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화내는 게 싫다

응답이 없는 협력업체 담당자

by 에릭리


오늘 아침 협력업체 담당자에게 소리 아닌 소리를 질렀습니다. 회사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협력업체 담당자에게 이렇게 큰 소리를 낸 것은 처음입니다. 웬만해서는 화 낼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협력업체 담당자가 도대체 어쨌길래 제가 이렇게 큰 소리를 냈을까요?


그건 바로 이 담당자는 우리 회사 요청에 대해 무응답으로 일관했기 때문입니다. 메일을 수차례 보내도 답이 없고 심지어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도 답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전화 준다는 문자만 달랑 올뿐 오후가 돼도 다음날이 돼도 역시나 연락은 없더군요. 이러한 태도가 지속되자 결국 협력업체 부서장에게 해당 직원은 업무에서 배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어차피 있어봐야 업무를 하지 않으니, 문제가 있는 담당자는 배제하고 부서장이 잔여 업무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담당자가 우리 사업장으로 찾아왔습니다. 내부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있었는데 몰래 찾아온 것이죠. 저는 그 담당자를 보자마자 우리 사업장에서 나가 달라 했습니다. 업무 배제 요청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고요. 담당자가 죄송하다고 하더군요. 미안하다고. 제가 백 번 잘 못했다고.


그래서 사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필요한 건 그 업체 담당자의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사업장에 있는 문제에 대한 시의적절한 대응이 필요한 거였습니다. 그래서, 그 담당자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에 대해 20분을 큰 소리로 뭐라고 했습니다. 제 자신도 화내는 게 너무 싫은 나머지 제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더군요. 이 담당자 옆에는 이제 막 회사에 들어온 신입사원도 같이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기에 신입도 너희 선배처럼 되지 말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문제 있었던 부분을 모두 지적했습니다.


이 담당자를 뭐라고 한 제 자신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하고 이 사람도 본인이 했던 행동들이 가져오는 결과를 뚜렷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큰 소리를 냈습니다. 이 사람이 정신을 차렸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죄송하다 죄송하다라 얘기하지만 뒤에서는 욕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다만, 본인도 그렇게 큰 소리를 들었으니 아마 자극은 됐을 겁니다.


회사에서는 나 하나 일을 잘하지 못하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줍니다. 협력사, 고객사 그리고 심지어 직장동료 그리고 부서장님한테까지. 내 할 일 하나 제대로 하는 건 중요합니다. 화를 내지 않으려고 수개월을 참아왔는데 이 담당자를 얼굴을 보니 얘기를 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담당자가 제 얘기를 잘 받아들여 조금의 변화가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큰 소리를 낼 때까지 이 사람과 잘 협력하지 못 한 제 자신도 반성합니다. 어찌됐건 화를 내는건 좋지 않습니다. 저는 화를 내기 싫습니다.


keyword
이전 02화가장 퇴사하고 싶은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