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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May 03. 2024

세부에서의 첫 주말

세부에서의 첫 주말을 맞았다.

이곳 학교의 학생들은 평일 수업이 끝난 6시 이후와 주말에만 외출을 할 수 있다.

통금시간도 있는데 평일은 10시 주말에는 12시까지 외출이 허용되었다.

학생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외출 시에는 로비 옆 각 룸별로 모아져 있는 본인의 외출카드를 찾아서 출입구 보안직원에게 맡긴 후에야 외출을 할 수 있다. 또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는 내 학생 카드의 사진과 외출카드의 사진이 동일인인 것을 확인받은 후 외출카드를 돌려받아 제자리에 넣어 놓는다.

매일 치르는 데일리 테스트의 성적이 낮거나 테스트를 빼먹으면 당일 외출이 금지되고 주에 6교시 이상 수업에 결석하거나 한 주간의 테스트 총점이 낮은 학생도 주말 외출이 금지되는 교칙이 있는데, 이 외출 시스템으로 자격미달 학생의 무단 외출을 막을 수 있고 또 출입센터에 외출카드 유무를 통해 학생이 학교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주말 나는 일본인 친구 스즈와 시내에 나가기로 했다.

평일 저녁에 시내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어서 당연히 주말에도 운행하는 줄 알았는데 당황스럽게도 주말에는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둘 다 그랍을 잡을 줄을 몰라서 잠깐 고민을 하다가 직원에게 물어보니 시내까지 10분에서 20분 정도 걸린다고 하길래 모처럼 로컬 거리도 구경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잘 정리된 산책로를 20분 동안 걷는 것과 차가 쌩쌩 다니고 온갖 야생의 동물들이 몰려드는 뙤약볕의 흙길을 걷는 것은 많이 달랐다.

우리는 자동차 매연과 날리는 흙먼지 그리고 여러 마리의 가축들과 불쌍한 거리의 늙고 병든 개들을 지나쳐야 했다.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차에 치여 죽은 친구의 시체를 길건너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개와 낡고 작은 판자 집에 힘들게 살아가는 필리핀 사람들을 보았다.

마땅한 인도도 없이 쌩쌩 달리는 차를 피해 정신없이 걸으며 이런 모습들을 무심한 듯 지나쳐가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시내에 도착했다.

맥도널드, 던킨, LG 등 낯익은 간판들이 보인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돌아갈 때는 꼭 그랍을 잡아타고 가리라... 마음먹었다.


더위에 지치고 배가 고팠던 우리는 여러 가게들이 모여있는 어떤 상가건물 2층으로 올라갔고 거기에서 브런치를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필리핀 전문 레스토랑을 가고 싶었은데 마침 그런 곳인 것 같았다.

역시 그곳에는 필리핀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난 전부터 맛이 궁금했던 시푸드 시니강 수프를 주문했고 내 추천으로 일본인 친구도 포크 시니강 수프를 주문하였다.

시큼하면서도 이국적인 맛이 났다. 내 입맛에 잘 맞아 맛있었다.

뭔가 여기 와서 또 한 가지를 클리어한 것 같은 기분에 별것 아니지만 뭔가 감동적이다.

늘 비슷한 일상을 반복했던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하니 여기에서는 하루에도 새롭게 경험하는 것이 수십 가지다.

배도 부르고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저 멀리 친숙한 별다방이 보인다. 

마침 일본인 친구도 스벅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곳으로 갔다.

스벅에서 커피를 주문하려고 하니 몇 년 전 미국에서 혼자 스벅커피를 주문했던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그때만 해도 영어를 거의 한마디도 못하던 때였다.

수줍게 '아이 원트 아메리카노'를 말했지만, 직원은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다.

'아메리카노!!' 내가 아무리 애타게 아메리카노를 수십 번 말해도 여전히 직원은 알 수 없는 표정만 짓는다.

'이상하다. 미국스벅은 아메리카노를 안 파나?'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아메리카노를 받아오긴 했지만, 그때 이후로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것이 두려워졌었다.

그리고 우연히 미국스벅에서 음료주문하는 법이라는 유튭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나의 문제는 억양이었다.

억양이 틀려서 직원이 못 알아들은 거였다.

물론 본토발음, 억양과 이곳은 또 다를 수 있겠지만 이번엔 열심히 열심한 억양으로'캔 아이 해브 아메리카노'를 말했다. 다행히 직원은 내 말을 바로 알아 들었다.

이것 또한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고 작은 성취감을 얻었다.

조금씩 성장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뿌듯함이 느껴진다.


서로 어설픈 영어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커다란 천둥소리가 들렸다.

열대나라답게 날씨가 참 변화무쌍하다.

우리는 서둘러 그랩을 잡아타고 학교로 복귀하였다.

성공적인 주말외출이었다. 

앞으로 남은 3 주, 또 어떤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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