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가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십몇 년을 주로 실용적이고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를 해왔다. 예쁜 쓰레기는 나와는 거리가 멀고, 아기자기한 디저트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난 꽤나 낭만을 좋아한다.
처음 해 본 퇴사였는데 마침 한창 봄을 만끽할 수 있는 4월이었다. 그저 산책만 해도 좋은 날씨에 하나둘씩 피어난 꽃을 보고 봄기운을 느끼니 날아갈 듯 기분이 상쾌했다. 세상이 더 아름다워 보였던 건 퇴사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에도 꽃은 많다. 출퇴근 길에 만나던 길 위의 꽃, 중랑천 강변을 따라 쭉 이어진 장미 거리는 내 시야에서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거리 풍경이었다.
마음의 여유 덕인지 목포에 내려오니 꽃만 보였다. 처음 내 눈을 사로잡은 장미꽃은 거리거리 담장마다, 집 앞의 화단에 예쁘게 가꿔져 있었다. 5월의 삼학도 공원에는 넓게 펼쳐져 있는 양귀비를, 언덕을 열심히 올라 조각 공원에 가면 가득 핀 6월의 수국을, 마을을 돌아다니면 한껏 늘어져있는 능소화를 만날 수 있었다. 계절, 그리고 날씨의 변화를 온전히 느끼는 나날을 보냈다.
어쩌면 목포에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은 꽃을 보며 감탄하는 여유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한동네에 오래 살아도 의식하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풍경과 장소가 있다. 여행객의 시야로 바라본 목포는 너무 아름다웠다. 가끔은 서울의 내가 살던 동네도 똑같이 좋은 풍경과 편안한 장소가 있음에는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파트가 많고 바다가 없는 서울의 우리 동네와는 확실히 다른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달산과 바다를 곁에 두고 자주자주 보는 삶, 이 아름다움 속에 더 머물고 싶었다. 사계절을 깊숙이 파고들고 싶은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