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나의 진짜 행복찾기(5)
올해 봄에는 10번째의 결혼기념일이 있었다.
나의 결혼생활 이야기로 시작된 이 연재는 오늘로서 '10년 동안'의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브런치에 이 매거진을 처음 발행한 것이 작년 12월 31일. 거의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각만큼 많은 글을 쓰지 못했다. 대부분이 올 초에 쓴 내용이었고 그 후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세상 풍파에 휘둘리며 내적 고뇌와 심적 방황(?)을 거친 후에야 다시 정신을 부여잡고 연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불과 한 달 전의 일이었다.
결혼 10년 차. 첫째가 내년에 3학년이 되고 둘째는 1학년이 된다. 물론 아직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긴 하지만 이 정도 키워놓으니 이제 진짜로 내 삶에 더 집중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육아와 살림을 하면서 우울증에 걸리고 무기력증에 빠지며 자존감이 바닥을 내려찍고 몸은 병들고 얼굴은 생기를 잃어가면서도 이 삶에 지지 않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었다.
그리고 정말 다 빠져나왔다고 생각했을 때, 10년 동안 내 몸과 정신을 지배해 온 엄마, 주부, 아내, 며느리라는 이름이 사실은 더 무겁고 더 깊숙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주저앉아 버렸다.
사실 10년은 긴 시간이다. 예를 들어 10년 동안 어떤 기술을 배웠다면 분명히 그 분야에 엄청난 실력자가 되어있을 것이고 옛날 말로 강산이 변화할 정도의 시간인 것이다.
물론 우리 아이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10년 그까짓거 내 한 몸 부서져라 희생할 수 있다. 아깝거나 억울하지 않다! 10년 후에 짜잔 하고 한 번에 원래의 정신과 몸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이렇게 고통 속에 울부짖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독박 육아와 살림이 반복되는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낸 당신에게 어느 날 갑자기,
라고 한다고 그게 갑자기 가능할 리가 없다.
나 역시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을 나를 버리고 육아와 살림에 올인하며 지냈다. 그리고 점점 사라지는 내가 너무 두려워서 천근같이 무거운 몸과 정신을 이끌고 바위로 계란치는 마음으로 뭔 내용인지도 모를 글을 쓰고, 연필 잡기도 힘든 정신에 억지로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고,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분야에 도전하고, 결국 몇 년이나 걸려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겨우 예전의 몸과 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자신감과 자존감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내 주변에도 이젠 아이도 성장하여 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남편도 직장에서 또는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고 자기 자리를 잘 지키며 성장하고 있는데 나만 성장을 멈춘 채, 뭘 해야 할지. 어떤 미래를 꿈꾸어야 할지. 방황하고 있는 엄마들이 많다. 내 미래를 상상하면 성장한 나의 미래가 아닌, '잘 자란 자식과 성공한 남편의 미래'만이 보이는 것이다.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만 하다가 또 10년이 홀랑 지나버리면, 그땐 정말 나이가 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육아 우울증만큼이나 무섭다는 갱년기 우울증에 걸리기 전에 내걸 찾아서 나도 같이 성장해야 한다. 엄마, 아내, 며느리가 아닌 나로 인정받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꼭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갓난 아이를 키우면서도 나를 버리면 안 된다. 아이가 커가면서 나도 조금씩 성장해야 한다. 내가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는 그날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훨훨 날기 위한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얼마 전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대강 어떤 내용일 것이라는 짐작은 했었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나도 잘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고 여자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에 대해 항상 의문을 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 노력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받은 충격은 생각보다 강했다.
내가 당연히 해 왔고 희생했던 일들이 사실은 더 목소리를 냈어야 했던 일들이 더 많았구나.
왜 여자인 나조차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왔을까? 왜 좀 더 의심하고 불만을 품지 못했을까? 왜 좀 더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복잡한 심경이었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참았던 눈물이 폭발을 했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 때부터 내려온 여자로서의 삶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자를, 엄마를 대변한 김지영이 안쓰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난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주변 엄마들과 비교하면 난 남편이나 시부모님에게 당당하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주변에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렇게 결혼생활 10년을 보냈다.
그런 나인데도 영화를 보고 나니 억울함이 몰려왔다.
주위엔 나보다도 목소리를 못 내고 남편 눈치, 시댁 눈치, 애들 눈치를 보고사는 엄마들이 많다. 간섭받고 자유를 억압당하고 희생을 당연하게 강요받는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조금의 내 시간, 내 생각, 내 인생을 주변 가족에게 주장할 때 왜 엄마들은 그렇게 눈치 봐야 하고 미안한 감정이 들어야 하는지. 왜 죄인이 되어야 하는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엄마만 있고 왜 나는 없는지.
'남자도 직장 생활이 힘들어! 그리고 집안 일과 육아도 가끔은 도와주잖아! 나 같은 남편 없을걸? 당신은 복받은 여자야!'라고 말하는 남편들이 있다. 남자들도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고충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말 그대로다 집안 일과 육아를 도와주는 것이 문제다. 남자는 그저 육아와 살림을 도와주는 다정하고 대단한 남편 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도와주지 말고 함께하면 안 될까? 여자도 밖에서 당당하게 일하고 싶다. 전공도 살리고 자기 분야에서 인정도 받고 싶다. 애를 낳을 수 있는 재능(?) 이 여자한테 있다고 해서 꼭 여자만 애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은 부당하다. 애를 키우는 것이 엄마이기 때문에 집안 살림은 여자가 전담 마크해야 한다는 것도 부당하다.
라는 답변은 지금 생각해 보면 상식 밖이다.
10년 가까이 독박 육아와 살림으로 우울증 직전까지 갔다가 스스로 제정신 찾아 돌아와야 하는 현실이 아닌, 아이를 낳아도 내 일을 할 수 있고, 꿈을 펼칠 수 있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기를.
선택의 여지도 없이 여자가 하는 것이 아닌 여자도 선택할 수 있기를.
그런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기를. 마련되기 전에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기를. 남자도 그리고 여자도 말이다.
여하튼 나는 바뀌지 못한 사회에서 10년 가까이 육아를 했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10년을 억울해하진 않겠다.
내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육아에 임했고, 내조했고, 살림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내가 나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일도 오늘로 마무리하고 싶다.
몇 달 전에 건강검진을 하면서 우울증 검사를 했다. 항목을 체크하면서도 알 수 있었다. 난 전혀 우울증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씩 올라갔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이 우울한 항목들이 나에게 해당됐었는데 말이다.
한창 어린아이를 키우던 시절 문득,
라는 생각에 좌절했던 적이 있다.
10년 동안 급하강하던 나의 그래프를 겨우겨우 끌어올려 원점으로 왔다.
이제는 내 그래프도 상승할 일만 남았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이제 10년 동안의 나하고 작별을 고할 시간.
난 오늘부터 '새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