머지않아 오지 않을까. 그때에도 안락함을 찾아 몸부림칠 수 있을 것인가. 불편을 견딜 각오, 때로는 죽어야 할 순간에 구차하게 삶을 구걸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을 늘 잃지 않고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밤에 어두워지는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한다. 좀 더 치열하게 시간을 선용하면서 살아내야 할 날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일 이후의 여정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차피 신안군의 반쪽을 이번에 제대로 보고 가지 못할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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