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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걱정이 되잖아! - (2)

오아시스, 갤러그 형제 이야기

by 김주영

노엘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리암은 기타를 무릎에 얹고 조용히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날이 선 듯하면서도 흐물거리는 소리. 그건 옛날 그들의 첫 공연 날과도 비슷한 음색이었다.

“이 자식… 아직도 목에 힘 들어가선,” 리암이 혼잣말처럼 중얼였다.

그는 기타를 천천히 돌려보며, 바디에 박힌 작은 흠집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었다.

“이거... 네가 집어던졌을 때 생긴 거다, 형. 글래스톤베리 리허설 날. 기억 나냐? 세 번째 줄 맥주 날리던 관객한테 화나서.”

리암은 작게 웃었다. 쓴웃음인지, 그리움인지 본인도 헷갈렸다.

“난 그날 진짜... 네가 천재 같다고 생각했거든. 말도 안 되게 날카롭고, 더럽게 예민하고, 사람 불편하게 하는 재능. 근데 말이야… 그걸 사랑한다고 말하면, 뭔가 진 거 같았지.”

기타를 다시 들어 조율을 마친 리암은, 그 옛 데모 곡의 첫 코드를 조심스레 짚었다. 손끝에 오래된 감정이 쌓였다. 억울함, 질투, 존경, 그리고…

“노엘 갤러거가 없었으면... 난 진짜 뭔 가수가 됐을까? 아니, 가수가 되긴 했을까.”

조명이 꺼진 연습실 구석에서, 리암의 독백은 기타 소리와 함께 천천히 녹아들었다.


연습에 몰두하던 노엘이 잠깐 연주를 멈췄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리암을 보며 말했다.

“그 곡, 끝까지 못 들었어. 그날 이후로.”

리암이 기타 줄을 한 번 튕기더니, 조용히 말했다.

“나도. 중간에 끊겼지. 무대 뒤에서.”

둘은 잠시 침묵했다.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 다른 시간을 떠올렸다.


노엘은 스튜디오 한쪽 구석을 정리하다가, 작고 낡은 녹음기를 발견했다. 먼지가 쌓였지만 버튼은 그대로였다.

“기억나냐, 이거?” 그가 물었다.

리암이 다가와 녹음기를 바라봤다.

반쯤 깨진 재생 버튼. 고장 난 볼륨 다이얼.

“우리 어릴 때 방에 있던 그거랑 똑같네.”

노엘이 버튼을 눌렀다. 테이프 안에서 희미한 피크 소리만 흘렀다.

“이걸로 처음 곡 만들었지. 마이크도 없이, 그냥 이걸로 부르고 틀고 부르고...”

리암은 그 녹음기를 잠시 들여다보다, 조용히 말했다.

“거기 있던 소리는 다 사라졌겠지.”

“그래도 테이프는 안 버렸잖아.”

그들은 잠시 말없이 그 낡은 기계를 바라봤다.


기타와 드럼, 베이스. 악기들은 먼지에 쌓여 있었지만, 건반을 두드리자 여전히 소리는 살아 있었다.

노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날은 미안했어. 그냥 말이 안 나왔어.”

리암은 한참 말이 없다가, 단순한 코드 하나를 튕겼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알아? ‘미안해’야. 왜냐면, 꼭 다 망친 다음에 들리거든.”

“그럼 오늘은 망치지 말자.”

둘은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

화해는 없었다. 사과도 반쯤만 있었다.

하지만 멜로디는 다시 흘렀고, 그건 둘 다 말보다 더 익숙한 언어였다.



사람들로 꽉 찬 공연장. 조명이 천천히 켜진다.

기타를 멘 노엘과, 마이크를 든 리암이 무대 위에 선다.

둘은 아무 말도 안 한다.

리암이 멀뚱히 형을 보며 말한다. “잡아먹을 거면 지금 해. 무대는 맛없다.”

노엘이 대답한다. “너 맛없어.”

잠시 정적.

리암이 입을 연다. “우리 어릴 때부터 서로를 잘 씹었어. 왜냐면 말이지… 저 바보 같은 놈이 저렇게 살면 이 험한 세상 우예 살겠노 싶더라. 그래서 욕이라도 해서 정신 차리게 하려는 거였지. 가만히 있으려니, 젠장, 걱정이 되잖아!”

노엘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게 사랑이면, 넌 진짜 연애 못 하겠다.”


그리고, 노엘이 심한 식중독끝에 번쩍거리는 영감으로 썼다는 명곡 Stand By Me가 시작된다.

그날 밤, 사랑과 증오와 솔직한 음악이 뒤섞인 멜로디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오아시스의 주요 곡을 아래 링크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브릿팝의 황제, OA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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