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비를 맞는 건 더더욱 싫다. 아침 운동을 할 때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그날은 당연하게도 운동을 쉬는 날이었고, 운동을 하다가 비라도 맞는 날이면 축축해지는 느낌에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내리는 비를 즐겁게 맞았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몇 년 전 한라산을 처음 오르던 날이었다. 날짜는 이미 정해졌고 산 아래에 도착했는데 하늘은 이미 비를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비 차원에서 우비를 쓰고 산행을 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데 빗줄기는 거세졌고, 공기는 습했고, 우비는 답답했다. 내 몸은 이미 땀인지 비인지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축축했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우비를 벗고 그대로 비를 맞으며 산을 내려왔는데 웬걸 기분이 너무 좋아 신나서 점프하듯 하산했다.
평소엔 비를 맞을 일도 없고, 옷이 젖거나 밖을 돌아다닐 때 불편하기에 비 오는 걸 달갑게 여기지도 않는데, 저 때는 왜인지 모르게 신이나 있었다. 그때가 비를 즐겁게 맞았던 유일한 기억이었다. 비가 내리는 걸 보고, 빗소리를 듣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평소의 나에게 ‘비’라는 존재는 움직임에 방해가 되는 번거롭다는 개념에 더 가까웠다.
아침 운동을 시작한 지 며칠이 채 되지 않은 5월의 어느 날 비가 내렸고 나는 운동을 쉬었다. 러닝 메이트 둘은 “우중런”이라 이름 짓고 아침 운동을 했다. 그에 대해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그저 비 오는 날 운동하는 것에 대해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들과 함께 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영향을 받았나 보다. 우리는 2달에 걸쳐 꾸준히 아침 운동을 함께 했고 종종 비가 내렸다. 처음부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릴 때도 있었고, 운동 중에 이슬처럼 떨어지기도 했다. 운동을 하면 땀이 나긴 했지만 비를 맞는 것과는 별개였고 비가 오면 또 그것대로 신경이 쓰여 “비 온다”, “비 많이 온다” 말을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같이 운동하는 지인 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 모습들이 하루 이틀 쌓여갔나 보다. 크게 신경 쓰이지 않기 시작했다. 내리는 비는 방해꾼의 위치에 있다가 갑자기 사라져 있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멈추면 멈추는 대로 우리는 함께 운동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비는 쏟아지는 장대비가 아니라 이슬비 정도였다!)
빗소리를 듣고 비를 맞는다.
그 시간을 즐긴다.
자유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