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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Apr 09. 2024

글로벌 외톨이 2

대다수의 학생들이 무리 지어 식사를 하는 중에 혼자서 식사를 하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아직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한 신입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도 많고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어떻게 친구를 사귈 것 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친구란 상대방을 알고 호감을 느꼈을 때 될 수 있는 것인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알 수 있는 정보란 오직 외모와 국적뿐이었다.

게다가 그 나라 사람들의 성격적 특징과 문화를 전혀 모를 때에는 친구가 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나는 십여 년 전에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비교적 일본인과 일본문화가 익숙한 편이다.

그들의 표정이나 말투, 행동으로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어떤지를 웬만큼은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일본인중에 한국에 관심이 있고 나이가 30대 중반 이상인 여자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정했다고 해도 미친 사람처럼 만나는 일본인마다 뜬금없이 '너 한국 좋아하니?'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때 7교시 수업에서 만나는 항상 마스크를 쓰고, 눈빛이 선한 일본인이 떠올랐다.

마침 수업 첫날 롤플레잉 수업에서 같은 조가 되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리고 그 일본인은 때마침 나와 같은 신입생이었다.

 학생들은 아이디카드를 목에 걸고 다니는데, 신입생들만 카드에 아직 사진이 안 붙어있다.

어제 우연히 본 그녀의 아이디카드에는 사진이 없었다.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을 보아 어린 학생은 아닌 듯했다.(나도 사실 나이를 숨기기 위해 마스크라도 써야 하나 고민했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녀가 웃을 때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히는 것도 캐치했다. 적어도 그녀는 20대의 어린 학생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좋아, 이번 시간에 그 학생 옆자리에 앉아야겠다.


서둘러 교실로 향하는데 그 학생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때 다! 하고 뒤따라 갔다. 그 학생은 평소와 같이 교실 오른편 두 번째 줄 안쪽에 앉았다. 

그런데 그 짧은 찰나에 그녀의 옆자리는 그녀의 가방이 차지하고 말았다.

다른 자리들도 남아있는 상황에 내가 굳이 그녀의 가방을 치워달라고 요청하는 건 오버였다.

오늘은 실패다.


다음날이 되었다. 

오늘은 꼭 성공하리라.

난 적당한 시간에 교실문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옆자리를 노리려는데,

늘 그녀의 앞자리에 앉던 다른 일본인이 앞자리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그녀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난 순간 '망했다. 이미 다른 일본친구가 생겼나?'생각하고 내가 평소에 앉던 반대편 줄에 앉으려다가 생각했다.

'아니지, 마침 그 앞이 비었으니 거기라도 앉아야겠다'

생각하고 누가 앉을세라 재빨리 그녀의 앞자리를 맡았다.

오늘도 역시 조별로 롤플레이 수업이 진행되었다.

운 좋게 나와 이 일본인 두 사람이 함께 조가 되었다.

난 롤플레잉을 하는 동안 두 사람에게 연신 상냥한 미소를 날렸다.


즐겁게 수업을 마치고 나는 셀프라이팅 숙제를 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갔는데 마침 그 일본인도 숙제를 하고 있었다. 난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그녀는 상냥하게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래, 이렇게 웃으며 인사하면 받아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디너타임.

오늘도 난 수백 명의 학생들 사이에서 쓸쓸히 홀로 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들었다.

그때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내 눈앞에 그 일본인 학생이 식판을 들고 반갑게 날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켄 아이 씻 히얼?"

"예스, 예스!!"

오늘은 금요일, 이 학교에 온 지 5일째다. 5일 만에 처음이었다. 나에게 먼저 누군가가 말을 건 것이.

난 너무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이 친구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리고 너무 신기하게도 그녀는 내가 상상한 대로, 나이는 한국나이로 딱 40세, K팝을 좋아하고, 배려가 넘치는 상냥한 성격의 학생으로 심지어 나와 같은 날 이곳에 도착하여 나와 같은 일정으로 이곳을 떠난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도 이곳에 와서 내내 혼자 밥을 먹어서 외로웠다고 했다.

이보다 더 나에게 적합한 새 친구가 있을까.

그동안 고생한 것이 이제야 보상을 얻나 보다.

역시 또 느낀다. 고통을 피할 필요 없다. 노력하면 곧 그만큼의 보상이 오니까. 

오늘도 또 이 나이에 삶의 진리를 깨닫는다.


그녀의 이름은 '스즈' 직업은 수술실 간호사라고 했다.

게다가 우리는 수업이 끝난 후 짬을 내서 한국어와 일본어 언어교환 스터디도 하기로 했다.

영어를 배우러 와서 또 다른 언어를 공부하는 것이 좀 우습긴 하지만, 인생은 정해진대로만 사는 것이 정답은 아니니까. 이렇게 우연하게 스즈를 만나서 녹슨 일본어 스피킹을 연습할 수 있게 된 것도 엄청난 행운이다.

앞으로 또 어떤 예상 못한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가 된다.


결론, 이제 겨우 글로벌 외톨이에서 벗어난듯하니 오늘부터는 발 뻗고 편히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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