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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Oct 26. 2022

미션: 원주민을 모셔라

1-3. 10%만 떠나는 게 아니라 10%만 남는

하지만 원래 살던 사람들이 만나고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눴던 공간을 남긴다고 해서 곧바로 예전의 그 마을 공동체가 재현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집에 거실이 있다고 해서 가족이 자동적으로 그곳에 단란하게 모이지는 않는 것처럼요. '공간 구조'에 앞서 다른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구하는 집인 아파트는 공동체 문화와는 대척점에 있는 주거 형태로 여겨지고, 또 백사마을의 건축가들 역시 아파트를 철저히 배격하려고 했지만1), 실제로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다양한 공동체를 꾸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어린이집 혹은 학교에 보내는 가정은 육아·교육 정보를 공유하거나 장난감 같은 걸 서로 교환하기 위해 가깝게 교류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동네를 오며 가며 이웃끼리 얼굴을 마주하거나 대화, 살림, 운동 같은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도 물론 필요하지만, 주민끼리 온라인 카페나 앱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요즘은 반드시 물리적 공간이 있지 않아도 수요가 비슷한 이웃끼리 연결될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나와 같은 욕구를 지닌 사람이 같은 동네에 있느냐는 점이겠지요.


백사마을에서 그 욕구는 '가난'과 '시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조옥라 교수의 글에서 보았듯, 가난한 백사마을 사람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일거리뿐만 아니라 각종 자선, 후원사업에 접근하기 위해서라도 이웃과의 관계를 필요로 했습니다. 또, 끝끝내 지독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백사마을에서 오래 머물러야 했던 시간이 그런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습니다. 시간과 함께 형성된 탄탄한 이웃 관계, 이것은 비단 백사마을이 아닐지라도 사람 사는 곳 어디에서든 매한가지일 겁니다.

백사마을 골목 풍경. ⓒ<104마을; 중계본동 산 104번지>(2012), 193쪽

연구자들이 할머니들의 사랑방이라고 불리는 한 주민의 가게에 앉아 대화에 함께 참여하고 있을 때, 많은 주민이 그 가게에 드나들었는데, 오가는 대화 속에는 "누구네 후원 물품 받았나?", "내가 일주일에 한 번 국 끓이는 봉사 가니까 할머니들한테 후원물품 나오는 거 알고나 있어라.", "옆집에도 국 좀 갖다 주면 안 되나, 또 술만 마시고 있을 텐데..." 등 한 번의 대화에도 주민 몇 사람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어느 날은 연구자들이 몇몇 집 방풍작업을 하기 위해 방풍지를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세탁소를 하는 한 주민이 누구네 할머니도 방풍작업 좀 해주면 안 되겠냐며 대신하여 부탁하고 그 집까지 안내해준 일도 있었다. (중략) 이처럼 104마을은 오랜 시간 주민들이 마을에 들인 노력의 축적, 공동체적 관계를 바탕으로 그 지역 특유의 마을성을 지니고 있었고, 주민들 또한 '이곳에서 오래 산 사람'으로서의 주인의식을 은연중에 드러냈다.2)


그래서 재개발 후에도 골목이나 집터를 남기는 것, 천편일률적이고 배타적인 아파트를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원주민이 계속 살아가는 마을' 또한 자연스럽게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단언컨대, 아마 대한민국 재개발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 될 것입니다. 재개발 사업 후 원주민이 재정착하는 비율은 보통 10%도 되지 않는다고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것을 정확히 통계 낸 적도 없을 정도로 재개발 사업에서 원주민 재정착 여부는 관심을 기울일 대상도 못 됐던 게 현실입니다.


'10%'가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통설에 불과해서 숫자 자체에 의심을 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재개발의 특성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의심을 풀 수밖에 없습니다. 재개발을 하는 곳은 보통 3~4층으로 낮은 단독·다가구주택(빌라)이 밀집한 지역인데,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를 들어 삽니다. 소유주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 집과 땅에 대해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이들은 속수무책입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습니다. 재개발 현장 곳곳에서 세입자들의 저항이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설사 집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이라도 재개발 후 새 집을 받는 데 필요한 분담금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담금이 한두 푼도 아니고 몇억 원씩 하는데, 그만큼 모아놓은 돈이 없고 대출로도 감당하지 못하면 헌 집내주고 새집받지 못하게 됩니다. 렇게 보면 원주민 재정착률이 10%가 안 되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서울 왕십리 뉴타운 재개발 당시 세입자 대책위원회 사무실 앞 풍경. ⓒ<왕십리; 공간·경제·문화>(2009), 283쪽

서울시는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에서 이 10%를 한번 끌어올려보기로 했습니다. 원래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다 떠나가고 골목이니 텃밭이니 하는 것들만 남기는 건 일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백사마을에 '재생지원센터'란 기관을 두었습니다. 재생지원센터의 핵심적인 역할은 현재 재개발 때문에 일시적으로 다른 곳으로 이주한 원주민들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재개발이 닥친 백사마을에는 대부분 소득이 낮고 나이가 많은 분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2018년 1~2월 백사마을 440가구를 조사해 보니, 가구주 중 60세 이상이 66.0%,  50대가 24.5%였습니다. 전세 가구 중 85.2%는 보증금이 2000만원을 넘지 않았고, 월세 가구 중에서는 77.0%가 보증금이 500만원 이하, 78.8%는 월세가 20만원 이하였습니다.3) 이 금액으로 어디를 가면 집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요?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만큼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백사마을에 정착한 것입니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이 진척되면서 이 분들도 마을을 떠나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진 상황입니다. 따로 살 집을 구한 사람도 있고, 서울시가 공급하는 임대주택에 들어가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재생지원센터의 목표는 훗날 주거지보전사업이 끝났을 때 이 분들을 새로 지은 임대주택으로 다시 모셔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50% 재정착'이라는 목표를 상정하기도 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현재로선 20~30%를 달성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재개발이라는 게 대개 이런저런 사정으로 늘어지게 마련입니다. 관청의 인허가, 시공사 선정과 재설계 등 내부적 요인과 부동산 경기 변동 등 외부적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원주민들은 기다리기에 지치거나, 생업을 이유로 다른 지역에 정착하거나, 나이 드신 분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가시는 겁니다. 백사마을도 결국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습니다.


근래에는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이 아예 좌초할 수도 있는 변수가 생겼습니다.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서울시가 이 사업을 사실상 원점에서 재검토하게 된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서는 백사마을의 건축가들이 그렇게도 배격하고자 했던 '아파트'가 다시 등장합니다. 지금처럼 3~4층짜리 저층주택이 아니라 고층아파트를 지으면 임대주택 공급량을 더 늘릴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집 한 채를 복제해 쌓는 방식으로 짓는 아파트 공사비가 더 저렴하다는 논리도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주거지보전구역은 백사마을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 골목과 길을 보존하면서 저층형으로 짓는 방식이기 때문에 일반 아파트 건축비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 건설업자는 “아파트는 낮게 짓는다고 건축비가 싸게 들어가고, 높게 짓는다고 건축비가 비싸게 들어가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시공방식에 따라 제각각이고, 통상 아파트보다 빌라의 건축비가 더 많이 든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2000가구가 들어가는 아파트 건축비보다 698가구가 들어가는 임대주택 건축비가 2배 이상 비싼 상황을 서울시가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백사마을 주택재개발정비사업도 멈춰버린 셈이다.4)


하지만 만약, 주거지보전사업을 취소하고 새로운 재개발 계획을 짠다면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사이 백사마을과 연결고리가 끊겨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 원주민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원주민 재정착률 제고라는 당초의 목표는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백사마을은 이미 주민들이 대부분 떠나 텅 빈 채 재개발만 기다리고 있다. ⓒ허남설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 역시 짚고 가야 합니다. 서울시는 돌고 돌아 백사마을에도 아파트를 짓고자 하는데, 정말 아파트는 대적할 다른 상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싸고, 짧은 기간에 많이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정말 아파트는 집을 더 많이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일까요?


대한민국의 모든 재개발은 사실상 새 아파트를 짓기 위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여기에는 '서울에는 더 많은 주택이 필요하다'는 명분이 있습니다. 정부가 주택공급 계획을 발표하며 100만호니, 250만호니 할 때 이 물량은 거의 전부 아파트를 전제로 합니다. 다만, 분당이나 일산처럼 신도시를 세울 땅은 없으니 대부분 기존 저층주택지를 재개발하는 방식이 동원됩니다. 100만호 공급 계획은 세상에 없던 집을 100만채 더 짓겠다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헌 집을 없애고 새 집 100만채를 짓겠다는 뜻입니다. 그럼 헌 집은 몇 채가 있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게 바로 문제입니다. 사실 정부 주택공급 계획은 '새 집-헌 집=○○만호'로 표현되어야 정확한 것이 아닐까요?


"아파트를 높게 지어 주택량을 늘리겠다", 이제는 거의 성역화되다시피 한 이 신화를 한번 점검해 보겠습니다. 백사마을을 떠나 서울 창신동으로 가보겠습니다.


1) 이민아, 2014년 1월, <중계본동 백사마을 주거지보전구역 디자인가이드라인 수립용역>, 서울특별시 용역보고서, 8쪽 | 주거생활의 장소로서의 주택은 물질적인 생산품 이상의 것이다. 주택은 사람들에게 정체성, 안전 그리고 기회 등과 같은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실존적 특질을 제공한다. 이러한 뜻으로, 특히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 버린 "아파트"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필요했다. "아파트"의 태생은 합리주의의 정신으로 우리의 삶을 분석하여 각각의 기능에 적합한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조합된, 소위 "기능주의"의 산물로서 "삶을 위한 기계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공동주택(집합주택이 아니라)이라 칭해졌고, 고밀도 도시에서의 거의 유일한 주거문제의 해법으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근대화를 표방한 한국에 정착되는 과정에서 '아파트' 그리고 '아파트 단지'는 철저히 자본주의적의 생산양식으로 생산됨으로써 모든 공간과 장소가 사적 소유화되었고, 거주풍경(domestic landscape)에 "공동체 의식(community sense)"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2) 장봄, 2015년 1월, <재개발을 앞둔 104마을의 현재>, 서울연구원, 52~53쪽

3) 한국도시연구소, 2018년 11월, <백사마을 주거지보전구역 맞춤형 주택 공급·관리 및 마을공동체 활성화 방안 마련>, 서울특별시 용역보고서, 97쪽

4) 류인하, 2022년 4월17일, <“임대주택을 왜 비싸게 짓나” 오세훈 서울시에 발목 잡힌 백사마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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