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필리핀 세부의 한 어학교의 입학시험장에 앉아 있다.
이 시험을 치르면 그동안 궁금했던 나의 영어실력을 드디어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내 삶에서 영어공부가 어떻게 이어져왔는지 잠깐 살펴보자.
중 고등학교 때 나는 영어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입시는 미대입시를 준비했으므로 영어는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엄청 못했다는 이야기다.
대학 때도 영어과목에 F가 떠서 계절학기를 들었던 기억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대 후반에 갑자기 유학에 대한 꿈이 생겼고, 부랴부랴 영어공부를 시작했지만 노베이스였던 나는 기본적인 문법도 헷갈리는 영어문맹자였다.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했을 때 베스트셀러 영어교재인 '베이직 그래머 유즈'와 '박상효' 쌤의 오래된 동영상 강의를 구해 기초부터 철저히 공부했다. 심지어 기초인 데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아 같은 영상을 여러 번 반복해서 봐야 했다.(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할걸...)
영영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기초영문법 공부가 겨우 끝나고 유학에 조금 가까워(?) 지나 싶더니 급작스런 결혼으로 인해 유학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이제 내 인생에 유학도 없고 영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때부터 영어에 대한 나의 애정이 더 불타 오르 게 되었다.
(공부하라고 멍석 깔아 줄 땐 싫고 이제 필요도 없고 공부할 여건도 안되는데 이러는 거 보면 난 분명 청개구리기질이 다분하다.)
임신을 했을 때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임산부 영어태교 모임을 만들었고, 아기가 태어나고는 돌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이제는 엄마가 된 태교 모임 사람들과 본격적인 영어 스터디를 했다.
안타깝게도 이 엄마영어스터디 모임은 다들 아기를 키우는 처지에 어렵게 공부하는 상황이라 수년에 걸쳐 결성과 해체를 반복하다가 내 기억에서도 서서히 잊혔다.
그리고 3년 전, 다시 영어공부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필리핀 선생님과의 화상영어수업이었다.
워낙에 끈기가 없던 난 이것도 선생님과 친해지지 않았다면 금방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사람과 정이 들면 쉽게 끊지 못하는 나의 성격 때문에 그만두고 싶은 많은 고비 들을 가까스로 넘기고 이제는 진짜 영어가 너무 좋아져서 현재까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영어를 한마디 못하던 나는 떠듬 거리며 짧은 문장들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단어도 많이 모르고 롸이팅도 여전히 어려웠지만 최소한 듣기 실력은 확실히 성장한 것이 느껴졌다.
나의 영어에 대한 눈물겨운 애정을 이어온 결과 드디어 아이들이 엄마 없이 있을 만큼 성장했고 난 큰 용기를 가지고 이 학교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여기는 필리핀 세부.
나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넓디넓은 강의장 수십 명의 학생들 속에 앉아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시험장에 있어서 놀랐다.
내게 시험지, OMR카드, 컴퓨터용 수성사인펜이 주어졌다.
떨리는 손으로 사인펜을 들고 내 인적사항을 마킹해 나갔다.
'컴퓨터용 수성사인펜'으로 보는 시험이라니.... 수능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있으면 안 될 곳이 있는 것이 아닌가? 현실감이 무지하게 떨어졌다.
문제지를 보니 온통 다 영어다.
당연하다. 한쪽 귀퉁이에라도 한국말이 쓰여있을 리가 없다.
감독 선생님들이 문제 푸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물론 영어로. 그것도 필리핀 영어로.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들었다.
다행이다. 나는 필리핀 선생님이랑 3년이나 공부해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다.
첫 시험은 리스닝시험이었다.
다행히 시험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 두 개 헷갈리는 것 빼고는 다 정답을 맞힌 것 같다. (물론 이것도 나의 개인적인 추측이다)
다음은 리딩시험. 내가 롸이팅 다음으로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스피킹도 잘 되는 편이 아니었으므로 리스닝 빼고는 다 꽝이라는 결론이다.
어쨌든 25년 전 수능 외국어 영역에서 대부분 찍기 기술로 마무리했던 전적을 가진 사람 치고는 꽤 잘 읽고 잘 푼 것 같다. 보통 수능 치고 25년이 흐른 후 라면 실력이 줄어야 정상일 텐데, 난 어메이징 하게도 수능을 치던 25년 전 보다 영어실력이 월등히 좋아졌다.
리딩이 가장 문제가 많았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문제를 다 풀지도 못했는데 필리핀 선생님이 날 불렀다.
그리고는 한국에서 온 20대 초 중반의 남학생 한 명과 함께 작은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곳에는 작은 책상과 의자도 개 그리고 남자선생님(정확히는 긴 머리에 예쁘게 화장을 하고 성별을 바로 알 수 있는 남자 선생님)한 분이 계셨다.
순간 이 어린 남학생과 스피킹 대결을 펼쳐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망했다.
나의 지금 상태는 잠을 못 자서 비몽사몽, 얼굴은 썩었고, 이 낯선 젊은이 앞에서 영어를 쏼라거리는 게 부끄럽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 상황에서 과연 영어를 말할 수 있을까?
난 이미 성숙한 어른이니까, 최대한 여유 있는 모습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늦은 나이에 유학 와서 자신 없는 말투로 더듬거리면 남들 눈에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왜 여기까지 왔냐'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런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했고 난 나의 에너지를 초 집중해서 짧고 간결하지만 여유가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물론 이것도 나의 상상일 수 있다)
다음은 사진을 보고 설명하는 문제였다.
난 당당하게 먼저 입을 열었다.
"인 더 픽쳐 아이켄 씨..."어쩌고 저쩌고 쏼라쏼라...(기억이 안 남)
그다음 남학생 차례, 녀석이 내 말을 고대로 따라 한다. 어지간히 긴장했나 보다.
"인 더 픽쳐 아이켄 씨..."
사실 이 '인 더 픽쳐 아이켄 씨'는 여기 오기 전 필리핀 선생님과 비슷한 문제를 연습하면서 배운 스킬(?) 중에 하나였다.
이 와중에 자연스럽게 사용한 내가 자랑스럽다.
그다음 문제는 그림 한 장을 보고 상대방이랑 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토론을 해야 하는 문제였다.
난 다시 연장자답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넌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물론 영어 임)
잘했다. 스타트도 먼저 끊고 젤 어려운 대답도 피했다. 역시 난 연장자답게 노련했다.
스피킹 테스트는 대충 이 정도로 끝났다.
난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리딩문제를 마저 풀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여유로웠다.
천천히 검토를 한 후 신중하게 마킹을 하였다.
이제 1분 후면 시험 끝이다. 걱정한 것보다 시험을 잘 친 것 같다.
...라고 생각한 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스테이플러로 엮긴 문제집 뭉텡이 사이로 한 장이 삐집고 나왔다.
'응? 이건 뭐지? 나 분명히 빠짐없이 마킹 다 했는데?'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롸이팅'
그렇다 난 바보였다. 롸이팅은 주관식이라 그냥 종이 한 장을 채워서 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험은 끝나고 난 롸이팅 시험지에 이름만 덩그러니 써서 제출했다.
이걸 본 사람들은 내가 몰라서 한 줄도 못썼다고 생각하겠지... 망했다.
오늘도 느낀다.
인생은 참 녹록치 않아...
나에게 불친절해...
또 나에게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아니, 내가 어떤 사고들을 칠지.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