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나의 진짜 행복찾기(3)
긴장 가득했던 나의 첫 웹툰 수업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학기가 끝나고 두 번째 학기를 시작할 때는 자유학기제 수업에 이어 방과후 수업까지 맡게 되었다.
이때 일하는 것에 재미가 들려서 내친김에 복지관에 코딩 강좌 개설을 의뢰하였다.
한창 코딩이 핫하기 시작할 때라서 내 강좌가 새로운 강좌로 개설되었다. 학교 수업과 달리 복지관 수업은 수업 내용은 물론 날짜와 시간, 수강인원, 수강료까지 모집을 제외한 수업 전체를 내가 설계하고 관리해야 했다.
학생 명수 대로 나의 수입이 되는 시스템이어서 학생 수가 점점 늘어나자 욕심이 생겨 한 타임이던 수업을 두 타임으로 늘렸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던가! 난 일 맛에 돈맛까지 들어, 나의 일주일을 수업 준비와 강의로 올인하며 정신없이 보냈다.
육아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백수 시절의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우울증에 빠질 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수업이 없는 날은 거의 수업 준비를 하면서 보냈는데, 두 수업의 종류가 달라서 준비도 각각 해야 했다.
스크래치 수업은 매 수업마다 반마다 난이도가 다른 프린트물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다.
수업 준비도 힘들었지만, 문제는 아이들의 실력과 성격이 다 제각각이라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 자판도 잘 못 치는 코 찔찔 1학년, 반항을 달고 사는 무서운(?) 2학년, 코딩에 계통에 소질이 있어 곧잘 하는 모범생 3학년 등 각기 다른 능력치를 가진 아직 인간이 덜된 이 귀여운(?) 아이들을 제어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웹툰 수업은 사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 컴퓨터를 이용한 실기 수업인데, 학교의 여건상 컴퓨터나 그래픽 툴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일일이 PPT를 만들어서 내 화면만을 보며 수업을 진행해야 했고 정규 수업이었기 때문에 만화와 그림에 별 관심 없는 학생들을 포함한 한 반의 인원이 꽉 차 있어서 굉장히 산만했다. 모든 아이들을 수업에 집중시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잘하는 애들 위주로 수업하면 나머지 아이들이 흥미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사탕에 게임까지 준비하면서 두 시간 동안 아이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수업 내용에 고심했다.
그리고 방과 후 웹툰 수업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아이들 수도 적고 정말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들만 모여있어서 나도 어릴 때 활동했던 만화동아리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 같이 만화에 대한 수다를 떨거나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즐겁게 수업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복지관의 실버 컴퓨터반 강사 자리가 비어서 나에게 의뢰가 들어왔다. 일주일에 두 타임 초급, 중급, 두 반 총 주 4회 수업을 해야 했다. 주 1회보다 확실히 페이가 좋았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스크래치를 가르치게 되었지만, 노인을 대상으로 컴퓨터 수업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나를 찾아주는 곳이 또 있다는 고마움과 설렘에 덜컥 수락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식 수업 전에 OT를 진행하였는데 어르신들을 대하는 것은 어린이들과 또 다른 어려움이 예상되었지만, OT가 끝난 후에 어르신들의 반응이 아주 좋으셨다는 담당자의 말을 듣고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그 후였다. OT 후에 교실에서 컴퓨터를 정리하고 있는데, 이번엔 장애인 복지관의 담당자분이 찾아오셨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이번엔 수업 시간이 더 많았다. 그만큼 페이는 더더 괜찮았다. 난 당황스러웠고, 내가 또 어딘가에 쓰임이 되겠구나 하는 마음은 역시 기뻤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어서 생각 후에 오늘 중으로 말씀드린다고 하고 그 자리를 나왔다.
남편에게 의견을 물어보자, 남편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구나!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블로그에 끄적였던 글 들을 찾아보았다. 한창 우울증에 시달릴 때 작가가 되기 위해 발버둥 쳤던 지난 흔적들이 있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뭐지? 강사? 부자? 그림이나 글 쓰는 작가? 그랬다. 내가 원하는 삶은 따로 있었다. 뭔가 내 삶이 산으로 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작가가 되겠다며 울부짖던 나 자신이 너무 창피하게 느껴졌다. 웹툰 강사 일은 그림과 관계있는 일이니 계속하더라도, 복지관 일은 내 욕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노인 복지관 담당자와 장애인 복지관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두 강사 자리를 아주 정중히 거절하였다. 욕먹을 각오는 했지만 실제로 욕을 좀 먹으니, 더욱 정신이 차려졌다.
나의 경솔함이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했구나. 나의 꿈에 대한 열정이 이 정도밖에 안됐다니. 돈이 그렇게 좋았니? 아니면 누구라도 좋으니, 그렇게 인정받고 싶었니? 맞다. 난 그랬다.
그리고 그 즈음 다른 중학교에서 또 다른 웹툰 강사 자리가 들어왔다. 정말 처음이 어렵지. 막상 일을 시작하니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일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래서 1년 넘게 해왔던 스크래치 강사를 그만두고, 그 자리를 새로운 웹툰 강사 일로 채웠다.
사실 스크래치 두 반을 운영하면서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했는데, 웹툰 강사 일만 하니 의외로 남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침 그때 이 시골 동네에 나름 브랜드 커피숍인 투썸이 생겼는데, 여기서 1인 노트북 자리라는 것을 생전 처음 본 난 완전 반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수업이 없는 날이나 오후에 수업이 있는 날, 오전에라도 마치 사무실에 출근하듯 투썸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아무리 짱돌을 굴려도 창의적인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안 나오더니 투썸 의자에 앉자마자 창작의 욕구가 활활 타오르는 것이 아닌가! 정말 신비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1년 넘게 일도 했고, 여러 분야에서 인정도 받았고, 통장도 두둑해졌고, 이미 나의 자존감이 많이 회복된 상태였다. 게다가 이런 좋은 작업 장소까지 떡하니 생겼다.
라는 신의 뜻인가?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내 돈으로 산 커피를 마시며, 어느 날은 새로운 웹툰을 구상하여 끄적거려보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고, 카카오 이모티콘 작업도 하고, 여유롭게 수업 준비도 했다. 하루하루 보람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입고 갈 데가 있기에 이유 있는 쇼핑을 했고, 할 일이 있기에 커피숍에서 당당히 커피를 마셨다. 내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니, 얼굴에 생기가 돌고 걸음걸이가 당당해졌다. 커피숍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마다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도 좋았다.
사람들이 의아한 시선으로 날 쳐다보지만 상관없었다.
시작은 힘들었지만, 한때 곤두박질쳤던 나의 인생 곡선은 조금씩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1년 정도 후에 난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에 나의 긴긴 육아서사와 우울증 탈출기를 꼬물꼬물 연재할 수 있게 되었다.
투썸, 1년 동안의 흔적...습작 웹툰<볼빨간 사000>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