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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Feb 11. 2024

입학시험.

나는 지금 필리핀 세부의 한 어학교의 입학시험장에 앉아 있다. 

이 시험을 치르면 그동안 궁금했던 나의 영어실력을 드디어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내 삶에서 영어공부가 어떻게 이어져왔는지를 먼저 말하고 싶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당시 상업고등학교에서는 나처럼 대학을 바로 가는 학생들이 소수였고 대다수의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또는 졸업을 하기도 전에 취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학생들은 대학을 가기 위한 영어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1학년 때까지만 일반 영어를 배우고 2학년부터는 상업영어를 배웠다. 

상업영어에서는 무역에 필요한 단어나 회화들만 공부하기 때문에 문법을 비롯하여 다른 일반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상업영어를 열심히 공부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내 영어실력은 바닥에 가까웠다.

대학 때도 영어가 싫어서 도망만 다니다가 결국 낙제를 받고 재수강을 하기도 하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대 후반에 유학에 대한 꿈이 생겼고, 부랴부랴 영어공부를 시작했지만 노베이스였던 나는 기본적인 문법도 잘 모르는 영어문맹자였다.

처음 영어공부를 했을 때 난 주어+be동사, 즉 'I am a boy'부터 시작했다. 진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영어교재인 '베이직 그래머 유즈' 첫 장을 펼치면 아마도 이 문법을 볼 수 있을 것이다.(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 비슷한 문장이다)

난 그렇게 이 교재와 함께 영어의 베이스를 혼자 깨우쳤다.

그런데 이 영어의 문장 구조라는 것이 영어문맹자인 내가 이해하기에 넘사벽의 수준이었고, 최선의 방법으로 기초 문법강의를 무한 반복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의 20대가 지나가고 외국을 나가기는커녕 겨우 기초 문법만 떼고 얼결에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나의 험난한 영어공부가 시작되었다.


임신을 했을 때는 임산부 영어태교 모임을 만들었고, 아기가 태어나고는 돌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같은 처지의 엄마들과 영어스터디를 했다.

안타깝게도 이 엄마영어스터디 모임은 다들 아기를 키우는 처지였기에 수년에 걸쳐 결성과 해체를 반복해야 했고, 어느새부턴가 내 기억에서 서서히 잊혔다.

그리고 3년 전, 다시 영어공부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필리핀 선생님과의 화상영어수업이었다.

워낙에 끈기가 없던 난 이것도 선생님과 친해지지 않았다면 금방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사람과 정이 들면 쉽게 끊지 못하는 나의 성격 때문에 그만두고 싶은 많은 고비들을 가까스로 넘기고 이제는 진짜 영어가 너무 좋아져서 현재까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영어를 한마디 못하던 나는 더듬거리며 짧은 문장들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단어나 리딩 라이팅은 여전히 잘 못했지만 최소한 듣기 실력은 탁월하게 성장한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내가 영어를 매일 25분씩 3년이 넘게 공부했다고 말하면 모두들 깜짝 놀란다. 

그리고 나의 영어실력이 대단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큰 착각이다.

나처럼 노베이스가 영어를 마스터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다시 여기는 필리핀 세부.

나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넓디넓은 강의장 수십 명의 학생들 속에 앉아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시험장에 있어서 놀랐다.

내게 시험지, OMR카드, 컴퓨터용 수성사인펜이 주어졌다.

떨리는 손으로 사인펜을 들고 내 인적사항을 마킹해 나갔다.

'컴퓨터용 수성사인펜'으로 보는 시험이라니.... 수능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있으면 안 될 곳이 있는 것이 아닌가? 현실감이 무지하게 떨어졌다.

문제지를 보니 온통 다 영어다. 

당연하다. 한쪽 귀퉁이에라도 한국말이 쓰여있을 리가 없다.

감독 선생님들이 문제 푸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물론 영어로. 그것도 필리핀 영어로.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들었다.

다행이다. 나는 필리핀 선생님이랑 3년이나 공부해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다.


첫 시험은 리스닝시험이었다.

다행히 시험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 두 개 헷갈리는 것 빼고는 다 정답을 맞힌 것 같다. (물론 이것도 나의 개인적인 추측이다)

다음은 리딩시험. 내가 라이팅 다음으로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스피킹도 잘 되는 편이 아니었으므로 리스닝 빼고는 다 꽝이라는 결론이다.

어쨌든 25년 전 수능 외국어 영역에서 대부분 찍기 기술로 마무리했던 전적을 가진 사람 치고는 꽤 잘 읽고 잘 푼 것 같다. 보통 수능치고 25년이 흐른 후 라면 실력이 줄어야 정상일 텐데, 난 어메이징 하게도 수능을 치던 25년 전 보다 영어실력이 월등히 좋아졌다.


리딩이 가장 문제가 많았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문제를 다 풀지도 못했는데 필리핀 선생님이 날 불렀다.

그리고는 한국에서 온 20대 초 중반의 남학생 한 명과 함께 작은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곳에는 작은 책상과 의자도 개 그리고 남자선생님(정확히는 긴 머리에 예쁘게 화장을 하고 성별을 바로 알 수 있는 남자 선생님)한 분이 계셨다.

순간 이 어린 남학생과 스피킹 대결을 펼쳐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망했다.

나의 지금 상태는 잠을 못 자서 비몽사몽, 얼굴은 썩었고, 이 낯선 젊은이 앞에서 영어를 쏼라거리는 게 부끄럽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 상황에서 과연 영어를 말할 수 있을까? 

난 이미 성숙한 어른이니까, 최대한 여유 있는 모습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늦은 나이에 유학 와서 자신 없는 말투로 더듬거리면 남들 눈에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왜 여기까지 왔냐'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런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했고 난 나의 에너지를 초 집중해서 짧고 간결하지만 여유가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물론 이것도 나의 상상일 수 있다)

다음은 사진을 보고 설명하는 문제였다.

난 당당하게 먼저 입을 열었다. 

"인 더 픽쳐 아이켄 씨..."어쩌고 저쩌고 쏼라쏼라...(기억이 안 남)

그다음 남학생 차례, 녀석이 내 말을 고대로 따라 한다. 어지간히 긴장했나 보다.

"인 더 픽쳐 아이켄 씨..."

사실 이 '인 더 픽쳐 아이켄 씨'는 여기 오기 전 필리핀 선생님과 비슷한 문제를 연습하면서 배운 스킬(?) 중에 하나였다. 

이 와중에 자연스럽게 사용한 내가 자랑스럽다.

그다음 문제는 그림 한 장을 보고 상대방이랑 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토론을 해야 하는 문제였다.

난 다시 연장자답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넌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물론 영어 임)

잘했다. 스타트도 먼저 끊고 젤 어려운 대답도 피했다. 역시 난 연장자답게 노련했다.

스피킹 테스트는 대충 이 정도로 끝났다.

난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리딩문제를 마저 풀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여유로웠다. 

천천히 검토를 한 후 신중하게 마킹을 하였다.

이제 1분 후면 시험 끝이다. 걱정한 것보다 시험을 잘 친 것 같다.

...라고 생각한 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스테이플러로 엮긴 문제집 뭉텡이 사이로 한 장이 삐집고 나왔다.

'응? 이건 뭐지? 나 분명히 빠짐없이 마킹 다 했는데?'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라이팅'

그렇다 난 바보였다. 라이팅은 주관식이라 그냥 종이 한 장을 채워서 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험은 끝나고 난 라이팅 시험지에 이름만 덩그러니 써서 제출했다.

이걸 본 사람들은 내가 몰라서 한 줄도 못썼다고 생각하겠지... 망했다.


오늘도 느낀다. 

인생은 참 녹록지 않아...

나에게 불친절해...

또 나에게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아니, 내가 어떤 사고들을 칠지.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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