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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Oct 26. 2022

그때 그 마을의 기억

1-2. 집터, 골목, 텃밭에 스며든 이웃 사람의 흔적

주거지보전사업이 대체 무엇인지부터 알아봐야겠습니다. 그 뜻은 서울특별시 조례에 담겨 있습니다. 엄연한 법적 용어인 것입니다. 서울시는 2018년에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일부러 이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앞으로 다른 곳에도 이 조례를 적용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전무후무합니다. 서울시가 백사마을에서만큼은 뭔가 새로운 실험을 해보고자 했던 냄새가 풍깁니다. 조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 조례

제2조 12항 "주거지보전사업"이란 재개발구역에서 기존 마을의 지형, 터, 골목길 및 생활상 등 해당 주거지의 특성 보전 및 마을 공동체 활성화를 위하여 건축물의 개량 및 건설 등의 사항을 포함하여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을 말한다.


재개발하려는 장소에 원래 있던 마을의 지형, 터, 골목길 같은 것들을 원래 있던 대로 남긴다는 뜻이로군요. 하지만, 이제 '무엇을'을 빼도 '왜 보전하는가'란 질문이 여전히 남습니다. 백사마을 같은 볼품없는 달동네에서 '지형, 터, 골목길'이라고 해봤자 산길을 따라 낸 비탈길에 구불구불한 골목길, 그런 질서 없는 길 옆에 되는대로 앉힌 집터, 또 길과 집 사이사이에 아무렇게나 가꾼 텃밭 같은 것들뿐인데 말입니다. 서울시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여 자료를 뒤져봤더니,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서울시는 2011년 백사마을을 리모델링하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주거지보전사업과는 다른 구상이다. ⓒ<104마을; 중계본동 산 104번지>(2012), 82쪽

"40년간 쌓아온 마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살리는 주거지 보존 방식", "1960~1970년대 서민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한 집과 골목길, 계단길, 작은 마당 등 일부 주거지는 원형을 살리는 방식으로 개발돼 서민들의 애환과 주거지 생활사는 그대로 보존될 전망", "백사마을이 아날로그적인 서울의 옛 모습을 간직한 추억의 동네로 남는다"1)


이 말은 주거지가 아니라 드라마 세트장을 만들겠다는 것일까요? 민속촌이나 디즈니랜드도 아니고, 진짜 사람이 사는 마을을 만드는 일인데 말입니다. 자칫 백사마을을 한낱 구경거리로, 가난한 삶을 전시품으로 취급하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10명의 건축가들도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마주했을 것입니다. 허무맹랑한 낭만주의에 불과하다는 호된 비판 역시 들어야 했습니다.


건축가들이 답할 차례입니다. 그들은 이 마지막 남은 달동네를 좀 다른 시선으로 본 답을 내놓았습니다. 백사마을의 지형, 터, 골목길이 순전히 사람의 손으로 일군 풍경을 간직했을 뿐만 아니라, '대면 공동체를 추동해 온 건축적 장치'2)이기 때문에 보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데요, 풀어서 써보면 이 비탈진 지형에서 백사마을 원주민들이 집을 지은 방식, 길을 낸 방식, 마당을 만든 방식, 텃밭을 가꾼 방식 이웃을 배려하고 함께 어울리며 살고자 했던 삶이 녹아있다는 뜻입니다.


건축가들의 이야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백사마을 지형은 북사면(남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경사지)입니다. 마을의 북쪽이 가장 낮고 남쪽이 가장 높습니다. 산자락에 집이 들어서는 방식이 대개 그렇듯, 백사마을에서도 낮은 쪽부터 한 채씩 집이 들어서면서 마을을 이루게 됐을 것입니다. 철수가 집을 짓고, 영희가 그다음에 집을 지으려면 철수네 집보다는 한층 높은 땅에 영희가 집을 짓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지형이 높은 쪽이 남향이므로, 나중에 지은 영희네 집이 먼저 지은 철수네 집에 드는 햇볕을 가릴 수 있습니다. 영희네가 집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철수네 일조권이 달린 것이죠. 그런데, 백사마을에서는 집이 한 채씩 늘어날 때 그전에 있던 집의 일조를 방해하지 않게 배려한 흔적들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앞집과 뒷집 사이에 적당한 너비로 마당이나 텃밭, 길을 내면 햇볕을 가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대신 자기가 사는 집은 조금 작아진다는 점을 감수해야 합니다. 건축가들은 이런 게 바로 '공동체의 흔적'이고 말합니다.

백사마을에서는 나중에 짓는 집이 앞서 지은 집을 배려하는 공동체의 지혜가 필요했다. ⓒ<중계본동 백사마을 주거지보전구역 디자인가이드라인 수립용역>(2014), 허남설

조옥라 서강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백사마을 주민(당시 74세)에게 처음 그곳으로 이주했을 때 직접 집을 지은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서울 용산, 서대문, 영등포 등지에서 무허가 주택이란 이유로 집을 철거당하고, 행정당국의 방침에 따라 당시는 허허벌판이었던 백사마을 자리로 옮겨온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별 대안이 없는 주민들은 천막을 공유한 이웃들과 서로 도와 집을 지었다고 한다. 서울시가 각 집에 배포한 시멘트를 인근 하천의 모래와 섞어 시멘트 벽돌을 함께 찍고, 서로 도와 벽을 세워 집이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건축 일에 종사한 경험을 갖고 있던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서로 도와주기도 하여 전형적인 '민중건축'의 형태를 띤 주택단지가 되었다. 이 지역의 주도로인 마을 입구에서 언덕 위까지 연결되는 길도 주민들이 직접 곡괭이질을 하여 닦았다고 한다. 정부에서 주민들에게 열흘 일하면 밀가루 한 포대 주는 방식으로 일을 지켜 이 지역을 정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3)


이렇게 집을 한 채씩 짓는 과정에서 형성된 골목 역시 백사마을의 공동체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에 참여하는 민현식 건축가는 "골목은 거실이자 부엌이며 때로는 잠을 자는 공간이기도 했다"라며 "좁은 집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고, 나오니 서로 만났고, 만나니 서로 도우는 '뮤추얼 서포트(상호부조)' 공동체가 생겼다"라고 말했습니다.4) 조옥라 교수는 백사마을 주민들이 골목을 쓰는 방식을 관찰해 글로 남겼습니다. 백사마을에서 골목이 왜 중요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골목이나 가게 앞 간이의자에 앉거나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이웃들은 '심심하니까', '별 할 일이 없으니까' 집 밖으로 나와 골목의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중략)… 이웃관계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노인들의 입장에서 백사마을은 자신이 필요한 모든 것을 이러한 이웃관계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근로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교회나 절 등의 인근 교회시설의 행사에 대한 정보도 모두 이러한 관계 속에서 얻을 수 있다. 통장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도 옆에서 거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도 바로 이 이웃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노인들은 현재의 백사마을이 자신이 서울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초라하고, 불편한 것은 많지만 수입도 거의 없고, 친척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가난한 노인들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웃 친구가 항상 있는 이 지역이 고향과 같은 곳이다.5)


건축가들은 백사마을의 이 같은 삶이 묻어난 공간 구조를 존중해 디자인하기로 했습니다. 집들은 이제 다 너무 낡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험하니 새로 짓는 게 불가피했습니다. 또 집을 보존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한 골목을 공유하는 이웃관계에 있는 집터들끼리 묶어 각자 새집을 디자인할 구역을 나눠갖되 끊임없이 서로 관여했습니다. 건축가들이 백사마을 형성 초기 원주민들이 각자의 집을 지었던 방식을 답습하듯이 작업한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이웃의 다른 건축가가 디자인하는 구역을 배려해 집의 높이를 낮추거나 방과 출입구의 위치를 바꾸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또, 골목은 장애인이나 노인의 이동을 고려해 경사나 폭을 조절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그 원형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의 형태가 골목을 단순히 지나다니는 길이 아니라 머무르고 서로 만나게 하는 장소로 만들었다고 본 것입니다. 골목은 저마다 폭도 다르고 길이도 다른데 그중에서도 주민들이 잦은 만남을 갖는 장소가 따로 있었습니다. 각자 집 앞에서 뻗어 나온 골목이 합쳐져 생기는 작은 공간들이 그랬습니다. 그곳에 걸터앉을 만한 계단이나 낮은 담이 없으면 저마다 가져온 의자가 하나둘씩 모였습니다. 건축가들은 이 공간을 '의자골목' 혹은 '골목마당'이라고 부릅니다. 그 누구도 그곳을 이웃과 만나는 장소라고 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골목이 만나거나, 여러 사람이 친숙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게끔 하는 특유의 공간 구조가 우연히 생겨났고, 그곳은 이웃과 이웃을 마주치게 하고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건축가들은 이런 공간들을 재개발 후에도 남기고자 했던 것입니다.

백사마을 주민들이 집 밖 자투리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한 사례들. ⓒ<104마을; 중계본동 산 104번지>(2012), 164·269· 387·431쪽

1) 서울특별시, 2011년 9월5일, <서울시, 백사마을 '서민의 숨결' 고스란히 살려 재개발>, 보도자료

2) 이민아, 2014년 1월, <중계본동 백사마을 주거지보전구역 디자인가이드라인 수립용역>, 서울특별시 용역보고서, 9쪽

3) 조옥라, 2015년 1월, <백사마을의 공동체문화>,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비교문화연구 21(1), 60쪽

4) 허남설, 2021년 4월5일, <낭만적 실험인가, 대안적 재개발인가···공동체 재생을 꿈꾸는 백사마을 재개발>, 경향신문

5) 3)의 글, 65~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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