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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유학생에게도 친구가 필요할까?

by 샤프펜 Sep 03. 2024

처음 필리핀에서 한 달 동안의 유학을 결정할 때 망설여졌던 이유는 당연히 가족들이 나 없이 한 달 동안 잘 지낼 수 있을까? 였지만 또 하나 걸리는 것은 내가 유학하기 에는 '늦은 나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40대인 내가 20대들 사이에 껴서 튀지 않게 잘 지낼 수 있을까. 

영어도 잘 못하는데 나이도 많고 기혼이고 애도 있다. 올해로 전업주부 15년 차.

20대 30대의 젊은 싱글들과 어울리지 못한 지 벌써 10년이 넘는다.

그들과는 생각도 생활환경도 심지어 국적도 다르다.

나는 과연 성공적으로 유학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인가. 오랜 시간 한 동네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의 좁은 인간관계만 하던 내가 낯선 환경 낯선 낯선 사람들 사이에 툭 던져진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상상이 안되고 두렵기도 했다.

'아차, 이게 아니네 잘못 왔다'라고 뒤늦게 후회해도 난 한 달을 이곳에서 머물러야 한다. 게다가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렵게 온 만큼 중도에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딸들의 실망과 남편의 야유를 들을 수는 없다)


그리고 유학생활 2주가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니 괜한 걱정을 했다.라는 결론이다.

사실 혼자만 너무 늙어 보이거나 날 다르게 보는 젊은이들의 곱지 않은 눈초리(?) 같은 것을 예상했었는데, 그건 우스운 착각이었다.

무엇보다 700명의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나이대가 모여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기 바쁜 이곳은, 나 따위는 아무도 관심도 쳐다볼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이 다양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 틈에 쏙 들어가 생활하는 나는 눈에 띄는 아줌마가 아닌 그냥 한 사람의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

한국에서 내내 엉뚱한(예를 들어 튀지 않으면서 어려 보이려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가 등)을 걱정 한 걸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역시 뭐든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지 말고 직접 실행해 봐야 진실을 알 수 있다.


이곳에 오고 처음 몇 주 동안 나는 내 나이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나와 나이대가 같은 40대 룸메들하고만 어울리려고 했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어떤 기준을 마음속으로 정해 놓고 있었다. 최소한 30대 후반 이상의 여성이며, 이왕이면 미혼보다는 아이가 있는 기혼자로 나와 공통분모가 많을수록 더 말이 잘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이 기준은 결혼 이후에 최근까지 내가 새롭게 만나 친분을 쌓아온 사람들의 특징과 완전히 일치한다. 이로써 환경과 경험이 사람의 가치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우리 방에는 40대의 유부녀 룸메 말고도 또 한 명, 21살의 베트남인 루나가 있었다. 루나는 나이도 어리고 예쁘고 스타일도 좋아서 친구가 많았기 때문에 엄마 뻘인 내가 친한척하는 것이 이 친구한테 큰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혼자 결론 내렸었다. 

그래서 난 이곳에서 지낸 처음 2주 동안 동갑인 러시아룸메와 같은 40대인 중국인 룸메, 그리고 새롭게 사귀게 된 40살(만 39세)의 일본인 클래스메이트와 친해져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론은 생각만큼 잘 되지 못했다.


결국 2주 후 40대 룸메들을 졸업과 함께 떠나보내고 3주 차에 20대의 일본인 여학생이 우리 방의 새 룸메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에 대한 나의 기준은 그저 꼰대의 낡은 고정관념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밝은 인상의 예의 바르고 순수한 일본 처자 코마키는 나이도 직업도 처해있는 상황도 전혀 달랐지만 나와 성격적 코드가 맞았는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그 후로 21살의 베트남 룸메와 27살의 일본 아가씨는 남은 유학생활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40대들과 친해지기 위해 피눈물 나게 노력했던 2주간이 무색하게도 난 이 20대의 어린 사람들과 하루 이틀 만에 마음을 열기 시작해서 일주일이 지났을 때는 가까운 친구가 되어있었다.

그 40대 둘이 떠난 후, 오히려 난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얌전한 줄로만 알았던 베트남 룸메는 딱딱한 성격의 중국인과 러시아인 두 명의 40대 룸메가 떠나자 본색을 내보이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예쁘고 도도한 부잣집 막내딸 같은 외모와 반대로 털털한 성격에 유머 감각을 가진 그러면서도 겸손하고 배려심 넘치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매력을 가진 소녀였다. 

무엇보다 내가 많이 외로워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 후에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또래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혼자 있는 나에게 먼저 말 걸어주고 본인의 친구들도 소개해주겠다고 하며 손을 내밀어 주었다.

고작 20살을 갓 넘긴 아기(?)가 이렇게 기특할 수가!! 오히려 애를 키우는 40대 룸메들(나이가 많고 애가 있다고 모두 배려심과 공감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닌가 보다)은 나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 준 적이 있었던가.


예쁘고 성격 좋고 패션 센스 또한 뛰어난 이 아가씨는 주변 친구들을 대할 때도 남녀노소 국적 불문 누구에게나 선입견 없이 나이스하게 대했다. 좋은 가정에서 바르게 잘 자란 것 같다.

심지어 각종 봉사단체에 가입해서 베트남에서도 몸소 봉사를 실천하는 아기천사였다. (40년 넘게 살면서 봉사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있나. 급 부끄럽다)

처음에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어렵게 대하지 않았다면, 더 빨리 친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살 나이 차이가 나도 마음만 맞으면 순수하게 호감만 있으면 누구나 절친이 될 수 있다.

내가 이 나이에 유학을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행복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을까?

난 마치 20년 전으로 타임슬립 한 듯 마냥 해맑게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고 함께 기숙사를 쓰고 학생식당에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하며 즐겁게 밥을 먹고 매일의 학교생활에 충실히 임했다.

 이 귀여운 20대들과 어울리고 있으니, 내가 20대인지 40대인지 전혀 모르겠다.

내가 결혼을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남편이 있는지 하는 배경 따위는 전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난 그냥 나이고 재미있는 룸메들과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얼굴표정도 생각도 20년 정도 회춘한 것 같은 기분이다.

몸이 늙을 뿐이지 할머니가 돼도 마음은 청춘이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물론 여기를 졸업하면 우리는 각자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이들은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살겠지. 그리고 나는 다시 평범한 주부가 된다. 

단 몇 주라도 이런 행복을 경험해 볼 수 있어서 난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변화를 두려워했다면 40대 중반의 아줌마인 내가 20대들과 이렇게 허물없이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난 여기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해 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낯선 환경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잊고 지낸 나를 찾은 것 같아서 기쁘고 내가 너무 자랑스럽다!!

다음번의 새로운 도전에 숨어있는 나의 어떤 능력이 발견이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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