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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Mar 19. 2024

국적 다른 세 여자의 한 밤의 토크.

어학교 이틀 째 늦은 저녁...

국적이 다른 세 여자는 각자의 밤을 보내느라 분주하다.

중국인인 메이는 조용히 다음날 제출할 숙제를 하고 있고,

러시아인 마리나는 막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한국인인 나는 덜 끝난 짐정리를 하고 있었다.

열어놓은 창문 밖에서는 벌레소리가 들린다.

기숙사 생활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여기가 필리핀이고 이 여성들이 모두 다른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4명이 사용하는 이 방의 룸메이트들이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아이가 있는 40대 엄마들이라는 것만 빼면, 평범한 학교 기숙사의 저녁 풍경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 그냥 평범한 타국에서의 둘째 날 저녁이었다.

조금은 피곤하고 조금은 낯설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익숙해진.


그때였다. 러시아인인 마리나가 목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걱정이 됐던 나는 괜찮냐고 약이 없으면 내 약을 주겠다고 했다.

마리나는 사실 자신은 의사고 자기 상태를 잘 알아서 괜찮다고 했다.

마리나가 나랑 메이 같은 평범한 전업주부라고 생각했는데, 의사라니!! 나도 모르게 흥분해 버렸다.

내 반응이 재밌었는지 마리나는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가정주부라고 말했다. 그리고 농담조로 '난 직업이 없어 그래서 돈도 없어. 여기도 남편돈으로 왔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위트가 섞인 평범한 여자들의 대화였다.

마리나는 이어 물었다.

'너는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가 뭐야?'


사실 이 질문은 이곳 선생님들한테 이미 여러 번 들었던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영어능력을 키우려고'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다니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진짜가 아니었다.

영어를 전혀 쓸 일이 없는 40세를 훌쩍 넘긴 중년의 전업 주부임에도 불구하고 영어공부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금도 영어를 잘한다고 할 수 없고, 예전에도 내 영어실력은 바닥이었지만, 결혼 전 나는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바쁜 일상 속에 나의 꿈은 점점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일이 되었지만, 실오라기 같은 희망은 버릴 수 없어서 육아를 하면서도 틈틈이 영어공부를 했었다.

그래서 지금 겨우 한 달짜리 어학연수지만 나에게는 값진 도전이고 소중한 경험인 것이다.


난 마리나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응, 나는 말이야.... 사실...'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나도 놀라고 다른 룸메이트들이 모두 놀랐다.

왠지 이번은 내 진짜 속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사람들이라면 이해해 줄 것 같았다.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니까.

갑자기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젊은 시절의 나, 꿈을 꾸었던 나, 꿈을 잃어버리게 된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던 나, 언젠가는 나도 내 삶을 살 수 있는 거라고 자신을 다독였던 나날들의 나.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꺼번에 느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샘이 폭발해 버렸다.

나는 꺽꺽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가뜩이나 미숙한 영어를 떠듬떠듬 내뱉었다.

물론 그들은 나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나서 다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내가 눈물을 보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내 꿈과 결혼생활에 대해 그리고 아시아 기혼 여성들의 보편적인 삶에 대해 설명했다.

제일 크게 놀란 것은 러시아 의사인 마리나였고 중국인인 메이는 나의 상황을 공감해 주었다.

마리나는 왜 여자가 결혼을 하면 일을 계속하기 힘든지,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사회분위기가 그런지, 그녀가 좋은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엄마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결혼 이후의 삶은 분명 나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중국인인 메이는 일찍 결혼을 해서 20 살 짜리 큰 아들이 하나 있다.

메이는 이제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영어교육학위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고 여기를 졸업하고 바로 해외 여러 나라에서의 유학계획이 완벽하게 세워져 있었다.


기분이 참 이상했다.

난 이 한 달의 기회가 나에게 엄청난 기회고 이걸 이해해 주는 남편과 아이들을 가진 것이 축복이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맞다. 내 주변만 보아도 한국 사회에서 한 달씩 혼자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가정주부는 정말 드물다.

그러나 이 둘은 다르다. 이들은 아시아의 기혼 여성들이 좀 더 자신의 삶을 사는 것에 당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삶의 포커스는 이미 자신에게 맞춰져 있다. 의사인 마리나는 물론이고, 나와 같은 전업주부인 메이도 남편의 수입의 반을 자신의 통장에 모으고 있다고 했다. 그 돈은 자신의 돈이며 그래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 돈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둘의 케이스는 나의 가치관에 참신한(?) 생각을 더할 수 있게 하였다.


사실 난 항상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엄마라고 생각해 왔다. 거의 15년을 가정 살림과 아이들 케어에 한시도 쉴 틈 없이 최선을 다하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에는 '나도 내 삶을 살고 싶다' 막연하게 그런 날이 오길 바랐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점점 지쳐갔고 결국 무뎌졌다. 

그저 욕심인 거고 내가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혹시 난 더 욕심을 내어도 되는 것일까?'

'좀 더 내 삶을 주도적으로 더 열정적으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누군가의 허락을 받는 인생이 아니라 진짜 내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남편이나 아이들을 핑계로 나 자신을 너무 방치하며 살았다.

 마음속 진짜 내 목소리를 무시하고 편하게 살려고만 한건 아닌가 반성이 되었다.


낯선 타국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기대와 기쁨만 생각했는데 다른 의미로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깨달은 점, 난 욕심 많은 엄마가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 살아도 되는 그런 평범하고도 귀한 존재였다.


이곳은 선생 학생 할 것 없이 나이와 국적 성별이 다양하다.

어린 10대들도 있고 나와 같은 40대도 있다. 50대 혹은 60대도 있다.

다양한 인종과 남자, 여자, 부모와 함께 온 어린아이, 성별을 알 수 없는 사람들까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주도적으로 사는 것에 아무런 제한도 없다.


결혼 후 나는 작은 한국에 작은 마을 한 구석에서 너무 오랫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인생설계를 해 볼 생각이다.


분노와 슬픔과 울분이 뒤섞인 한 밤의 토크는 목이 아픈 마리나가 침대로 돌아가면서 끝이 났다.

뭔가 위로받고 용기를 얻은 것 같아서 좋긴 한데.... 내일부터 저들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제발... 울고 짜면서 말한 내 못 생긴 얼굴과 엉터리 영어가 그들의 기억 속에서 다 잊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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