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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Apr 02. 2024

글로벌 외톨이 1

이곳에 온 지 3일째다.

그렇다. 난 3일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이 학교의 수많은 정보들(각 교실과 학교의 시설들의 위치와 동선, 학생으로서 신청해야 하는 것들, 숙지해야 할 학교의 일정과 필수 정보들, 수업내용은 물론이고 각 선생님, 룸메이트, 클래스메이트들의 얼굴과 신상정보 등등)을 한꺼번에 머릿속에 쑤셔 넣느라 나의 뇌는 이미 폭발직전이다.

내 몸에는 이미 아무런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몸이 피폐해지면 정신까지 나약해진다고 했던가... 3일째 혼자인 식사시간이 오늘따라 외롭게 느껴진다.

이 학교에는 약 700명의 학생이 있고(그중에 25% 이상이 한국인) 난 4인실 기숙사에 묵고 있고 각기 다른 4개 반의 (그룹) 클래스메이트들과 수업을 받고 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밥 한 끼 같이 먹을 사람이 없는가?

그건 나도 미스터리하다.

나 스스로는 어느 정도 룸메들과 친분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이 룸메들과 밥을 같이 먹고 싶어도 학교 안에서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다. 공부하는 과목도 수업시간도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들은 이미 여기서 공부한 지 몇 달이나 되었고 심지어 이 학교에 올 때 이미 자국의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단체로 오기도 해서 아는 사람도 많고 친구들도 많으므로 나에게까지 신경 쓸 일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뭔가 학교의 같은 나라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 단톡방(?) 같은 곳에서 정보도 얻고 친목도 도모하고 그러는 모양이다. 그에 비해서 한국의 커뮤니티는 찾기 힘들었다.(결성이 안된 것인지, 아니면 나만 그 정보를 모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깊이 고민하면 눈물이 나올 수 있으니 전자인 걸로 하겠다.) 심지어 나와 같은 날 와서 같이 OT를 받은 몇몇의 한국 사람들은 어디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클래스메이트들과 간혹 학교 안에서 마주칠 때면 먼저 웃으며 인사를 날려보기도 했지만 별 다른 친분이 쌓이지는 않았다.


그렇다. 그들도 기왕 사귀는 외국인 친구라면 어리고 인상 좋은 친구를 찾을 것이다. 내 인상이 엄청 좋은 것도 아니고 나이도 있으니, 나의 인사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실에 크게 충격받을 건 아니다. 만약 나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나 특이한 옷이나 소품을 착용한 사람, 혹은 팔에 문신이 있는 사나운 인상의 아저씨가 나에게 친근하게 웃으며 다가온다면, 나도 당황할 것 같으니 말이다.(실제로 이 학교에는 다양한 스타일과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리고 내가 여기 친구 사귀러 온 것도 아니고, 이 나이에 밥 좀 혼자 먹는다고 창피할 일도 아니다. 난 그저 내 목표대로 영어공부만 열심히 하다가 돌아가면 된다. 전혀 문제 될 건 없다.

나의 이성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치는 사람이라 조금 쓸쓸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 내가 나약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모두 수면부족 때문이야!'

이렇게 결론짓고 그날 밤은 작정하고 일찍 잠을 청했다.

그런데도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원래 너무 피곤하면 더 잠이 안 오는 법이다.


다음날인 목요일 평소보다 산뜻한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매일 아침 7시 20분에 데일리테스트가 있는데, 오늘은 시험도 아주 깔끔하게 잘 봤다.

올 클리어 한 것 같다. (사실 레벨 별로 문제 난이도가 다른데, 난 거의 최하위 레벨이었기 때문에 틀리는 문제가 있는 게 더 이상하긴 하다)

에너지 넘치는 오전수업이 끝나고 드디어 점심시간.

그룹수업에서 선생님 질문에 대답도 잘했고, 일대일 수업에서는 선생님과 농담도 나누며 즐겁게 잘 끝마쳤지만,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뭔가 식사시간만 되면 자동으로 위축이 되는 것 같다.


살짝 다운된 기분으로 식판에 음식을 받아 카페테리아를 나가려고 하던 찰나였다. 마침 출구 쪽 테이블에 오전수업을 같이 듣는 한국인 여학생이랑 눈이 마주쳤다. 그 여학생은 수업 중 항상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여 눈에 띄는 학생이기에 반가운 마음에 '하이'라고 가볍게 인사를 건넸고, 순간 그 여학생은 눈에 동공지진을 일으키더니, 한 참만에 뭐라고 입을 벙끗거리고는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3초나 되었을까? 이 짧은 찰나에 나의 기분은 지하까지 뚫고 내려갔다.

'왜 인사를 안 받아줬지? 내가 그렇게 비호감인가? 인사하나 받아주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갑자기 울컥 화가 나고 서러웠다.

밥 먹는 내내 멘붕이 왔지만 점심을 스킵하면 나중에 너무 배가 고파지기 때문에 무슨 맛인지도 모를 음식들을 일단 입에 쑤셔 넣었다. 

기분을 전환시키려고 노력했다. 난 어른이니까 할 수 있다!

기분이 어느 정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후 생각해 보니, 그 학생의 행동은 기분 나쁘긴 했지만, 나를 못 알아봤거나 혹은 당황해서 본인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한 걸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갑자기 인사를 건넨 내가 식사를 방해를 한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점점 소심해져 가는 나의 마음상태로 보아, 긴급하게 식사메이트 정도는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한국인들은 같은 한국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으니... 외국 학생들 중에 친분을 쌓을 만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겠다.

잘 된다면 내일 저녁 정도는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며 스몰토크 라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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