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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세요 - 이상한꿈

이상한 꿈

by sleepingwisdom

“살려주세요!”

내 입에서 튀어나온 첫 마디였다. 상황을 설명할 시간도 없었다. 생존 본능이 가장 절실한 말을 선택한 것이다.




✳✴✵

그 분은 꿈을 좀처럼 꾸지 않는 분이다.

하지만 그날 새벽,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 분 사업장에는 커다란 원목 탁자가 있었다. 장성 20명이 들어도 들지 못할 만큼 크고 거대한 탁자이다. 그런데 1층 사무실에 내려가 보니 그 탁자가 없다. 당황해서 직원에게 묻는다. "여기 있는 탁자가 어디 갔어!" 여직원이 대답한다. "어떤 묘령의 여자가 이 탁자가 필요하니까 가져간다고 하더라고요.“





그 분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한다. 여성 혼자서 그 거대한 탁자를 들고 갔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기분이 나빴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간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탁자는 그 분에게 있어 보물처럼 아끼는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감히 저 무거운 탁자를 누가 들고 간다는 말인가?

그 순간 전화벨 소리가 꿈을 깨뜨렸다. 그 분은 좀처럼 꿈을 꾸지도 않을 뿐더러 꿈을 꾸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렇게 생생한 꿈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무거운 탁자가 사라진 것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




그의 목소리에 놀라움이 섞였다. 아마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을 것이다. 깨자마자 받은 전화기 너머에서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하는 소리가 들려오니 이것도 그에게는 더욱 꿈같은 현실이었을 것이다.

"파도에... 휩쓸렸어요... 뼈가 부러졌어요... 병원인데, 너무 아파요..."

말을 잇기도 힘들었다. 숨이 가빠오고 의식이 흐려졌다. 신음이 새어 나왔다.





"거기 어디에요?" 그가 다급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겠어요... 으아악..."

그는 순간적으로 침착해지더니 말했다. "간호사를 바꿔줘 봐요."

나는 주변 간호사를 붙잡아 핸드폰을 넘겼다. 베트남어로 짧은 대화가 오갔다.

"기다려. 곧 갈게요."

그의 마지막 말이 희미하게 들렸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통증은 계속 몰려왔고, 의식은 오락가락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그가 직원과 함께 들어왔다. 얼굴에는 당혹감과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왜 그런 곳에서 수영을 한 거에요?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요?"

그는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나는 설명할 힘도 없었다. 그저 눈을 감고 통증을 참으며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곧 내 상태를 보고는 표정이 급변했다. 온몸이 모래투성이였고, 입에서는 침과 함께 모래가 흘러나왔다. 눈동자는 뒤집어지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야."

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사나운 싸움닭이 되어 병원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빨리 검사를 해야 한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뭐하고 있어요?"





베트남말로 병원 전체가 떠나갈 듯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복도 끝까지 울려 퍼졌다.

평소 한국에서라면 '너무 거칠다'고 생각했을 그의 성격이, 이곳에서는 내 생명을 구하는 무기가 되고 있었다. 베트남 병원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갑고 냉혹했다. 돈이 없으면 치료는커녕, 검사조차 받을 수 없는 곳. 선금이 없으면 응급실에서도 죽어가는 환자를 방치한다는 얘기를 지인에게 나중에 들었다.





그곳의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긴박함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듯했다. 통증에 괴로워하는 내 옆을 지나치면서도 누구 하나 나를 살피지 않았다. 마치 나는 그들의 시야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체면 차리고 예의 차리면 죽습니다. 외국인이라서 더 치료받기 힘들기에 빨리 대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냥 기다리다가 죽어 나갑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닙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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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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