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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Nov 21. 2023

아이브의 얼빡샷, 칼군무의 시대는 저물어간다

표정 연기까지 장착하는 K팝 그룹들

'얼빡샷'이란 카메라 화면에 자신의 얼굴을 빡빡하고 여백 없이 꽉 채워 찍은 사진을 뜻한다. 삼촌이나 이모 혹은 부모님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얼굴을 찍을 때 다른 배경보다 얼굴에만 초점을 맞춘 어색한 얼빡샷은 어린 세대를 웃음 짓게 한다. 반면 아이돌 세계에서 얼빡샷은 팬들의 관심을 끄는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분장 속에 모공까지 보일 것 같은 얼빡샷은 가수들의 또 다른 매력을 캐냈다.


지난 2021년 데뷔한 아이브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히트곡을 쏟아내며 K팝을 대표하는 걸그룹의 자리에 올랐다. 수많은 히트 포인트가 있었지만, 그중에 멤버 이서의 얼빡샷도 빼놓을 수 없다. 이서는 데뷔곡인 'ELEVEN' 활동 당시 방송 무대에서 카메라가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오는 카메라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대로 안무를 이어갔다. 그동안 방송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셀카를 찍는 듯한 카메라 앵글, 초연한 이서의 대처는 팬들에게 화제가 됐다.


이서의 얼빡샷이 담긴 아이브의 무대 영상은 단기간에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 조회수가 급증했다. 또한 이서의 얼빡샷 영상 모음은 팬과 유저들의 편집을 거쳐 2차 생산되며 퍼져갔다.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48'로 탄생한 걸그룹 아이즈원으로 이미 얼굴을 알렸던 장원영, 안유진에 집중됐던 관심이 본격적으로 다른 멤버들에게도 옮겨붙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도달한 아이브의 무대 영상은 이서를 비롯한 멤버들의 침착한 무대 소화 능력을 알린 계기도 됐다.


단순히 얼빡샷으로 아이브가 알려졌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들이 의외의 순간을 통해 더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삼촌, 이모들의 얼빡샷조차 멤버들에게는 자신을 알리는 기회가 된다. 이서는 당시 상황에 대해 "진짜 눈 바로 앞까지 카메라가 들어왔다. 정말 당황했다. 안무를 안 하면 그 컷을 못 쓰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아이돌 그룹에도 찬스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곤 한다.

방송사에서 다인원 그룹들의 개인 멤버들의 직캠에 공들인 것도 얼빡샷 탄생에 한몫했다. K팝 그룹들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할 때부터 방송사에서는 팬들이 공연장에서 한 멤버의 움직임을 담는 직캠처럼 영상을 촬영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통해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멤버의 무대 모든 순간을 더욱 자세히 볼 수 있게 됐다. 한 멤버가 불편한 액세서리를 재빨리 떼어내는 것부터 다른 멤버의 파트를 도와주는 순간까지 팬들은 돋보기를 들여다보듯이 가수들의 직캠을 즐길 수 있다.


아주 작은 움직임까지 포착하는 방송 카메라는 가수들에게 부담이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라이브, 퍼포먼스 실력을 키운 멤버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얼빡샷 한 장면으로도 그동안 얼마나 무대 준비를 잘해왔는지 판별되는 것이다. 얼빡샷과 직캠은 군무에서도 멤버마다 어떤 특징이 드러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팬들에게는 재미 요소이자 가수들에게는 작은 움직임에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포인트가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이돌 그룹들은 안무할 때 표정 연기에도 힘을 주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멤버가 동시에 칼 같은 짜임새로 안무하는 '칼군무'가 주목받았다. 이를 넘어서 최근 가수들이 무대에서 노래의 무드에 따라 얼마나 표정 연기를 하냐에 따라 무대의 몰입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서를 비롯해 아이브 멤버들의 장점이자 특기는 무대 위 표정 연기다. 'ELEVEN' 'LOVE DIVE' 'After LIKE' 'I AM' 'Baddie' 등 아이브는 그동안 안무 외에도 적절한 표정 연기까지 섞어주면서 무대의 보는 맛을 더했다.


가수들에게 '얼굴'을 쓰는 것은 새롭진 않다. 하지만 이전보다 섬세해지고 있는 영상, 촬영 기술 등은 가수들에게 또 다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길 원하고 있다. 아이브 외에도 K팝 그룹들은 더욱 곡에 맞는 표정, 연기를 자유롭게 선보이려고 노력한다. 여기에 그룹 속에서도 각 멤버의 시그니처 표정 혹은 제스처가 생겨났다. 그만큼 팬들이 작은 움직임을 포착할 정도로 영상을 통해 가수들을 가까이, 반복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결국 K팝 그룹들은 본업인 음악, 퍼포먼스와 더불어 배우들 못지않은 표정 연기까지 장착해야 하는 시기다. 누군가에게는 껄끄러울 수 있는 변화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예상치 못한 찬스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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