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뮤지션이 악뮤가 된 시간들
악뮤는 올여름 더위가 절정을 지날 때쯤인 지난 8월 21일 네 번째 싱글 'Love Lee'를 발매했다. 이찬혁, 이수현이 '악뮤'라는 텐트 안에서 새로운 곡을 발표한 것은 지난 2021년 7월 발표한 'NEXT EPISODE' 이후 2년 만이다. 신곡 'Love Lee'는 악뮤 특유의 청량하고 밝은 에너지를 담은 사랑스러운 노래다. K팝 그룹들이 세계 시장을 겨냥해 경쟁적으로 화려한 댄스곡에 집중하는 흐름 속에서도 악뮤만의 서정적이고, 귀에 곧바로 꽂히는 멜로디를 장전했다.
악뮤는 2014년에 데뷔해 올해로 벌써 10년 차 그룹이 됐다. SBS 'K팝스타'에서 얼굴을 처음 알릴 때만 해도 10대 소년, 소녀의 앳된 얼굴을 하면서도 다른 경쟁자들이 범접할 수 없는 작곡, 노래 실력을 뽐냈다. 당시 그룹명이 악동뮤지션이 잘 어울렸던 이유는 자작곡에서도 나이답지 않은 연륜이 묻어나는 데다가 한 번 들어도 기억에 남는 직관적인 가사와 멜로디와 잘 맞아서였다. 여기에 서로 투덕거리면서도 떼어낼 수 없는 '현실 남매'라는 점도 대중이 더욱 악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악뮤는 2019년 앨범 '항해'를 발표하기 전 그룹 이름을 '악동뮤지션'에서 'AKMU'로 변경했다. 이찬혁은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그 사이 이수현이 솔로 활동을 할 만큼 데뷔 때보다 두 사람의 활동 반경은 더욱 넓어졌다. 20대 중반으로 접어든 나이 또한 '악동뮤지션'이라는 그룹 이름과는 어딘지 어색해 보였다. 가수들은 데뷔 때 팀명, 예명 등을 바꾸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악뮤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AKMU'로 그룹의 간판 갈이에 나서며 변화를 스스로 맞이했다.
이찬혁, 이수현은 타이틀곡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통해 악뮤가 됐음을 선포했다. 사랑하는 연인이 점차 멀어지는 순간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가사와 웃음기 쫙 뺀 이들의 보컬은 모든 세대에서 사랑받았다. 그동안 재기 넘치고 발랄한 악뮤의 노래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 셈이다. 악뮤는 그럼에도 자신들의 성공에 취하진 않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나이에 따른 굴곡에 점차 변해가듯이 무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2021년 EP 'NEXT EPISODE'을 발표하면서는 어딘지 모르게 어깨가 무거워보였다. 아이유와 호흡을 맞춘 '낙하'나 이선희가 피처링한 '전쟁터'는 악뮤의 한계 없는 음악성, 표현력을 보여줬으나 그만큼 대중성과는 거리감이 있었다. 이 외에도 자이언티, 빈지노, 잔나비 최정훈, 크러쉬, 샘킴 등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피처링 가수들과의 협업에 팬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자체 프로듀싱과 가창을 소화할 수 있는 악뮤의 음악에 익숙했던 팬들에게 충분히 낯설만 했다.
여기에 타이틀곡 '파노라마'가 수록된 이찬혁의 솔로 앨범 'ERROR' 또한 모두에게 환영받진 못했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손가락에 꼽는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한 이찬혁의 음악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반면 음악방송에서 카메라 쪽이 아닌 뒤를 돌아보고 노래한다든가, 무대 중에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밀어버리는 모습은 뒷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좋은 표적감이 되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겪은 악뮤는 2년 공백을 깨고 올해 'Love Lee' '후라이의 꿈'을 들고 돌아왔다. 지난 몇 년 동안 유지했던 무게를 조금 내려놓고, 데뷔 당시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았던 경쾌한 사랑 노래다. 이찬혁의 재치 있는 가사와 듣는 순간에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의 보컬은 여전하다. 데뷔 때로 돌아가는 회귀로 보이는 듯하지만, 계산적인 낡은 과거로 회귀가 아닌 잠시 쉼표와 같다. 그동안 다소 강박적으로 성장을 추구했던 이 그룹은 자신이 가장 잘하고, 가장 사랑받을 노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피해 왔다는 것을 은근히 증명했다.
이찬혁은 신곡 발매에 앞서 "지난 악뮤의 행보 자체가 수현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것에 초점이 맞춰져 다양하게 실험적인 음악을 보여줬다. 이제 하고 싶은 거 말고 할 수 있는 걸 하겠다"고 말했다. 이수현은 "악뮤를 하면 할수록 오빠의 색깔에 맞추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번에는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 달라 약속을 얻었다. 더 이상의 도전은 싫다. 10년 전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200%' 처럼 가벼운 노래를 하고 싶다고 해서 만든 노래가 'Love Lee'다"고 설명했다.
이찬혁, 이수현 남매를 떠올리면 '악뮤'보단 '악동뮤지션'이 아직 먼저 생각나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데뷔 당시 뚜렷한 성과를 올린 악뮤와 같은 그룹은 극히 드물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은 악뮤가 데뷔 앨범에서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가려는 발짓들이었고, 반대로 대중들은 조금이나마 악뮤가 그 자리에 머물러주길 바라는 시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악뮤는 대중과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조금씩 자신들의 발자취를 남기는 데 성공했다.
대부분은 과거의 추억이 그저 아름답게만 남아있길 원한다. 이전에 즐겨듣던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지금은 잊고 잠시 그 노래를 듣던 때도 돌아가기도 한다. 대중은 악뮤가 그저 과거에 머물기만 하는 피터팬이 되어달라고 한 것은 아닐까. 악뮤의 청량한 음악들을 들을 때면 꿈에서 깨지 않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모두 같을 것 같다. 그렇지만 악뮤는 압박과 부담 속에서도 앞으로도 또 다른 음악들을 선보일 것이다. 'Love Lee'로 쉼표를 찍은 악뮤는 이제 원더랜드로 데려다 줄 피터팬이 아니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