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그동안의 성지 순례 일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1박 2일의 여정에 올랐다. 집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준비하고 집사람의 출발 신호가 떨어짐에 따라 구리를 거쳐 중부고속도로 마장휴게소에서 간식을 좀 먹고 주유를 하고 화장실에도 다녀왔다. 호법에서 영동선으로 갈아타고 여주 근방에서 국도로 빠져서 서지마을을 향해 길을 재촉한다. 이곳은 행정구역상으로 원주시 부론면에 속하는 곳인데 최양업 신부님의 친척인 최해성 요한이 교우촌을 형성하여 살았던 곳으로 최양업 신부님의 서한에 언급된 바 있다고 한다. 며칠 전에 성전과 순교자 기념 성모당이 언덕에 조성되어 봉헌된 모양으로 아직 조성 공사의 마무리가 채 정리되지 않고 있는 느낌이었다. 성모당에는 원주교구 출신 순교복자 세 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가 그들이다. 그러나 기록에 남지 않은 무명의 순교자들이 사실은 더 많을 것이다. 세상이 그들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성인 품에 오르지 못한 무명의 순교자들을 똑같이 두 팔 벌려 안아주고 계시리라 믿는다. 전체적으로 서지마을 성지는 이제 막 꾸며진 산뜻함이 있으면서 앞으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순례자들의 쉼터와 묵상지가 되리라 생각한다.
여기 서지마을에서 배론까지는 정말 지척이지만 배론은 모든 성지를 방문한 뒤에 마무리로 가야 하기 때문에 경북 문경시에 있는 진안리 성지를 먼저 방문하기로 한다. 충주를 거쳐 수안보와 괴산을 거쳐 문경새재 옛길과 겹치면서 새로 난 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지 않고 이화령 터널을 통과하여 경북 문경읍 진안리로 들어선다. 문경새재 드라마 촬영지 세트장이 있는 방향의 초입에 진안리 성지가 있다. 사실 이곳은 새재를 넘어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옛길에 있던 주막 터라고 할 수 있겠다. 최양업 신부님의 사목 활동 지역이 영호남과 충청 강원 경기를 아울러 무려 127개 교우촌(공소)에 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울주의 죽림굴(대재 공소) 근처에서 서울로 이동하려면 거쳐야 할 길목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음식을 드시고 장티푸스와 과로 등이 겹쳐 앓아눕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곳이다.
청양 다락골에서 출생하여 서울로 이주했던 최양업 신부 일가가 철원의 김성 교우촌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인천 서구 접푸리 근방으로 이주하게 되고 여기서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양업 신부는 중국을 거쳐 마카오로 김대건, 최방제 신학생과 셋이 사제가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고 한다. 그가 유학을 떠난 후 그의 가족은 안양의 수리산 교우촌으로 가서 살다가 기해박해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순교의 길을 걷게 되었고 1849년에 사제품을 받고 귀국한 후에 남은 동생들을 용인의 한덕골에서 재회하게 된다. 물론 유학과 귀국 사이의 과정은 다른 이야기들이 있고 프랑스 함대와 동행하여 신시도 부근에 좌초한 경험도 그 생애의 한 발자취가 되어 남아 있다. 사제가 되어 국내에서 사목하던 그 영역이 그토록 아득하게 넓었으며 매 걸음걸음이 목숨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길을 향해 가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간의 의지 너머에서 오는 소명을 생각하게 된다. 그 고단한 사목 활동의 여정이 이 지상에서 마지막 걸음을 멈춘 곳이 바로 이곳 진안리 성지가 된다. 성지는 조촐하게 터가 확보되어 묵상하기에 적절하다. 건물이나 넓은 주차장이 없어도 이 장소가 지닌 맥락을 생각하면서 잠시 길을 멈추고 기도할 수 있다면 좋을 듯하다. 이곳에서 숨을 거두고 난 뒤에 다시 배론으로 옮겨져 안장되었고 배론 성지에 묘소가 있다.
충주시 산척면은 나의 고향이다. 선산도 있기에 산소에 들러야 한다. 선산이라고 해야 이북에서 해방 후에 내려왔기에 증조모와 조부모님과 아버지 이렇게만 잠들어 계신다. 우리 집안은 단출하다. 최양업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 이번 성지 순례를 하면서 사람의 일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와 목표를 생각함은 물론이려니와 가족의 유산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최양업 신부님의 부모님이 걸어가신 길과 최양업 신부님의 삶이 하나의 방향을 향해 있고 그들의 후손들은 혈연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덧붙여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면 우리는 하나의 몸을 이루고 하나의 영적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그 지평의 넓이는 제한이 없어야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인간적인 논리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전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 세상을 보라.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는 말씀처럼 착한 목자가 아니라 곁길로 이끌고 새끼 양을 잡아먹는 행태를 보이는 가짜 목자들이 횡행하는 것을 본다. 가짜 메시아들. 권력과 돈과 욕망을 추구하면서 사람들을 혹세무민 하는 거짓 예언자들이 참 많다. 모든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십자가의 고통 안에 인간의 실존과 고통에 대한 신의 답이 있다. 이것이 나의 마음이요 심장이다. 오직 사랑뿐이다. 머리로 아는 것은 가슴으로 아는 것과 다르다.
시몬 베이유가 죽음 앞에 이르러서도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가시적인 교회의 영역은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자캐오들이 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서 간절하게 구원을 갈구하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스승이신 예수님처럼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너의 집에서 묵겠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라는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한 발 다가서는 착한 목자들을 기다린다. 프란치스코 전임 교종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교회는 더 울타리를 헐고 나아가야 한다. 세상 속으로 자캐오들 속으로.
산척면 소재지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산소에 올라가서 인사를 드리고 숙부님들이 심어 놓은 자두나무와 살구나무 보리수나무를 살펴보았다. 보리수는 농익어서 많이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딸 것이 많다. 두 주먹 정도 따고 고사리가 보이는 대로 한 줌 꺾어 챙기고 자두를 보니 아직 시퍼렇고 살구도 노랗게 물이 들려고는 하지만 시큼하고 덜 익어서 먹기는 어렵겠다.
그래서 돌아서서 천등산 박달재 그 ‘울고 넘는 박달재’를 향해 조금 가다가 박달재 자연휴양림의 야영장으로 진입했다. 오랜만에 루프탑 텐트를 사용하게 되었다. 평일인 목요일이라 야영장에는 사람이 거의 없이 한적한데 우리를 빼고 두 자리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인다. 야영 데크 옆에 차를 대고 텐트를 펴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아무것도 준비를 한 것이 없어서 보리수를 씻어서 후식 삼아 먹었는데 알이 실하고 달았다. 지금까지 먹어본 보리수 중에 최고 등급의 맛이다. 큰길 옆이라 차량들 지나는 소리가 꽤 신경이 쓰이지만 주변 자체는 깊은 산속에 들어와 있는 호젓함이 있다. 물소리가 청량하게 들린다. 지난 16일부터 2주간에 걸친 성지 순례의 대장정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묻는다. 너는 무엇을 위해 2,000km에 달하는 거리를 움직이며 최양업 신부의 발자취를 따라간 것이냐. 그 답은 천천히 삶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주변 정리를 하고 고사리를 데쳐서 찬물에 헹궈서 독성을 빼고 라면 2개를 데친 고사리를 넣고 끓여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설거지를 마친 후 텐트를 원위치하고 산속으로 임도를 따라 산책을 했다. 습기를 머금은 산의 신록이 다소 축축하기도 하지만 덥지 않아서 다행이다. 야영장을 빠져나와 17km 정도 떨어진 제천 봉양읍에 속한 배론 성지로 향했다. 배론 성지에 여러 번 왔었지만 이번 방문이 특히 남다른 것은 알다시피 전국 30여 군데에 산재한 최 신부님의 행적을 따라 마지막 여정으로 그분이 쉬고 있는 묘소에 왔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완주를 위해 순례 책자를 제출하고 11시 미사 후에 순례 완주증을 받기로 하고 성직자 묘역으로 올라가서 원주교구 성직자의 무덤을 돌아본다. 지학순 주교님의 무덤 앞에서 잠시 묘석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지 주교님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강원도 태백에 살면서 철암 공소에 다니던 때에 형과 함께 장성 본당에서 견진성사를 주신 분이다. 아마 81년쯤 될 것 같다. 그리고 알다시피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 성직자의 본분에서 예언자적 목소리와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남긴 분이기도 하다. 나중에야 그런 내막들을 알게 되었기는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후 말이다. 사람과 사람은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하느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든 세상만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작은 말, 행위, 생각 하나하나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신중하게 살아갈 일이다. 한 번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주어진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고 길을 잃지 말아야 한다.
최양업 신부님의 묘소에서 시복 시성을 위한 기도를 이번 순례의 마침을 찍는 의미를 담아 드렸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후배 선생님의 부군이 신부님의 전구를 통해 치유되고 다시 건강하게 될 수 있기를 아울러 기도했다. 조상들의 음덕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다른 누군가의 음덕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다는 것이 바로 그런 뜻이 아니겠는가. 가장 크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희생의 덕으로 우리가 구원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겠고.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작은 음덕이라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희망한다. 기도하는 것이 그 실천의 출발점이리라. 서로를 위해서 연민과 애정을 담아 기도해 줄 수 있기를 희망하자.
배론 성지의 황사영 토굴과 다른 조형 기념물을 돌아보고 11시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소성당에 들어가니 평일임에도 수녀님들(아마 근처에 계신 살레시오회 소속이실까?), 순례자들이 꽤 있다. 결혼을 예정한 한 쌍이 독서를 한다. 좋은 일. 성지 담당 곽호인 신부님이실지는 모르겠는데 강론 말씀이 간결하면서도 따듯하다. 준주성범의 정신처럼 하느님의 성심이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을 모범적으로 따른 사제가 최양업 신부고 성인들이니 작은 감정들을 내려놓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미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가서 완주증을 받았다. 이 완주증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행위의 마침표를 찍는다는 점에서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여름에는 가급적 조용히 지내려 한다. 10월이 올 때까지. 최양업 신부님의 삶을 생각하면서 아직 살아 있는 우리들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기도하면서 지내도록 하자. 2주 동안 집사람과 운전을 하면서 전국을 누비고 다녔던 길에서 아무런 탈이 없이 무사히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돌봐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최양업 신부님, 이 나라와 이 땅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