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Red Velvet)은 그룹 이름처럼 '레드'와 '벨벳'이라는 두 가지 콘셉트의 음악,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레드의 강렬하고 매혹적인 음악, 부드러운 벨벳처럼 세련된 음악을 번갈아 오간다. 데뷔 10년 차인 그룹임에도 신보를 발표할 때마다 '새로움'을 잊지 않는다. 최근에는 굳이 '레드' '벨벳'이라는 키워드로 나누지 않고 온전히 '레드벨벳'이라는 색깔을 보여준다. 10년 동안 한결같은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K팝 그룹으로서 레드벨벳만의 길을 걷고 있다.
레드벨벳은 그동안 그루비한 비트가 중심이 되는 알앤비, 발라드부터 신나는 댄스까지 수많은 음악 장르에 도전했다. '레드벨벳'을 떠올리면 딱 하나의 장르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도 그동안 음악적인 실험을 멈추지 않아서다. 여기에 아이린, 슬기, 웬디, 조이, 예리는 랩, 보컬 능력은 아이돌 그룹 중 수준급이라고 평가받는다. 레드벨벳은 멤버들의 탄탄한 실력에 기초를 두고, 변화무쌍한 음악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레드벨벳은 영상 콘텐츠로 관심받았다. 재킷 이미지, 영상 티저, 뮤직비디오 등을 공개할 때 곳곳에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장치를 넣어뒀다. 팬들은 음악과 함께 레드벨벳이 내놓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그룹에 애정을 쏟을 수 있었다. 영상에 멤버들을 암시하는 듯한 상징과 역할이 있는데, 무게감 있는 음악과 결합하면서 묘한 분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일례로 'Dumb Dumb' 뮤직비디오와 멤버들의 착장과 콘셉트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후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이야기를 담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이 외에도 레드벨벳은 동화 스토리를 따르면서도 유쾌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11월 발매한 정규 3집 'Chill Kill'에서도 레드벨벳의 색깔을 볼 수 있다. 앨범명과 같은 이름인 타이틀곡 'Chill Kill'은 과감한 베이스에 스트링 선율, 화려하고 몽환적인 신스와 벨 사운드가 펼쳐진다. 극적이고 변칙적인 조화를 이루는 파트는 레드벨벳의 '벨벳' 콘셉트에서 주로 선보였던 컬러가 느껴지고, 후렴구에서는 경쾌한 '레드' 컬러를 만날 수 있다.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다가도 신나게 따라 부를 수 파트가 나오는데, 레드벨벳이 오랫동안 다져왔던 음악 스타일이다.
전작들과 같이 보컬 면에서도 레드벨벳은 균형 있는 조화를 보여준다.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웬디의 한층 성숙해진 보컬을 중심으로 아이린, 슬기, 조이, 예리가 각자의 음색과 조화를 이루는 파트를 소화한다. 레드벨벳의 특기인 멤버들의 화음도 개인 보컬만큼 발전한 모습이다. '레드벨벳'이라는 팀을 떠올리면 콘셉트가 먼저 생각나지만, 멤버들의 보컬 능력은 숨겨진 레드벨벳의 장점이다.
'Chill Kill'은 ‘고요함을 깨뜨리는 사건이나 존재’라는 뜻이다. 'Chill Kill'의 등장으로 나의 세계가 뒤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성장할 수 있게 해준 ‘Chill Kill’을 다시 그리워하며 희망을 갈구하는 양면성을 담았다. 레드벨벳이 특정 지은 하나의 존재로 인해 '비극'과 '희망'을 동시에 표현했다. 음악적으로 밝고 희망찬 느낌에서 오는 매력과 서늘하고 처분한 느낌에서 오는 매력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다른 그룹들도 한 곡에 두 콘셉트를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레드벨벳이 더욱 특별할 수 있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 '양면성'이라는 서사를 충분히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레드벨벳의 'Chill Kill'은 음악과 더불어 뮤직비디오로 완성된다. 멤버들이 다섯 자매로 등장해 '하나의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지하실에서 일상을 보내는 듯한 다섯 자매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풍기게 되고, 웬디가 위층에 올라가면서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자매들은 바닥에 있는 핏자국을 지우거나 서로 갈등을 겪게 되는데, 멤버마다 사건을 마주하는 방법이 다르다. 사건의 시작점이 되는 웬디를 비롯해 자매들을 이끌어가는 아이린, 카메라에 자매들을 담는 조이, 언니들 품속에 있는 막내 예리, 중심을 잡아주는 슬기까지. 레드벨벳은 뮤직비디오에서 은유와 상징을 품고 있다. 레드벨벳은 마지막 장면에서 각 성향을 표현하는 착장을 하고 자신들을 쫓는 경찰차 앞에서 밝은 모습으로 군무하는데, '레드벨벳'이라는 팀 컬러를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다.
'Chill Kill'은 발매 전 공개된 티저 이미지, 영상에서 콘셉트를 만들어왔다. 멤버마다 정신적인 혼란을 겪는 듯한 티저 영상에서 자매들에게 닥칠 위기를 암시했다. 고풍스러운 벽걸이 달력으로 디자인한 스케줄 포스터는 멤버들이 마주하게 되는 사건과 공간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멤버들이 다섯 자매로서 역할을 설명하는 글들은 레드벨벳이 현실 세계에서 또 다른 동화로 들어갈 수 있는 장치가 됐다. 티저 영상, 이미지만으로도 오싹한 분위기를 내고 음악을 기대하게 하는 것은 아이돌 그룹 중에 레드벨벳이 독보적이다.
동화는 어린이들을 위해 동심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다. 현실을 살아가는 어른들은 결국 어린이 시절부터 성장한 이들이다. 모든 어른에게는 동심이 있었고, 지금도 마음속에는 그 동심이 자리하고 있다. 레드벨벳은 어른들이 누구나 접한 동화를 음악과 영상으로 끌고 들어와서 어른들만의 동화로 재창작했다. 밝으면서 음침하고, 오싹하면서 경쾌한 레드벨벳의 음악과 영상은 데뷔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팬들에게 관심받는다. 동심 뒷면에 감춰진 레드벨벳의 이야기들은 잔혹할수록 빠져들게 하는 어른들의 동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