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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Mar 08. 2024

드디어! 수업 첫날.

입학시험 결과가 나왔다.

나의 레벨은 여러 단계 중 밑에서 두 번째였다.

라이팅을 안 날렸다면 밑에서 세 번째쯤 됐을까?

허망한 시험 성적을 뒤로하고 첫 수업을 위해 교실을 찾았다.


매일 아침 7시 20분부터 실시하는 데일리 테스트 후 간단히 아침을 먹고 8시에 1교시가 시작된다.

수업은 2개의 셀프스터디와 1개의 셀프라이팅 수업 그리고 4개의 그룹수업과 4개의 일대일 수업을 포함하여 총 11교시로 6시까지 진행된다. 각 수업 간의 쉬는 시간은 5분으로 무척 짧다. 수업마다 교실이 떨어져 있어서 5분 안에 교실을 찾아가는 것도 벅찼다. 워낙 학생도 많고 강의실도 많아서 동선을 익히고 수업시간과 교실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난 매일 각각의 교실에서 8명의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4개의 그룹수업에서 각기 다른 반에서 각기 다른 학생들과 공부했다. 심지어 매주 월요일마다 새로운 입학생이 들어왔고 같이 수업하던 학생들도 며칠이 멀다 하고 다른 반으로 옮기거나 졸업을 하거나 또 다른 반 친구가 내 클래스로 새로 들어오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만 수 십 명이다. 일일이 이름을 기억하기에도 힘들 지경이다.


첫 1교시는 '베이직 서바이벌'수업이었다.

이 수업은 그룹수업으로 나포함 6명 정도의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

국적도 나이도 다양하다.

떨리는 첫 수업, 긴장도 많이 되었지만 어렵게 온 만큼 기대감이 컸다.

밝은 미소를 가진 선생님은 성격도 미소만큼 밝은 분이셨다.

3년 넘게 필리핀 선생님과 수업을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말씀하시는 것도 잘 들리고 수업도 너무 재미있었다.

수업 중 선생님은 내게 몇 번의 질문을 던지셨는데,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대답한 것 같다.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물론 문장은 아주 쉬운 문장이었지만 말이다.


두 번째 수업은 리딩수업으로 일대일 수업이었다.

일대일 수업 교실은 그룹수업 교실과 다르게 긴 좁은 복도 양쪽으로 많은 문들이 있고, 선생님들이 그 비좁은 복도 사이 각 문 앞에 서서 자신의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선생님도 날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일대일 교실은 교실이라고 할 수도 없이 좁은 사각의 공간에 작은 책상 하나와 딱딱한 의자 두 개뿐이었다.

얼마나 좁냐면 문을 닫은 후에야 겨우 앉을 공간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열기 위해서는 서서 한쪽에 있어야 할 정도였다.

일대일 수업환경을 보고 처음엔 좀 놀랐지만, 수업을 하다 보니 좁은 공간이 오히려 집중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것도 같았다.

여기 선생님들은 하루 8개에서 최대 11개까지 수업을 한다고 했는데,

창도 없어서 빛도 들어오지 않는 이 답답한 곳에서 하루종일 수업을 한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학생들을 밝게 맞이해 주고 긴장하는 학생들을 위해 재밌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한편으로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수업을 받는 동안은 정말 성실히 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에게 자신의 일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하는 학생은 절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11교시를 끝마치면 바로 저녁시간이다.

어제 새벽에 이곳에 도착해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 바로 시험을 치르고 종일 오티가 있었다. 

어젯밤에도 금방 잠이 오지 않아 다음날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 

몸은 피로에 찌들었고 눈도 감기지만 정신만큼은 아직 초 긴장 상태라 그런지 또랑또랑했다.

필리핀 밥은 뭔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거 같아서, 한가득 담아왔다.

식당 내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시끄러워서 나는 식판을 들고 야외로 나왔다.

야외 테이블에 앉으면 학교 내 넓은 풀장과 야자수 뷰가 보인다.

저녁이 되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필리핀 세부는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시원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다. 이국적인 메뉴의 식사와 야자수 뷰... 언 듯 휴양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흠... 아이들 없이, 남편도 없이 홀로 휴양지라...' 이렇게 상상하니 피곤한 몸 따위는 신경도 안 쓰일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생각보다 빡센 일정에 당황하고 오늘 오전에는 아이디카드도 잃어버려서 찾느라 고생 좀 했지만(카드를 잃어버려서 방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교재를 못 꺼내는 해프닝이 있었다) 생각보다 수업도 재밌었고...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 있으니 색다른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거의 집에서 혼자 지내던 최근 나의 생활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엄청나지만, 큰 맘먹고 온 만큼 잘 적응해서 많이 배우고 돌아가고 싶다.

영어스킬은 물론이고 정신적 성숙과 오랫동안 묵혀 둔 사회생활스킬과 작품을 위한 많은 아이디어들을 키우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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