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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Dec 22. 2023

인스타를 대하는 40대의 자세.

작년 가을쯤 인스타그램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SNS에 자신의 작업물을 공유하고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팔로우를 한다.

그리고 서로의 계정을 오가며 하트도 누르고 댓글도 달면서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팔로우 수가 많아지면 광고도 받고 수익을 낼 수도 있는 구조이다.


처음 인스타를 시작했을 땐 일주일에 5개를 업로드하리라 마음먹고 불타오르기도 했다.

인기작가가 되면 돈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기도 했다.


이제 막 시작한 계정끼리 서로 하트도 눌러주고 응원의 댓글도 달아주고 하는 게 재밌고 신선했다.

서로 비슷비슷한 팔로우 수를 가지고 있어서 함께 으쌰으쌰 하는 기분도 있어서 동료애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스타를 하면 할수록 나보다 훨씬 잘 그리고 인기 있고 잘 나가는 계정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이미 인스타는 젊고 실력 있는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트렌디한 공간이었다.

나같이 유행에 뒤처진 중년 아줌마가 그들을 쫓아가기에 버거움이 있었다.

그들의 어마어마한 팔로우와 하트 수에 비하면 나의 계정은 수수하다 못해 초라했다.

그 엄청난 차이는 점차 업로드에 대한 나의 의지를 사라지게 했다.

'인기 있고 잘하는 계정이 이렇게 많은데, 난 언제 팔로우 모아서 이렇게 해... 맥 빠진다'

결국 일주일에 한 번, 이주일에 한번 뜸하게 만화를 올리다가 5개월 정도 인스타툰을 쉰 적이 있었다.


그 5개월 동안 다른 곳에 내 길이 있을 거라고 믿고 여러 문학 공모전에도 도전하고 카카오 이모티콘 제안서도 여러 차례 넣었다.

하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세상이 언제부터 이렇게 나에게 불친절했지?' 


결혼과 육아로 30대를 통째로 흘려보내는 동안 좋은 기회들을 다 뺏겨버린 것 같아 억울했다.

'현업에서 오랫동안 멀어져 있어서 아직 트렌드를 못 읽는 것뿐이야'

사람들이 내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분하고 원망스러웠다.


그 후 몇 번의 소소하고 시시한 기회들 조차 모조리 날려버린 후에야 난 내 주제를 확실히 알았다. 

재수가 없어서, 사람들의 눈이 틀려서 날 못 알아본 것이 아니라 그냥 나의 작품이 별로고 재능이 부족한 거였다.

 난 내 능력을 과신하고 있었다. 한때 잘 나갔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모습에 갇힌 채 현실의 나를 직시하려 하지 않았다.


나의 본모습을 알고 나니, 인스타툰의 다른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 아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마추어 거나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계정들, 적은 하트 수를 받는 계정, 적은 팔로우의 계정 등...

내가 알게 모르게 무시했던 그 계정들의 게시물의 수를 보았다.

나의 두 배 많게는 다섯 배가 넘었다.

최소한 '꾸준함'이라는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부끄러웠다. 난 그 사람들의 노력의 십 분의 일도 해보지 않고 쉽게 포기하려 했다. 

재능이 없는 것보다 더 창피한 것은 노력도 없이 대가를 바라는 것이다.


인정하자. 난 감각도 트렌드를 읽는 능력도 딸리고 손도 느리고 눈도 침침하고 밥도 해야 하는 40대다.

딸린 애도 없는 감각 좋은 젊은이들이 이 세계에서 잘해나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애초에 비교하고 좌절할 대상이 아니다.

어차피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경쟁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성실하게 그림을 그리고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인스타를 해나가는 것뿐이다.

하트 수 신경 쓸 시간에 하나라도 더 그려서 올리는 것이 맞다.


현타를 쎄게 맞은 지금은 하트 수나 팔로우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작업물을 만드는 데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결혼과 육아로 오랫동안 쉬었던 만큼 다시 시작할 때는 전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엔 작은 성공조차 버거울지 모르지만,

인터넷상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나의 작업물들은 수년이 흐른 후엔 '내가 이렇게 노력하며 살았구나!' 하는 뿌듯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거라 격려해 본다.


오늘도 난 인스타에 떨리는 맘으로 인스타 툰을 공유한다.

신경을 안 쓰려고 했지만, 사람인지라 어쩌다 하트를 많이 받는 날이면 기분이 좋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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