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8월 29일 목요일
8월 29일 목요일 아침 6시 20분경 집을 출발해서 구리에서 외곽순환도로에 진입한 후 중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울릉도 갈 때 탔던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를 따라가다가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로 진입했다. 경주 숙소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30분쯤 되었다. 체크인이 2시부터라 숙소 주변을 걷고 쉬다가 맞은편 켄싱턴 리조트 건물 내의 애슐리 퀸에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이 먹을 만했다. 기억에 남는 일은 우리 뒷자리에 비구니 스님 한 분이 혼자 식사를 하시는 것을 보았다. 나름 열심히 음식을 드시는 것을 보고 절 공양 방식대로 채식을 하시려면 다소 제약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혼자 생각을 해봤다.
여름이 여전히 뜨겁지만 일본 쪽으로 방향을 튼 태풍 ‘산산’으로 인한 영향으로 바람이 많이 불기 시작하고 비도 간간이 내릴 것 같다. 여름이라 주변에 백일홍(배롱나무)이 많이 피어 있다. 올여름은 또 하나의 기록적인 폭염을 선사하고 있다. 이제 그 끝자락에 서 있기는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일 수도 있으리라. 한동안 휴대전화의 사진 기록이 없다가 다시 사진 파일이 저장되기 시작한다. 이제 곧 추석이 다가오고 지나가면 10월에는 계획된 대로 지리산 둘레길을 마저 다 걷고자 한다.
점심을 먹고 나름 열심히 시간을 보냈지만 여전히 체크인 시간까지 이삼십 분 가량 남았다. 실내에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되어 앱으로 체크인 수속을 마치고 짐을 숙소에 정리한 뒤에 오후 일정을 시작했다. 숙소에는 휴가의 절정기가 지났으나 여전히 사람이 많은 편이다. 물놀이장에서는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수영 시인이 했다는 말처럼 ‘삶이 늘 잔치’일 수는 없지만 가능하다면 삶이 더 너그럽고 느릿하며 푸근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대해 본다. 우리 사회는 너무 치열하게 살고 있다. 죽을 듯이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생명력을 소진하고 있다. 여행이나 휴식조차도 전투를 치르듯 겪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숙소에 짐을 정리하고 느긋하게 황룡사 9층 목탑 박물관을 향해 출발했다. 주차장에 도착하고 보니 모전석탑이 있는 분황사였다. 무슨 일인가 주변을 살펴보니 바로 그 옆이 황룡사지이기도 하다. 분황사에 들어가 모전석탑을 둘러보고 경내를 살펴본 뒤에 분황사 터를 향해 걸어서 이동했다. 비가 오락가락한다. 예전에 수학여행의 일환으로 이 탑을 방문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주마간산 격으로 스쳐 지나기 쉬운 일이지만 그 찰나의 인상들은 우리의 무의식에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분황사 넓은 터에는 꽃이 한 무더기 피어 흔들리고 있다. 코스모스 그리고 이름 모를 노란 빛깔의 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에 들어가서 1/10 축소 모형 탑을 보고 영상실에서 황룡사와 관련된 입체 영상을 보았다. 경주. 규모가 좀 작을 뿐이지 로마 못지않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역사가 고대에는 서로 고립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은 것이 카오스 이론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이쪽의 작은 변화는 지구 저편의 공간과 문화에 가시적으로 혹은 조용히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문화적 양자 얽힘에 해당한다고 비유적으로 말할 수도 있겠다.
황룡사를 떠나 진평왕릉에 갔다. 경주 곳곳에 왕릉과 사적이 있으니 찬찬히 돌아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 진평왕릉은 의외로 소박한 크기의 능이다. 왕릉에서 산자락 끝에 마주 보이는 곳에 삼층석탑이 보이기에 무언가 의미가 있는 곳이려니 했다가 돌고 돌아가서 보니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있는 곳이었다. 의상대사가 출가한 곳이 바로 여기라고 한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이었던가 서문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그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했던가.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다. 남녀 간의 사랑도 그 단계를 넘어 부부로서의 오랜 관계로 전환되면 또 다른 측면이 보이는 것처럼. 역사도, 예술도 그러하다.
황복사지 3층 탑을 둘러보고 산길을 넘어오다가 만난 탑이 있는데 바로 능지탑지다. 탑 터가 되는 셈인데 이곳은 문무왕의 화장 장소일 수도 있다고 안내에 언급되어 있다. 사람 사는 집 옆에 이런 탑이 천오백 년 이상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로마의 도심 기저층에 수많은 시대의 유물들이 켜켜이 묻혀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이란 결코 과거와 단절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고 연결되는 것이다. 나와 너의 관계가 그러하듯. 일제 강점기에 이광수가 고아론과 단절론을 주장한 것은 그 맥락은 이해할지언정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